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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수신금리 경쟁 자제를 당부하면서 주요 시중은행에서 연 5%대 예금 금리 상품이 다시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11월 29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걸린 정기예금 금리 안내문.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수신금리 경쟁 자제를 당부하면서 주요 시중은행에서 연 5%대 예금 금리 상품이 다시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11월 29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걸린 정기예금 금리 안내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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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고금리 특판 때 긴 대기 줄에 서 있던 노년 여인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저축을 하러 온 게 아니고 인출하러 온 것이었다. 이 시점에 저축이 아니라 인출을 한다니? 의아해서 물었더니 은행이 망하면 오천만 원까지 보장된다는데 그 이상을 넣어놔서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갑자기 금리를 올리고 사람들이 몰리는 게 여간 수상하지 않다는 논리다.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했다. 하루 사이에 뭐가 어떻게 될까 봐 너무 불안해서 돈을 찾으러 왔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됐다. 나 역시 십여 년 전 만기 하루를 앞두고 회사채가 부도나는 바람에 허망했던 적이 있다. 설마 했던 하루가, 공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은행이 망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노년 여인은 발을 동동 구르며 번호표도 없이 대기 줄에 서 있었다. 남직원이 번호표 없는 사람은 돌아가라고 외치자 노년 여인은 "오천만 원까지 보호된다는 데 일억 넘게 있는데 괜찮겠죠?"라고 물었다.

남직원이 "그럼요, 이 은행이 50년이 넘었는데... 그게 다 언론에서 잘못 떠드는 바람에 그래요"라고 말하며 불안해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그렇죠? 괜찮은 거죠? 망하지 않는 이상" 재차 물으며 확인했다. 남직원은 "그럼요, 그럴 리가 없죠"라고 답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라고 내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남직원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노년 여인은 내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얼마를 넣어두셨는지 모르지만, 오천만 원씩 분리하는 게 안전하죠, 이자까지 오천이니까 원금은 그보다 작아야겠죠"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죠? 그게 맞죠? 아이고, 어떡하나 설마 하루 사이에 망하진 않겠죠"라며 여전히 불안해했다.

나는 은행이 망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수십 년 전 내가 살던 곳의 제2금융 은행이 망해서 문을 닫았을 때를 기억한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여전히 2금융권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금융뿐 아니라 모든 은행이 망했을 때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보장된 금액은 동일하다.

원래는 1인당 2000만 원까지 보장되다가 외환위기 계기로 2001년 5000만 원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은행이 망하는 걸 경험한 그 후로 나는 형식적으로만 생각했던 보호 한도 금액을 지키는 습관이 생겼다.

2013년도 7년짜리 재형저축(재산 형성 투자 상품)에 가입할 때 창구 직원과 실랑이를 했다. 매분기 최대한도를 7년 동안 저축했을 때를 가정하면 오천만 원이 넘기 때문이다.

나는 직원에게 보호 한도를 물었고 직원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재형저축은 안전하다고 했다. 은행이 아닌 나라가 보장하는 저축이라고 강조했지만, 나는 오천만 원을 넘기지 않고 적금을 했다. 그만큼 내게 보호 한도 금액은 강박이었다.

문득 드는 은행을 향한 불안감
 
당초 예상보다 기준금리와 대출금리가 더 높은 수준으로,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더 오래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은 11월 6일 서울 시내 은행에 걸려있는 대출 안내 현수막 모습.
 당초 예상보다 기준금리와 대출금리가 더 높은 수준으로,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더 오래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은 11월 6일 서울 시내 은행에 걸려있는 대출 안내 현수막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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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만 원 보호 한도는 20년 전 시세다. 최저시급 등 모든 것이 매년 오르지만 보호 한도만큼은 제자리다. 1997년 외환위기 때 20%까지 치솟았던 고금리만큼은 아니지만 현재 금리가 다시 오르고 있다. 각 은행마다 예금이 몰리고 있다. 내가 있는 이곳만 봐도 특판금리가 출시될 때면 노년들이 은행 매장을 가득 채우며 대기한다.

현재, 비과세 저축 한도는 노년 기준 우대 포함 팔천만 원이다. 고금리 특판 대기줄에 있던 노년들은 대부분 그 이상의 돈을 한 곳에 저축하고 있다. 비과세 한도는 팔천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보호 한도를 여전히 오천만 원에 묶어두는 건 아이러니다.

설마 은행이 망하겠어요? 망하지 않는 한 모든 돈이 보장된다고 은행 직원들은 말한다.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킨다. 그 말에 안심하는 노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몇십 년을 봐온 은행이기에, 직원이기에 더 믿음이 갈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있는 것이다. 노년들의 믿음에 부응하려면 은행도 나라도 보호 한도금을 늘리는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대기 줄에 앉아 보호 한도에 취약한 노년들과 직원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망하지 않는 한 보장된다는 그 말, 글쎄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게 보호한도 금액을 상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그:#보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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