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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총장을 쫓아다니는 이유 

"지난 3월부터 대화로 풀자고 요구를 했지만, 총장이 꿈쩍도 하지 않아요. 총장실 앞에서 기다렸더니 도서관장실로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하기 위해 투쟁 중인 민주노총(덕성여대분회) 소속 덕성여대 청소노동자가 <한겨레>와 인터뷰한 이야기다. 사실, 다른 대학 총장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은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청소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해 대학 총장을 만나러 가면, 그들은 웬만하면 피하기 일쑤다. 덕성여대 총장처럼 총장실을 비우기도 하고, 청소노동자들의 총장실 접근을 아예 막아버리기도 한다.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을 찾으러 다니는 건 경험칙상 총장이 청소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최종 결정권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총장도 이러한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을 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총장과 청소노동자들의 쫓고 쫓기는 이러한 추격전에 대해, 예전에 한 노동자는 '술래잡기'를 본 떠 '총장잡기'라 불렀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거부하거나 해태해선 안 된다. 하지만 총장은 청소노동자들을 피해 도망 다녀도 처벌받지 않는다. 청소용역업체 측과의 만남은 '교섭'이라고 부르지만, 학교(원청) 측과의 만남은 '면담'으로 이름 지어지는 것이 실마리가 될 터다.

우리나라는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대상에게만 사용자성을 인정한다. 교섭은 사용자와만 할 수 있는 권한이므로, 그 이외의 대상과 만나는 일은 면담이라 한다.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실무진과 만나는 일을 교섭이 아니라 면담이라 부르는 이유다. 면담이란 단어 자체가 '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님'을 상징한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과 파업을 비난하는 대자보와 메모들 중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하청 소속 청소근로자 요구사항은 용역업체에게 교육기관을 볼모 삼삼"는 것이라는. 노동법과 민법의 관점에서 현재의 원·하청 관계를 제대로 파악한 내용이지만, 이 문제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을 비롯한 서울권 대학 청소노동자들(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이 용역업체들과 집단교섭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정, 쟁의행위를 하는 과정까지 모두 지켜본 적이 있다. 이때 확인한 결과는 청소노동자의 근로조건이 하청업체 측과의 교섭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측과의 면담을 통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학교 측과의 면담 과정에서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확약을 받으면, 그제야 교섭권을 가진 회사 측이 이를 토대로 노조와 함께 임금·단체협약에 도장을 찍는다. 그래서 청소노동자들이 용역업체 측과 교섭을 하는 것이 오히려 '면담' 같았고, 대학 측과 면담을 하는 것이 '교섭'처럼 보였다.

이제 용역업체와의 교섭과 조정 과정은 청소노동자 본인들이 일하는 일터에서 쟁의권을 행사하며 대학과 면담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과정은 매년 지속되고 있으며, 현재 1년 넘게 시급 인상을 요구 중인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이를 다시 한 번 입증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2026년까지 정년퇴직하는 청소노동자 12명의 후임을 충원하지 않는 구조조정안에 동의한다면 시급 400원을 인상해주겠다는 덕성여대 측의 주장은 제3자라고 주장하는 대학이 실은 용역노동자의 근로조건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현행법상, 총장(원청)이 청소노동자들(용역노동자)의 대화 요구를 거부해도 불법이 아니지만, 총장과 대화를 시도하기 위한 청소노동자들의 행위(파업, 농성 등)는 쉽게 불법으로 규정된다. 덕성여대분회 측에 따르면, 학교 측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는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을 불법('형법'상 업무방해)으로 간주한 결과다.

사실, 덕성여대 총장의 주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법과 원칙'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내세우는 '법과 원칙'의 적용 기준은 사용자냐, 노동자냐에 따라 판이하게 갈린다.

'법과 원칙'이란 이름의 노동착취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거부한다! 화물연대 시멘트화물노동자 기자회견’이 30일 오전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한라시멘트앞에서 열렸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대상자인 시멘트 운송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가 없다면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목숨을 내놓고 도로를 달려야하는 노예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조건없는 안전운임제 실시를 촉구했다.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거부한다! 화물연대 시멘트화물노동자 기자회견’이 30일 오전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한라시멘트앞에서 열렸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대상자인 시멘트 운송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가 없다면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목숨을 내놓고 도로를 달려야하는 노예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조건없는 안전운임제 실시를 촉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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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하려 한다. 올해로 끝나는 30인 미만 사업장의 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의 유효기간을 2년 더 연장할 방침도 세웠다. 그리고 지난 11월 28일 정부와 여당은 중대재해를 줄인다면서 "현재 규제와 처벌 중심으로 돼 있는 노동 정책을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바꾸겠다"(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고 밝혔다. 이는 법의 기준을 완화함으로써, 기업이 노동착취를 해도 불법이 되지 않는 상황을 '알아서' 만들어 주려는 모양새다.

반면,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법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제정에는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파업을 하려면 그 요건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에 대부분은 불법화되기 쉽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 역시 이 요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완화함으로써 헌법정신을 지키기 위한 법이 바로 '노란봉투법'인데, 도리어 정부와 여당은 자본주의를 유린하는 법이라 매도한다.

이러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지금 이 순간 벌이지고 있다. 정부는 화물운송 노동자들(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을 '집단운송거부'라 부르고 있다. 그들을 '개인사업자'로 분류한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화물운송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의 연장이다. 그런데 정부는 '개인사업자'가 자유롭게 운송을 거부하는 일에 대해 불법이라 말한다. 이때는 법적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노동자'의 파업으로 본 것이다. 그 결과 강제노동이나 다름없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의 법적 지위를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할 때 그 이익은 누구에게 향할까? 이 물음의 답은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이 누구를 기반으로 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본부의 파업과 관련해 "타인의 자유를 짓밟는 폭력행위"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이미 존재하는 법이 노동자의 현실을 얼마나 대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단지 법을 지켰느냐, 아니냐의 여부를 더 우선시할 뿐이다. 더 나아가서, 지금의 노동법이 노동자 편향적이라고 주장하며 있는 규제마저 없애려 하고 있다. 이는 다시 '법과 원칙'이란 이름으로 사용자의 노동착취를 정당화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쪽으로 치우친 '법과 원칙'을 수호하려는 대통령이 노동자(타인)의 자유를 짓밟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직화된 저임금 용역노동자들이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원청 사장에게 '교섭 같은 면담'을 요구하려다 오히려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여름,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제1도크에서 이미 본 적이 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도 이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 광경들은 "조직화되지 않은 저임금 노동자 일자리를 빼앗는 파업"에 대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엄포하는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태그:#노동자, #노동법, #법과 원칙, #저임금 노동자,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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