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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 보육원 봉사를 하려고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실은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첫 인사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부터 숙제였다. 동물 스티커가 붙어 있던 문을 열자, 저 멀리 보육원 선생님의 두 다리에 얼기설기 붙어 있던 눈들이 보였다.

다섯 살 언저리로 보이던 아이들이었다. 봉사자들을 향한 두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 반짝. 솜털로 보송한 두 뺨은 발그레했다. "안녕, 애들아?" 낯선 이들의 인사에 몇몇은 선생님 뒤로 숨고, 몇몇은 쑥쓰러운지 우당탕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 중 유독 내 눈길을 사로 잡는 한 아이가 있었다.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에 양 갈래로 질끈 묶은 머리, 장난기많아 보이는 눈매까지. "선생님, 오늘 저랑 그림 그리기해요?" 7살 '선이(가명)'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림 그리기 수업
 
조막만한 내 눈을 왕눈이로 그려주고 있는 선이.
▲ 아이가 그리고 있는 내 얼굴 조막만한 내 눈을 왕눈이로 그려주고 있는 선이.
ⓒ 송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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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미혼이지만 아이 맡는 일엔 '베테랑'이었다. 교회 유초등부 선생님부터 지역아동센터 선생님,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까지.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도 열혈팬이라, 오 교수님의 어록도 차곡차곡 기억해 놓는다.

그러나 이곳 아이들 앞에선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사소한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도 조심해야 했다.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말자'란 말을 입 속에서 수십 번 반복했다. 

그날 봉사자들이 준비한 첫 수업은 '담당 선생님 얼굴 그리기'였다. 봉사자들마다 한두 명의 아이를 맡아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난 우연히도 선이를 담당하게 됐다. 

"선생님, 도화지 없으면 찢어 줄게요." 선이가 자신의 스케치북을 북북 찢어 건넸다. "선이야, 나도 없어", "선이야, 나 한 장만" 아이의 곁에 모인 친구들에게도 한 장도 아닌 두 장을 아낌없이 북북. 너 정말 쿨하다. 내 말에 선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 아직 종이 많거든요."

선이는 그림을 꽤 잘 그렸다. 내 얼굴을 슬쩍 한 번 보더니 막힘없이 쓱쓱 그렸다. 내 얼굴 주변에 별과 하트를 잔뜩 그리곤, 'ㅇㅇ선생님♥'이라고 크게 적었다. 내가 연신 선이의 그림을 칭찬하자, 아이 앞에 앉아 있던 현수(가명)가 칭찬을 덧붙였다.

"선이는요, 그림대회에서 상도 받구요. 춤도 엄청 잘춰요."

선이는 금세 미소를 못 감추며 의기양양 어깨를 폈다. 훗날 자신의 춤 실력을 조금 보여주겠다는 선이의 선심에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사랑스런 아이가 또 있을까. 

"괜찮아요, 선생님"

다만 내 눈에 선이의 특징 하나가 신경 쓰였다. 아이가 수업시간 내내 자주 쓰던 말, "괜찮아요". 친구가 자신의 색연필을 다 가져가도 '괜찮아요'. 크레파스가 번져 그림을 망쳐도 '괜찮아요'. 캐릭터에 어울리는 색깔이 없어도 '괜찮아요'. 

보육원 선생님은 선이가 친구들하고 싸워도 우는 일이 없다고 했다. 되려 싸우기 전에 양보하는 편이라고. 처음엔 그저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 입에 그 말이 붙어버린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나의 7살은 어땠나. 내 칭얼거림을 모두 받아 줄 부모님이 있었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다 들어와도, 예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라도, 이곳저곳 여행을 다녀도 괜찮았다.

선이는 훨씬 어릴 때부터 참는 법을 배웠다. 보육원은 단체 생활이다. 단독 활동은 안전상의 이유로 제한된다. 놀고 싶은 마음, 반항하고 싶은 마음, 칭얼대고 싶은 마음. 선이는 그 마음들을 수십 번 수백 번 꾹꾹 참아가며 '괜찮아'라고 말했다.

어른이 되서야 비로소 배우는 버티는 힘을 아이가 너무 일찍 갖게 된 건 아닐지. 선이는 강했다. 단단한 나무 밑동처럼, 눈서리에 지지 않는 동백꽃처럼. 그렇게 묵묵히 성장하고 있었다. 

잘가, 우리 또 보자 

선이는 안아달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꼭꼭 안아줬다.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가볍네요." 아이는 유독 작은 내 품에 안기며 까르르 웃었다.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꼭 안았다. 마음의 일부분을 떼어 낸 작은 몽우리처럼 따뜻했다.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빨간 실로 인연이 맺어진다던데. 이 아이와 맺어진 붉은 실이 오래오래 이어지길 바랐다. 

다만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아직 익숙해져야 할 게 많았다. "이번 연말에는 후원자분들에게 선물을 드릴 거예요.", "엄마가 머리를 묶어줬어요"... 아이가 인식하는 후원자의 존재, 그리고 엄마의 의미.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선이가 바라보는 작은 세상. 아이의 두 눈에 비춰지는 모든 것들을 함께 바라보고, 노래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했다. 

"선생님, 다음에 보면 선생님도, 저도 1살 더 먹네요. 우리 더 커서 만나요."

선이가 아쉬운 표정으로 못내 웃었다. 우리 또 보자. 더 웃으면서, 더 행복하게. 내년에 또 만나자. 어쩌면 올해 가장 잘한 일은 12월 눈 소복이 내리던 날, 선이란 아이를 만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제가 봉사를 다녀온 곳은 서울에 있는 보육원인데, 후원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서울과 달리 지방 쪽은 운영이 힘든 보육원이 많다고 합니다. 연말을 앞두고 가까운 지역 보육원 봉사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태그:#보육원, #봉사, #연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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