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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편집자말]
"다 그 아이를 위한다고 한 일인데 아직도 엄마라는 자리가 제겐 너무 어렵습니다."
"나 또한 그 자리가 제일 어렵네. 그러니 부모는 앞서가는 이가 아니라 먼저 가본 길을 알려주는 이라 하지 않던가. 그럼 적어도 자식이 위험한 길로는 가지 않게 해야지."


보검군을 세자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대비를 도와 중전(화령, 김혜수)에게 해를 가하려 한 태소용. 그 죄를 물어 태소용을 나인으로 강등시킨 중전 화령이 그녀에게 건넨 말이다. <슈룹>이라는 드라마 내용이다. 사극인 드라마가 이토록 화제인 것은, 다루는 내용이 시대를 아울러 현실과 대비해도 위화감을 주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커다란 스토리 라인은 세자의 죽음을 밝히고 악의 축인 대비와의 싸움에 대한 내용이지만, 내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그 메인 줄거리 사이의 대군들과 후궁들 그리고 중전 화령의 에피소드들이다.

다른 엄마와 '쫌' 다른 화령
 
보검군의 마음을 다독이고 태소용을 깨닫게 하는 중전.
 보검군의 마음을 다독이고 태소용을 깨닫게 하는 중전.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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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고귀인과 심소군의 에피소드였다. 경합을 끝내지 못하고 궁 앞에서 신분을 밝힌 심소군은 엄마인 고귀인의 냉대를 받게 된다. 단지 배가 너무 고파 찾아왔다는 아들을 받아들이지 못한 엄마를 보며 심소군은 끝내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 과장된 에피소드이긴 하겠으나 고귀인이 그렇게 매몰차게 아들을 몰아붙였던 데에는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의 한계를 인정할 수 없는 이 시대 엄마의 욕심을 대변한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씁쓸했다.

드라마에서 심소군을 살리고 달래는 것도, 보검군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도, 태소용이나 고귀인을 깨닫게 해주는 것도 모두 중전 화령이었다. 이런 화령의 에피소드들이 더욱 와닿는 까닭은 아마도 화령이 육아와 교육의 멘토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금쪽같은 내 새끼>의 드라마 버전이라고나 할까. 화령에게서 오은영 박사가 겹쳐 보이는 게 나뿐일까.

화령의 존재는 한 마디로 말하면 '멀리 볼 줄 아는 엄마'이자 멘토다. 물론 화령도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은 엄마이긴 하지만 '멀리 볼 줄 안다'라는 게 그녀가 다른 엄마와 다른 점이다.

중1을 앞둔 아이가 요즘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예중 피아노 진학을 접고 공부를 시작했으니 아무래도 남들보다 늦긴 했다. 이제 중학교 1학년 수학 선행인데도 초등 때와는 다르다 보니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가 들고 오는 수학 문제를 보니,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4학년부터 중등 수학 선행을 하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소금물 농도, 거리 속력 문제 등등 1차 방정식의 활용 문제라 까짓것 얼마나 어렵겠나 싶어 엄마가 가르쳐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어라, 이게 너무 어려웠다. 문제를 들여다보니 정말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작하자마자 아이의 의욕이 꺾이는 게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함께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도 들어보고 별별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아마도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고, 공부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참 막막하고 재미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요즘 들어 내가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괜찮아. 모를 수도 있지"다. 이 말이 크게 위로는 안되고 해결책도 아닌 걸 알지만 적어도 '엄마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 것 같다.

더 이상 뜨끔할 일 없도록
 
<슈룹>을 보는 내내 자꾸 힐링이 된다.
 <슈룹>을 보는 내내 자꾸 힐링이 된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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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둘째와 수학으로 고군분투를 하다 보니 자꾸 첫째 때의 일이 생각난다. 특별히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아니었고, 그 또래 많은 아이들이 선행을 시작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아이의 '어렵다, 모르겠다'라는 호소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공감해 주었어야 했는데, 늘 추상적으로 '넌 잘 할 수 있어! 더 집중해서 공부해 봐'라는 소리만 했던 것 같다. 학원 선생님이 진단해 주는 이야기만 들었지 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려 하지 않았으니, 돌이켜보면 아직 어렸을 큰 아이가 얼마나 막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나는 <슈룹>에서 화령이 다른 후궁들에게 건네는 말들이 꼭 나를 향해 하는 말 같아 자꾸 뜨끔해지곤 한다.

"자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잘못된 방법을 택한다면 오히려 자식을 다치게 할 수도 있어. 결국 자네의 그 욕심 때문에 보검군이 저리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 아닌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볼 때나 드라마 <슈룹>을 볼 때나 한 발짝 떨어져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 부모와 아이를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아이의 고통과 부모의 문제가 잘 보인다. 마치 첫째를 키울 때와 달리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둘째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화령의 육아 비법은 눈앞의 욕심보다 아이의 입장에서 멀리 봐주는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슈룹>을 보는 내내 자꾸 힐링이 된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경합을 포기하는 심소군과 그 어떤 후궁보다 무서운 엄마였던 고귀인이 이를 미소로 지켜보는 장면은 정말 감동스러웠다.

그러나 감동이 그저 감동으로 끝나서는 안될 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화령'을 좀 닮아보자 마음먹지만 아무래도 나는 '먼저 가본 길을 알려주는 이'가 되는 건 좀 접어두어야겠다. 멀리 보고 알려줘야지 하고 마음먹는 순간 욕심과 잔소리가 부록처럼 따라올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니 나는 그저 내가 '지켜봐 주고 사랑해 주고 칭찬해 주는 엄마'에서 그치기를 바란다. 여기에 더해 '늘 응원해 주고 아이를 받아들일 줄 아는 엄마'가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아마도 화령을 보면서 더 이상 뜨끔할 일이 없지 않을까.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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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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