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문화 강연 프로그램 <일타강사>의 한 장면.

MBC 문화 강연 프로그램 <일타강사>의 한 장면. ⓒ MBC

 
국어를 잘하면 연애도 잘할 수 있을까? 학창 시절에 배운 고전 문학 작품들은 그 당시에는 안타깝게도 그 내용을 깊이 음미하기보다는 시험문제풀이와 공부를 위한 독서로서만 받아들이기 쉬웠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들여다본 이야기 안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과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한 흥미진진진한 통찰이 녹아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1월 30일 방송된 MBC 문화 강연 프로그램 <일타강사>에서는 문학작품에 담긴 '연애'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어느 때보다 후끈한 강의가 펼쳐졌다. '국어 영역계의 연민정'으로 불리우는 김민정 수능 국어영역 강사가 오늘의 '일타강사'로 출연하여 '국어를 잘하면 연애를 잘한다'는 색다른 주제로 수강생들의 연애세포를 자극했다.
 
이른바 문학 작품이라고 해서 고상하고 어렵고 지루하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교과서에도 실린 강신재 작가의 <젊은 느티나무>의 주제는 '이복남매의 사랑'이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 할 수는 없다'로 시작되는 소설의 첫 문장은, 의붓오빠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소녀의 심리를 풋풋하고 순수하게 묘사하고 있다. 요즘 같으면 막장드라마의 소재를 먼저 생각하기 싶지만, 원작은 1960년대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의 사랑과 미묘한 감정을 잔잔하고 세련된 문체로 아름답게 표현해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 로맨스 명작이었다.

황진이(黃眞伊 1506~1567)는 당대에는 천민출신의 기생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시인이자 시대를 앞서간 문화예술인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문학과 음악에 능한 당대의 예술가이자 본인도 예술같은 삶을 살다간 황진이의 인생은 오늘날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황진이는 '한국 문학사 속의 연애'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一到滄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엇더리.' 황진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조에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시대와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성으로 능동적인 사랑을 추구했던 '밀당연애'의 원조 황진이의 진가가 드러난다.
 
명월은 황진이의 기생명이고, 벽계수는 세종의 손자인 이종숙이라는 인물의 호였다. 벽계수는 당시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던 황진이를 만나고 싶어했지만, 도도하고 콧대높은 성격의 그녀는 글과 음악에 뛰어난 명사가 아니라면 왕족이라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조바심이 난 벽계수는 당대의 명사이자 시인이었던 이달(허균, 허난설헌의 스승)을 찾아가 황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조언을 구했다. 이달은 "황진이의 집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그녀가 살며시 나와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하지만 절대 아는 척 하지 말고 일어나서 재빨리 말을 타고 가버리시오"라고 설명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취적교라는 다리를 건너기 전까지는 절대 돌아봐서는 아니되오"라는 팁을 알려줬다.
 
벽계수는 이달이 알려준 그대로 실행했다. 호기심을 느낀 황진이는 말을 타고 떠나는 벽계수의 등 뒤에서 즉석에서 지어낸 프리스타일 시조가 바로 이 '청산리 벽계수'였다. "한번 떠나면 나를 다시 만나기 어려울 걸요, 내가 여기 있으니 쉬어가는 게 어때요?"라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본인의 도도한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품격있게 상대의 마음을 흔드는 노련한 황진이표 작업 멘트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음이 흔들린 벽계수는 이달의 신신당부에도 참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는 황진이의 테스트였다. 황진이는 벽계수가 명사가 아닌, 한량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뒤돌아서 가버리고 말았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잘나가는 왕족이 한 기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안절부절하고 그런 왕족에게조차도 서슴없이 밀당을 할 수 있었던 황진이가 시대를 앞서간 인물임을 보여준 장면이다.
 
황진이의 이상형은 시조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예술가였다. 이사종은 조선 중기의 명창으로 당대의 예술가이자 황진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황진이는 놀랍게도 유부남인 이사종에게 먼저 결혼을 제안했을뿐 아니라 '6년간 시한부 계약 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3년은 이사종의 집에서 첩살이를 하고, 3년은 황진이의 집에서 동거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황진이는 6년간의 결혼생활을 마친 후 사랑했던 이사종과도 미련없이 결별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의 또다른 대표작에는 님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그리움이 녹아있다.

첫 두 구절까지가 '나홀로 보내는 외롭고 추운 겨울밤을 님이 오실날을 기다라며 따뜻하고 노곤하게 보내겠다'는 잔잔한 내용이라면, 핵심인 마지막 구절의 '어론님'이란 남녀의 육체관계를 의미하는 기본형 '얼우다'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바로 '님이 오면 뜨거운 밤을 보내겠다'는 19금 의미가 숨겨져 있다.
 
또한 여기에서 파생된 표현이 바로 지금의 '어른'으로서, 남녀가 결혼하고 육체관계를 맺어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당대의 성관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학교 교과 과정에서는 이런 내용을 설명할 수 없기에 '어론님'을 '정든 님'으로 순화한 버전으로 알려진 경우가 대부부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의 '구뷔구뷔 펴리라'에서는, 멈출 수 없는 시간을 '물질화'하여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황진이의 센스있는 표현력이 돋보인다.
 
조선시대의 역사는 여성이고 천민이었던 기생 황진이의 삶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의 한계속에서도 황진이는 본인의 예술적 재능으로 사대부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후대에 전해진 단 몇 편의 작품만으로 한국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불멸의 존재가 됐다.
 
주요섭 작가의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1935)>는 성인의 연정을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서정성 짙은 작품이다. 1961년 신상옥 감독에 의하여 소설이 최초로 영화화되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고,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분에서 한국 영화로서는 최초로 출품된 작품이기도 하다.
 
극중 옥희의 어머니는 불과 24세로, 17세에 결혼하여 1년 후 옥희를 낳았으나 남편의 요절로 과부가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1930년대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의 삶이란 지금보다 훨씬 퍽퍽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모녀가 둘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던 상황에서 옥희 외삼촌의 친구라는 사랑손님이 들어오게 된다. 사랑손님 아저씨와 옥희는 한 집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가까워진다. 아저씨는 옥희를 통하여 어머니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며 호감을 드러낸다. 옥희도 다정한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어느날 옥희 모녀가 다니는 예배당에 사랑손님도 참석한다. 옥희는 아저씨를 발견하고 반가워하지만, 엄마와 아저씨는 둘 다 서로를 끝내 쳐다보지 않고 미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옥희는 유치원에서 예쁜 꽃을 발견하고 몰래 집으로 가져온다. 꽃의 출처를 묻는 엄마에게 옥희는 사실대로 말하면 혼이 날까 두려워서 "사랑손님 아저씨가 줬다"고 둘러댄다. 당황하던 엄마는 꽃을 자신의 풍금 위에 고이 놓아둔다. 시간이 흘러 꽃이 시들자 남은 꽃을 잘라서 성경책 안에 놓아둔다.

사랑손님은 옥희 편에 방값을 핑계로 봉투안에 편지를 넣어서 엄마에게 전달한다. 편지를 읽은 엄마는 당황하여 어쩔줄을 모른다. 그날 밤 옥희 엄마는 깊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남편의 옷을 정리하는가하면, 옥희와 함께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는 구절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음을 암시한다.
 
이야기의 시대 배경은 1930년대로 아직 보수적인 정서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더구나 사랑손님의 정체는 죽은 옥희 아빠의 친구이기도 했다.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과부의 재가금지법이라는 악법이 폐지된 것이 말기인 18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법은 없어졌지만 오랜 관습이 남긴 고정관념은 아직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 건재했다. 시대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옥희 엄마에게 새로운 사랑을 꿈꾸기에는 현실은 너무나도 벅차고 가혹했다.
 
이야기 내내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옥희 엄마가 유일하게 옥희에게 속마음을 독백하는 장면이 있다.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그리 되면 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받고 옥희는 시집도 훌륭한 데 못 가구,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되어도 에이 그깟 화냥년의 딸이라고 남들이 욕을 한단다"는 구절에서는 당시의 보수적인 시대상과, 자식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야만 하는 한 여인의 가슴아픈 현실이 녹아있다.
 
옥희 엄마는 옥희를 통하여 사랑손님에게 답장을 전한다. 옥희 엄마의 답을 들은 사랑손님은 그녀의 상황과 의사를 존중하고 옥희네 집을 조용히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옥희 모녀는 언덕 위에 올라 떠나는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주요섭 작가는 남성임에도 당대 여성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탁월한 면모를 보였다. 주요섭은 스텐포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지식인 출신이었다. 신식교육과 개방적 사고를 습득하고 돌아온 작가의 눈에, 당시의 모국 사회는 아직까지 보수적이고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운 상태였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새드 엔딩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와 권리, 감정을 억압하는 구시대적인 관습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주요섭은 왜 사랑손님이나 옥희 엄마의 시점이 아닌, 옥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을까. 죽은 남편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는 어떻게 보면 불륜이나 막장으로 보일수 있다.

하지만 '서술자'가 옥희가 되면서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지켜본 어른들의 이루지못한 사랑은 더 애틋하고 순수하게 다가오게 된다. 남녀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옥희의 시점에서 보는데도 그 감정이 오롯이 전달되는 느낌이다. 시간이 흘러서도 이 작품이 깊은 여운을 자아내는 서정적인 러브스토리로 기억에 남은 이유일 것이다.
 
흔히 '책으로 연애를 배운다.'는 식의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학의 본질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속에는 당연히 사랑이라는 주제도 포함되어있다. 문학을 통하여 직접 겪어보지못한 삶의 여러 모습을 경험해보게 되듯이, 다양한 시대-세대의 연애도 체험해볼 수 있다. 좋은 문학은 인간과 사랑을 배우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기도 하다.
 
일타강사 황진이 젊은느티나무 사랑손님과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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