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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손흥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손흥민, 오늘은 기쁨의 눈물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손흥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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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기분 좋은 축구 역사를 쓰고 있다. 한국은 지난 3일 카타르 월드컵 H조 3차전에서 포르투갈을 2-1로 이겼다. 첫 골을 내준 뒤 동점골, 그리고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역전 골이었다. 포르투갈은 FIFA랭킹 9위로 객관적 전력에서 우리를 앞선다. 또 호날두와 페페 등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한국은 전반 5분여 첫 골을 허용하면서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막판 역전 골을 터트리며 12년 만에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포르투갈 전에서 한국 승리는 쉽지 않았는데, 일본 대표 팀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 일본은 독일과 스페인을 차례로 격파함으로써 우리 대표 팀에게 자극과 자신감을 부여했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월드컵 판을 바꾸고 있다. 그동안 월드컵에서 유럽과 남미는 화려한 조명을 받은 반면 아시아는 변방에 머물렀다. 줄리메 컵은 줄곧 이들 차지였으며 아시아는 구색 맞추기에 그쳤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들이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은 남미 강호 우루과이와 대등한 경기 끝에 무승부를 기록한데 이어 유럽 강팀 포르투갈마저 이겼다. 한국과 일본, 호주까지 아시아 3개국이 동시에 16강에 오른 건 사상 처음이다.

특히 일본은 한국과 함께 파란을 일으킨 주역이다. 일본은 E조 1차전에서 독일, 3차전에서는 스페인을 꺾었다. '전차군단' 독일은 월드컵 4회 우승 국가이자 세계 최고 팀이다. 또 '무적함대' 스페인 역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일본은 독일과 스페인을 꺾고 E조 1위로 16강에 진출함으로써 월드컵이 더 이상 유럽과 남미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켰다.
 
한국과 일본이 선전한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설득력 있는 분석은 세계 축구 평준화다. 일본 대표선수 26명 가운데 유럽파는 19명이다. 이들은 유소년 시절부터 유럽과 브라질에 축구 유학을 다녀왔고, 또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면서 기량을 쌓았다. 한국 대표 팀에서 유럽파는 8명이다. 일본보다 적지만 손흥민과 황희찬, 이강인은 기량 면에서 뛰어나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다른데 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신선한 자극을 주고받으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동반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1월 23일 독일에게 승리한 직후 한국에 대해 고맙다고 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한국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2-0으로 격파했다. 아시아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건 처음이었다. 한국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결과였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을 마주한 일본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과 독일 전을 떠올렸을 게 분명했다. '한국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 없다.' 일본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결의를 다진 결과 '전차군단'을 2-1로 격파했다. 4년 전 한국 대표 팀이 토대를 닦은 "할 수 있다"는 에너지가 이번 일본-독일 전에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다. 또 우리보다 하루 앞서 열린 일본-스페인 전 결과가 한국-포르투갈 전에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일본 승리는 한국 대표 팀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했다.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 교체 투입된 황희찬이 질주하고 있다.
▲ 황소질주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 교체 투입된 황희찬이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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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기자 일본 누리꾼들은 열광했다. 일본 매체 '야후 재팬'은 한국 승리 소식을 여러 차례 반복해 보도했다. 또 일본 팬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한국이 역전했다. 일본이 이긴 것처럼 기뻐" "한국이 역전해서 정말 기뻐" "더 이상 아시아를 무시하지 마라"라며 한국 승리를 축하했다.

만일 한국과 일본이 16강 고지를 넘는다면 월드컵 사상 첫 8강에서 한일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강인은 일본 대표팀 쿠보 선수가 전한 응원 메시지를 소개했다. 그는 "쿠보에게 일본 16강 진출을 축하했는데, 쿠보는 한국과 8강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들려줬다.
 
한국과 일본은 불행한 과거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 나라는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를 피할 수 없다. 한 해 1000만 명(2018년)이 오가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과 일본 밖에 없다. 일본은 한류에 열광하고, 또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은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사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양국 정치다. 이들은 정치적 목적에서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악습을 반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친일몰이는 최고조를 이뤘다. 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친일국방' 운운하며 한일 갈등을 부채질했다. 1998년 10월, 김대중과 오부치는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선언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힘입어 한일 교류는 확대됐고 한류 확산에 기여했다. 그럼에도 양국 관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양국 정치인들이 민족감정을 볼모로 혐한과 혐일 감정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은 동일본 지진으로 커다란 아픔을 겪었다. 당시 한국에서 근무했다는 다카라다(寶田) 1등 서기관은 한국 국민들이 보여준 온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구호팀을 파견했고 위안부 할머니들도 원망을 내려놓고 성금을 전달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엔 일본 국민들이 걱정과 애도를 표했다. 재난 앞에서 돋보인 공감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1995년 1월 고베 대지진 때 일본 시민들은 'FM요보세요'('여보세요'에서 딴 명칭)라는 라디오 방송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송출했다. 지진 피해를 입은 자이니치(재일 한국인)에게 재해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 또한 피해자임을 알릴 목적이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수많은 조선인이 희생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김경화 넥스트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소장은 <같은 일본 다른 일본>에서 "지진으로 촉발된 불안감이 또 다시 자이니치에 대한 해코지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과 결연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의미를 설명했다.
 
앞선 두 사례에서 확인했듯 한일은 얼마든지 악순환 고리를 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양국 국민이 서로 이해하고 응원하며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이 보여준 시민의식과 고베 대지진 때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시민의식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흔한 말로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지닌 강점을 활용함으로써 동아시아를 넘어 국제사회를 선도할 수 있다. 책임 있는 정치라면 감정은 절제하고 새로운 관계를 열어갈 책무가 있다. 증오와 적개심을 불쏘시개 삼아 연명하는 정치는 구태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임병식씨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한국 16강 진출, #일본 16강 진출, #무적함대와 전차군단, #카타르 월드컵, #김대중 오부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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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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