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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자그마했던 이대부중고교 교정
 지난날 자그마했던 이대부중고교 교정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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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학교

한 달 전쯤이다. 이대부고 동창회 임원을 맡고 있는 한 제자(은건상)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 12월 2일 신촌 로터리 인근에서 동창회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참석을 부탁 올립니다."
"고맙네. 가능한 참석하겠네."


앞으로 건강하게 그들을 만날 기회가 점차 어려워질 것 같아(솔직히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은 예감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 며칠 뒤 콧물이 나오고 기침이 나는 등, 증세가 심상치 않아 원주보건소로 가자 이튿날 코로나19 '확진'이란 문자를 받았다.

1주일 격리로 보냈으나 상쾌하지 않기에 며칠을 고심하다 그 제자에게 하는 수 없이 불참을 통보했다. 이번에 동창회에 참석하면 나는 여러 제자들에게 고개숙여 그동안의 배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간곡히 드리려 작정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던 일로 불발이 됐다.

나는 1971년 7월 10일부터 교단에 선 이래 2004년 2월 29일까지 모두 32년 6개월을 학교 교사로 근속했다. 그동안 네 학교를 거친 바, 이대부고에서는 가장 오랜 기간인 27년을 근속하고 떠났기에 학생들과 가장 정이 많이 들었을 뿐 아니라 많은 제자들을 만났다. 재직 중에는 미처 몰랐는데 퇴임 후 내 삶에 여러 제자들의 배려가 큰 영향을 끼쳤다.

내가 작가로 그동안 40여 권의 책을 펴낸 것도, 시민기자로 2천 꼭지 가까운 기사를 쓰면서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를 취재 답사한 것도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이대부고 제자 덕분이었다.

한 제자가 전했다. 자기 동창 집에 갔더니 서재에 선생님 저서들이 거의 다 꽂혀 있더라고. 이 출판 불황에도 그래도 출판사로부터 푸대접 받지 않는 것은 아마도 전국에서 이즈음은 세계 각처에 흩어진 제자들이 내 책을 읽어준 탓일 게다.

지난 2018년 11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민화협 연대모임에 취재차 참가했다. 마침 금강산 삼일포 쇠다리 위를 지나는데 이대부고 제자인 남측 김홍걸 민화협상임의장이 북의 민화협 김영대 회장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번 행사에 취재차 오신 기자 분이신데, 사실은 저의 고교 은사님이십니다."
"네에! 스승님을 금강산에 모셔 오셨구만요. 두 분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금강산 삼일포 쇠다리 위에서 남북 민화협 대표와 함께(좌로부터 남 김홍걸 상임의장, 기자, 북 김영대 회장)
 금강산 삼일포 쇠다리 위에서 남북 민화협 대표와 함께(좌로부터 남 김홍걸 상임의장, 기자, 북 김영대 회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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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에서 만난 제자

한 번은 일본 기타도호쿠지방 관광청의 초청을 받아 취재 중 제자와 동행하면서 가마쿠라(얼음집)에서 같이 기념사진을 촬영하자 일본 측 관리가 셔터를 눌러주면서 그 광경을 보고는 감탄했다. 

"'사제 동행'의 취재 여행'. 과연 한국은 선비의 나라로 아직도 사제의 도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밖에도 국내외 제자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은 건 너무 많아서 아예 <마지막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한 권 펴낸 적도 있었다.
  
일본 기타도호쿠 지방의 한 얼음집에서 김자경 제자와
 일본 기타도호쿠 지방의 한 얼음집에서 김자경 제자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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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976년 8월, 처음 이대부고교에 부임했을 때 1개 학년이 4학급으로 서울 시내 중고교 중에 가장 작은 학교였다. 학교 규모가 작다보니 피해도, 불만도 많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작은 게 아름답고 학교다웠다. 2000년 이후 구조조정으로 이대부고도 같은 재단 내 이웃 금란여고와 합쳐 20개 학급 가까운 대형 학교가 됐다.

그때 어느 날 시험 감독으로 한 학급에 가자 한 학생이 "선생님도 저희 학교에 계시느냐"고, 학급일지에 쓴다면서 내 이름을 물었다.

마치 학생들이 대형 공장에서 제품이 쏟아지듯 배출되는 학교에서 무슨 애틋한 사제의 정이 있으랴. 이즈음 나는 작은 아름다운 학교에서 27년 동안 여러 제자들과 동고동락했다는 사실을 내 인생에 큰 보람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올해는 건강 문제로 동창회 모임에 참석치 못하지만 내년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날을 고대해 본다.

졸업생 여러분! 내년에는 꼭 만납시다.

태그:#사제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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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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