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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농촌 상황에서도 귀농을 선택한 선무영씨는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꾸려가는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어려운 농촌 상황에서도 귀농을 선택한 선무영씨는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꾸려가는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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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농사할래요" 로스쿨 나온 아들에게 편지가 왔다 http://omn.kr/21t3o

- 그래도 여전히 귀농에 대한 걱정이 있을 텐데요(실제로 선무영씨는 아직 괴산에서 지낼 집, 농사지을 땅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다).

조 : "토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걸 참고 공부했다는 것에 가슴이 많이 미어졌죠. 그래도 시골은 도시보다 없는 게 많다, 그걸 다 감당해야 하는데 가능하겠나 하는 걱정이 내내 있었어요. 그런데 무영이 말이 '도시에 사는 우리 부부는 아플 자유도 없다'는데 그게 또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농촌살이에 대한 각오, 그것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생각을 말할 때 제가 완전히 설득 당해버린 거기도 하고요."

선 : "당장 병원에 다니는 것만 생각해봐도 농촌이 더 힘든 건 사실인데요, 그래도 제 일상 전반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시골 살이에 대해선 이미 듣고 보고 경험한 것들이 있어서 알고 있는 것도 많지만, 여전히 두려운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도 저는 귀농을 하고 싶더라고요."

- 보통 도시에서 생활하다 귀농·귀촌을 하는 경우엔 농촌의 문화, 농촌 사람들을 대상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나쁜 의도가 없다고 해도 결국 이런 게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하거든요. 귀농 선배이기도 한 조금숙씨가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조 : "도시의 길은 세금을 들여서 행정이 만드는 거지만, 농촌 마을의 길은 주민들이 내어준 길들이거든요. 농촌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지속돼왔던 거예요. 여기 저희 집까지 오는 길도 그렇게 만든 거고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지요.

농사지을 때도 그래요. 동네 변씨 할아버지네 밭에 순지르기 하는 거 보면 '아, 우리도 할 때가 됐구나'하면서 따라하고 그분들이 저희에게 많이 알려주기도 하시고요. 농촌 살이라는 게 그렇게 서로 어울리는 거더라고요. 저도 늘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런 게 마을 선주민들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바탕이 됐던 거 같아요.

한편으론 농촌의 땀과 노고를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리틀포레스트> 같은 거 보면 여유롭게 내가 가꾼 거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것만 나오고 그 이면의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잖아요. 누차 얘기하지만 10년을 농사지었어도 소득이 없는 상황처럼, 생계 문제가 정말 어렵고요.

저희는 유기농 아로니아 농사와 함께 소규모 가공도 하는데 농민 개인이 해썹(HACCP) 인증을 받고 법이 요구하는 시설을 갖추기란 정말 어렵거든요. 그렇게 투자를 한다고 해도 판로도 없고, 있다 해도 제값을 받기 힘들고요. 도시에 있는 소비자들이 우리 농업의 이런 어려움을 충분히 알아주셨으면 하죠. 물론 행정이 그만큼 농업을 제대로 뒷받침할 지원을 만드는 게 선행돼야 하고요."

- 책에서도 농촌기본소득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런 맥락이셨죠.

조 : "네, 농촌기본소득 정말 필요해요. 사실 우리나라 정책에서 농업은 그야말로 내다버린 분야잖아요. 하지만 농업을 지키지 않고서는 우리 삶을 지속할 수 없죠. 기후위기에, 전쟁에 갈수록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식량주권은 더욱 절실해졌어요. 그래서 농촌기본소득이 필히 실현돼야 해요. 농민이 농사를 지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게끔요.

그렇게 되면 청년들도 농촌으로 더 많이 유입될 수 있지 않겠어요? 도시에서 팍팍하게 부대끼며 사느니 농촌에 와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태적인 삶을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죠. 기후위기와 식량주권 문제부터 청년 실업, 지역 불균형, 지역 소멸 같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농촌기본소득이라고 봐요. 대기업이나 큰 공장 하나 유치하면 지역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데 그건 정답이 아니죠."

"농사 지으면서도 여유롭게, 그 가능성 확인하고 싶다"
 
"저는 이 책을 농정 입안자들이 꼭 보면 좋겠어요. 귀농·귀촌인이나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분들도 꼭 보셨으면 좋겠고요." - 조금숙씨
 "저는 이 책을 농정 입안자들이 꼭 보면 좋겠어요. 귀농·귀촌인이나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분들도 꼭 보셨으면 좋겠고요." - 조금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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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농촌 상황에서도 귀농을 선택한 선무영씨는 어떤 방법을 꿈꾸고 계신가요.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꾸려가는 스타트업을 만드셨다고요.

선 : "청년 귀농 지원 정책도 꽤 있잖아요. 하지만 이런 것은 승계농이 받기 좋은 경우가 많고 결국 대농 중심의 정책이기도 해요. 농사짓는 것 외에 로컬크리에이터니 뭐니 하는 지역 활성화 사업들이 있긴 한데 이 역시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있고요.

결국은 꼭 대농이 아니어도 먹고 살 수 있는 일이 농촌에 있고 그걸 통해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누나와 함께 '찐촌바이브'를 만들었고요. 나름의 자체 상품(기념품)도 만들어보고 '그린던전'이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해봤어요. 귀농·귀촌 전에 고추 한 번은 따봐야 한다, 고추도 한 번 안 따보고 귀농하면 나중에 텃세니 뭐니 이런 거 핑계 대면서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귀농·귀촌에 관심 있는 분들 신청을 받아 저희 동네 분들 밭에서 고추를 땄죠.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반농반엑스(X)'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되고요. 일단 저 역시 다양한 농촌살이 방법을 시험해보는 단계예요. 다음에는 비건(채식) 김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 도시에 있는 친구들 반응은 어떤가요.

선 : "저는 즐거운 이야기를 막 하는데 친구들은 '그래도 안가' 이런 반응이에요(웃음). '네 얘기 잘 들었는데, 응, 좋은데, 그래도 난 안 가'. 농촌을 그렇게만 보는 게 안타깝기도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겠죠. 굶어죽어도 도시에서 죽겠다는 건데, 이건 각자가 가진 가치와 지향에 따른 거니까요."

조 : "친구들은 너와 취향이 다르지만, 또 다른 곳엔 너와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있는 거니까."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까. 뭘 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야. 처음에 네가 시골에 온다고 할 때, 시골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했었어. 그런데 널 보며 다시 배웠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은 있다는 걸. 비 젖은 길에 홀로 켜 있는 가로등을 보며, 엄마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 한다. 붉은 고추가 마지막 빛을 더해가고 있다. 가을이다." - 조금숙, 177쪽 '널 보며 배웠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마음' 중

- 앞으로 '이런 삶을 살고 싶다' 하는 목표가 있으신가요.

선 : 어머니, 아버지 때에만 해도 무언가를 부지런히 하는 삶이 옳은 삶이었는데 저는 그렇게까지 느끼진 않거든요. 농사를 지으면서도 여유롭게 살고 싶어요. 어머니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보실 거 같지만 저는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고요.

제 아내는 디자이너인데, 예쁘고 세련된 감성의 농업 브랜딩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하기도 해요. 우리 가족으로 넓혀 봤을 땐, 누나네 가족까지 우리 가족 모두 괴산에 모이는 걸 꿈꿔요. 가족 공동체가 가까이 살면서 같이 일도 하고 육아도 하고 여러 모로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조 : "마을에 보면 평생 농사짓다가 이제는 기력이 다 한 홀몸 어르신이 많아요. 특히 여성 노인이 많지요. 홀로 되신 여성 노인을 위해 무언가 도모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소일거리라도 같이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생활에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일이요.

여성 노인들이 모여서 두부를 만들 수도 있을 거 같고요. 주변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 보면 마음이 쓰여요. 그분들이 앞으로의 삶을 즐겁게 영위할수 있는 길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이 편지들, 책을 읽으실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조 : "저는 이 책을 농정 입안자들이 꼭 보면 좋겠어요. 귀농·귀촌인이나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분들도 꼭 보셨으면 좋겠고요. 도시와 농촌간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현재 농촌 문제가 어떤 것이 있는지,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내고 힘을 합칠 부분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고요."

선 :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정말 열심히, 또 정말 힘들게 살고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위안이 됐으면 하죠. 동시에 자극이 되면 좋겠어요. 어떤 이들에게는 제가 도시에서 실패해서 농촌으로 오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는 정말 즐겁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거든요. 남들 눈에 실패로 보일지언정 기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거, 괜찮을 수 있다는 그런 위안을 주고 싶어요."

월간 옥이네 통권 65호 (2022년 11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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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 선무영 (지은이), 한겨레출판(2022)


태그:#귀농,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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