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1월 27일, 새만금신공항 부지가 예정된 수라갯벌에 물이 들어오자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 주최한 '수라갯벌에 들다'에 참가한 가족이 갯벌을 걷고 있다.
 지난 11월 27일, 새만금신공항 부지가 예정된 수라갯벌에 물이 들어오자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 주최한 '수라갯벌에 들다'에 참가한 가족이 갯벌을 걷고 있다.
ⓒ 김재우

관련사진보기


가슴이 먹먹했다. 지난 11월 27일,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 주관한 '수라갯벌에 들다' 행사에 참관한 뒤 한동안 갯벌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죽어가는 갯벌에서 뭇 생명들의 삶의 궤적을 뚜렷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4월, 세계에서 가장 긴 새만금방조제가 건설됐다.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러나 기네스북에 오른 것은 방조제의 길이뿐 아니라 수라갯벌의 무수한 생명체들을 죽이는 생태 파괴 기록도 포함될 듯하다.

새만금방조제는 전북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을 이어준다. 총 33.9km로 네덜란드 자위더르 방조제의 32.5km보다 1.4km 더 길다. 군산시 비응항, 야미도, 신시도, 가력도 등 바다 위에 떠 있던 3개의 섬을 연결, 여의도 면적의 140배인 409㎢의 바다를 육지로 만든 대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위협 받는 멸종 위기 1급 생물들
 
수라갯벌에 서식 중인 멸종 위기 2급인 흰발농게. 새만금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에는 이밖에도 저어새와 수달, 붉은어깨도요, 알락꼬리마도요 등 42종 이상의 멸종 위기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수라갯벌에 서식 중인 멸종 위기 2급인 흰발농게. 새만금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에는 이밖에도 저어새와 수달, 붉은어깨도요, 알락꼬리마도요 등 42종 이상의 멸종 위기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 영화 "수라" 스틸 컷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방조제로 인해 사라지는 갯벌이다. 현 군산공항 활주로에서 1.35km가량 떨어진 수라갯벌은 아직도 조석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 때문에 조수 간만의 차가 없어 갯벌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하는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방조제로 막힌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수라갯벌은 염생식물과 다양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터전 역할을 하고 있다. 

멸종 위기 1급인 저어새와 수달, 붉은어깨도요, 알락꼬리마도요 등 42종 이상의 멸종 위기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생명을 품은 태초의 갯벌이다.

새만금 간척지 중... 유보용지 1650만㎡ 미군기지 확장용
 
새만금 수라 갯벌 위치 및 신공항 건설 예정지. 현재의 군산공항 활주로에서 서쪽으로 1.35km 가량 떨어진 수라갯벌에 자리할 계획이다.
 새만금 수라 갯벌 위치 및 신공항 건설 예정지. 현재의 군산공항 활주로에서 서쪽으로 1.35km 가량 떨어진 수라갯벌에 자리할 계획이다.
ⓒ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제공

관련사진보기

 
경악할 일은 생명의 보고인 수라갯벌에 국제공항이란 미명 하에 미군의 활주로를 하나 더 건설하고 기지 부지를 340만 ㎡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1996년부터 '전북권신공항'이란 이름으로 추진된 '새만금신공항' 건설 사업은 지난 6월 30일 국토교통부가 공항 건설 기본계획을 고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군산공항의 활주로는 1920년대 일본이 태평양전쟁의 가미가제 특공대 양성을 목적으로 건설했다. 이후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했고 국방부는  1990년 공항 동쪽의 하제마을 주민 630여 가구를 이주시켜 기지를 확장시켰다.

주목할 점은 새만금방조제 착공시점인 1991년부터 20년 동안 약 1650만 ㎡ 면적의 매립지가 유보용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미군기지 확장용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다.

새 활주로 2.5km... 대형 항공기 이착륙 불가

새만금신공항이 국제공항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항 건설계획에 따르면 신규로 건설할 활주로의 길이가 2.5km라는 사실이다. 해외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대형 항공기가 이착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km 길이의 활주로가 필요하다.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은 취항할 수 없는 것이다. 공항이 확장되면 피해가 더 커질 공항과 맞닿아 있는 남수라 마을 11가구 주민들의 이주 대책도 없다.

밭을 매고 있던 70대 할머니가 기자를 붙들고 한숨을 내쉬셨다. 20년 전 공기 좋은 바닷가 마을에 살고 싶어 이사 왔는데 "전투기 굉음에 땅이 흔들려 장독대가 모두 깨지고 귀가 먹었다. 제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월 4만 원이란 돈이 송두리채 빼앗긴 행복의 보상"이라며 울먹이셨다.

가마우지 이동경로... 버드스트라이크 우려
  
지난해 10월 5일 오후 3시12분쯤 새만금 수라갯벌 상공에서 KF16 전투기가 민물 가마우지 무리 사이를 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마우지 한 마리가 전투기에 부딛혀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밝혔다.
 지난해 10월 5일 오후 3시12분쯤 새만금 수라갯벌 상공에서 KF16 전투기가 민물 가마우지 무리 사이를 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마우지 한 마리가 전투기에 부딛혀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밝혔다.
ⓒ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제공

관련사진보기

 
버드스트라이크(조류 충돌)도 우려된다. 먹이활동을 마친 가마우지들이 공항 인근의 옥녀봉으로 잠을 자기 위해 무리지어 날아 가는데 이동 경로가 바로 활주로 위였다. 실제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지난해 10월 5일 오후 3시12분쯤 새만금 수라갯벌 상공을 비행하던 KF16 전투기와 민물 가마우지 무리가 부딪히는 사고 장면을 포착했다.

이 전투기는 전북 군산에 주둔 중인 38전투비행전대 소속으로, 훈련을 위해 활주로를 이륙, 수라갯벌을 선회 비행하다 때마침 무리지어 날던 가마우지 떼 사이를 지났다. 이 과정에서 200여 마리의 가마우지 떼 가운데 몇 마리가 전투기와 충돌하는 모습이 목격됐고 이중 한 마리가 수라갯벌 주변 배후습지로 떨어졌다.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은 "수라갯벌 멸종위기동물을 관찰하던 중 전투기가 비행한 상공이 가마우지 무리 활동처와 동일해 조류 충돌이 걱정돼 카메라를 들이대 충돌 모습을 포착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군 공항... 대중국 전진기지 '의심'

더욱이 군산공항은 수요가 없어 매년 30억 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한다. 전국적으로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공항만도 10여 개에 이른다. 국토부가 내놓은 2058년 기준 새만금 국제공항의 연간 여객기 수요 105만 명, 화물 수요 8000톤 추정도 황당할 뿐이다.

현재도 미군이 관제 권한을 갖고 있지만 새만금신공항이 건설되면 미군의 통제 하에 운영된다. 사실상 약 340만 ㎡ 면적의 국토가 미군 손으로 넘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활주로 추가 건설을 두고 전쟁용 예비 활주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시대에 대중국 전진기지가 될 가능성마저 엿보이는 이유다.

갯벌, 연간 26만톤의 이산화탄소 흡수
 
수라갯벌에서 발견된 흰발농게의 갯구멍. 멸종 위기 2급인 흰발농게는 11~3월까지 약 30cm의 굴 안에 머무른다. 수컷은 번식철이 되면 자기 굴 입구에 반돔(semidome)을 건설하는 습성이 있는데, 구애용은 아니고 길찾기용이다(2022년 11월 27일 촬영).
 수라갯벌에서 발견된 흰발농게의 갯구멍. 멸종 위기 2급인 흰발농게는 11~3월까지 약 30cm의 굴 안에 머무른다. 수컷은 번식철이 되면 자기 굴 입구에 반돔(semidome)을 건설하는 습성이 있는데, 구애용은 아니고 길찾기용이다(2022년 11월 27일 촬영).
ⓒ 김재우

관련사진보기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지난 1일  일본 도쿄대가 주최한 '도쿄포럼 2022'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 팬데믹, 기후 변화 등 우리는 세계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대변하듯 온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노력이 한창이다. 국내 대기업도 RE 100 동참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 새만금신공항 건설은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새만금과 만경강 유역의 마지막 갯벌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반지구적 사업이자, 멸종을 가속화하는 생태학살이다.

갯벌은 탄소 흡수원이다. 1997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는 갯벌의 편익은 간척 농지의 100배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게재된 바 있다. 서울대 김종성 교수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 갯벌은 약 1300만 톤 규모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고, 연간 26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오동필 공동집행위원장은 "국제 사회에서도 연안 습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으며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2050 탄소중립을 표방하며 갯벌, 염습지 등의 복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새만금 마지막 갯벌과 대규모 염습지를 파괴하는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려청자 발굴... 해상교역 루트 요충지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 지난 6월 25일 신공항 예정부지에서 고려말~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상감청자국화문 잔을 발견했다. 이어 7월 2일~5일까지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과 함께 실시한 조사에서 신공항 예정부지 북쪽의 임시 수로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녹청자 파편울 추가로 발견했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 지난 6월 25일 신공항 예정부지에서 고려말~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상감청자국화문 잔을 발견했다. 이어 7월 2일~5일까지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과 함께 실시한 조사에서 신공항 예정부지 북쪽의 임시 수로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녹청자 파편울 추가로 발견했다.
ⓒ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제공

관련사진보기

 
더군다나 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에서는 지난 6월 25일 고려말~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상감청자국화문 잔'과 '녹청자' 파편이 발견됐다. 새만금방조제의 끝 지역인 부안이 고대 도자기 생산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부안에서 금강, 만경강, 동진강을 따라 배가 오르내리던 해상루트였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해저 매장 문화재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문화재청은 2002년부터 새만금과 고군산 해역에서 유물 발굴조사를 진행, 고려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기류 5000여 점에 달하는 고대 유물을 발굴했었다. 

수라갯벌 지킴이 7년간의 기록... 영화 <수라>
  
수라갯벌에 서식하는 쇠제비갈매기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려 주고 있다. 수라갯벌에는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와 수달, 븕은어깨도요와 멸종위기 2급인 흰발농게, 금개구리 등 42종 이상의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수라갯벌에 서식하는 쇠제비갈매기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려 주고 있다. 수라갯벌에는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와 수달, 븕은어깨도요와 멸종위기 2급인 흰발농게, 금개구리 등 42종 이상의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 영화 "수라" 스틸 컷

관련사진보기

 
   
아픈 역사도 있다. 2003년 3월, 전북 부안의 해창 갯벌을 출발해 청와대까지 4명의 성직자가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6년 '새만금 사업 승인처분 무효화'소송을 낸 환경단체에 "새만금 사업을 중단할 정도로 사업계획의 경제적 타당성이 낮거나 환경파괴 정도가 심각하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당장 갯벌의 아픔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가 있었다. 다큐감독인 황윤 감독이었다. 그러나 촬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6년 전북 부안에 살던 어민 류기화씨가 바다에서 세상을 떠나자 황 감독은 새만금을 기억에서 지우려 했다. 류씨는 황 감독이 새만금을 찾을 때마다 생합탕을 끓여주고, 잠자리를 제공해줬던 "언니"다.

2015년 다시 새만금을 찾은 황 감독은 우연히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단장을 만난다. 황 감독은 "너무 쉽게 포기했던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며 카메라를 꺼내 다시 수라갯벌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7년동안 수라갯벌의 사계절과 지킴이들의 활동을 생생하게 담고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다. 푸르른 수라갯벌의 염생식물들이 바람에 춤추는 모습, 눈이 휘날리는 겨울 잿빛개구리매가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모습이 황 감독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함께 담겼다. 

황 감독은 "정부는 늘 새만금이 육화됐다고 하고 보호 가치가 없다고 하지만, 법정 보호종이 50종 이상 사는 생태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곳"이라며 "보호하지 않을 거라면 법정 보호종을 왜 지정을 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누구를 위한 공항일까
 
지난 11월 27일 새만금신공항 건립 예정지인 수라갯벌에 갯개미취 군락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관찰됐다.
 지난 11월 27일 새만금신공항 건립 예정지인 수라갯벌에 갯개미취 군락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관찰됐다.
ⓒ 김재우

관련사진보기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는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로버트 조던을 통해 "70시간 동안에 70년 인생을 살아낼 수 있다"는 시간의 무게를 대변했다. 수천 년 동안 자연이 이뤄낸 생명의 땅, 수라갯벌을 한 순간에 파괴하는 신공항 건설이야말로 가벼운 시간의 대표적인 사례다.

과연 대한민국은 지금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고 있는가.'

 

태그:#새만금신공항 , #멸종위기 1급 서식지, #대형항공기 이착륙 불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을 기록하고 찰나를 찍습니다. 사단법인 한국지역연구원 연구위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