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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누에를 키워서 억대 연봉이 됐다더라, 누구는 딸기로 그만큼 번다더라, 또 어디서는 소셜 커머스니 스마트농업이니 하는 걸로 농업의 '혁신'을 만들어간다더라...

농업으로 소위 '돈 좀 만져봤다'는 사람들이 종종 미디어에 오르내리면서 농촌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는 이들도 늘어난 듯하다. 실제로 일부 농축수산업 분야 종사자 중에는 웬만한 대기업 회사원 연봉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이들도 있으니,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닐 터.

그러나 수출 주도 국가 정책에 우리 농업은 내내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점, 산업화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저곡가 정책 등으로 하루 일해도 연 1천만 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어렵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 와중에 아름다운 자연, 한가로운 삶을 그리는 영화 <리틀포레스트>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유토피아를 찾아 농촌으로 오는 이들도 한때 적지 않았다.

이러니 도시 물 먹은, 특히 공부깨나 했다는 이들이 귀농 혹은 귀촌을 이야기할 때 덜컥 겁부터 나기 마련이다. 가볍게 내딘 그 걸음이 혹여나 상처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기대에 찼던 시선이 실망의 눈초리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책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저자 조금숙·선무영씨
 책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저자 조금숙·선무영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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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10년 차 농부, 조금숙씨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아들 선무영씨가 돌연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충북 괴산으로 귀농(귀촌도 아니고!) 하겠다고 했을 때 그는 '일단' 아들을 말렸다. 처음에는 도시 사람들이 으레 가지는 낭만으로 귀농을 이야기하는 것이겠거니, 농사의 고달픔과 시골 살이의 어려움을 알게 되면 적당한 때 마음을 접겠거니 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시간이 갈수록 귀농을 향한 아들의 뜻은 확고해졌다. 학창시절부터 어머니와의 편지를 즐겨했던 아들은, '귀농을 주제로 한 편지로 다시 어머니의 마음을 두드렸다. 가깝게는 농촌에서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는 것부터 조금 멀게는 농촌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에 대한 이야기, 불균형 발전으로 인한 농촌 소외 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두 모자의 편지에 그대로 녹아있다.

그 속에는 농촌을 마냥 이상적인 공간으로 보거나 무작정 수익 창출의 대상으로 보는 편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 농촌에 발붙이고 사는 이상, 또한 농촌에서 살아가기를 결심한 이상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편지글 행간을 농밀하게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서간은 농촌에 사는 이들에게, 또 농촌을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남다른 위로와 공감이 되고 앎이 된다.

조금숙·선무영씨 모자가 나눈 편지글은 지난해 <한겨레> 칼럼으로도 연재됐고, 지난 8월 이를 모은 책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가 출간됐다. 귀농을 원하는 아들과 말리는 엄마 사이 네 번의 계절을 지나며 모아진 편지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책 출간 직후인 9월 충북 괴산에서 두 저자를 만나 나눈 대화를 정리해 담는다.

"이런 마음이면 시골서 사는 게 맞겠다 싶었다"

- 아들의 귀농 이야기에 앞서 어머니 조금숙씨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책에 드러나는 농촌에 대한 문제의식이 남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대농 중심의 농업 통계에 대한 지적이나 소농을 위한 사회적경제 활동, 농촌의 열악한 생활 기반 부족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농촌을 떠날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농촌을 돌아보고 지켜야 할 이유라고 말하는 대목들이요.

조금숙(이하 조) : "환경 분야 시민단체 활동을 했었어요. 주부가 돼 아이들을 기르면서는 생협 운동을 시작했고요. 그때가 1999년 무렵이었는데, 2002년에 경기도 군포에서 아이쿱(iCOOP) 생협을 창립하기에 이르렀어요. 그렇게 한동안 생협 운동에 매진했죠. 그러다 2011년 괴산에 터를 잡았고 2012년 완전히 내려와 농사를 짓게 됐죠. 정말 이제 딱 10년이 된 농부네요(조금숙씨는 군포생협이사장으로 있던 시절 군포시의회 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한 풀뿌리활동가다 - 기자 말)."

선무영(이하 선) : "아무래도 아들과 주고받는 편지이긴 하지만 <한겨레>를 통해 공론화 기회를 얻게 됐다 보니 농업농촌 관련 이야기가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 생협 활동이 귀농의 가장 큰 이유였던 건가요?

조 : "처음에는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가서 살자더라고요. 괜히 수도권에 비싼 아파트 깔고 앉을 필요 없다는 게 이유였어요. 남편이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노조 위원장을 하면서 학내 부당노동 투쟁을 했던 때이기도 해요. 그 스트레스가 컸다 보니 얼른 귀농하고픈 마음도 있던 거죠. 저 역시 조금 더 젊을 때 가야 농사도 지을 수 있겠다 싶었고요.

돈 벌려고 욕심 부리지 않으면 시골 가서도 먹고 살 수는 있겠다 하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그렇게 내려와서 아로니아 농사를 시작했는데... 그래도 원체 타고난 성격이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라,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웃음)."
 
"예전에는 농사일을 '돕는' 입장이었는데 귀농을 선언하고부터는 정말 모든 게 제 일이 되고, 스스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픈 마음이 강해지더라고요." - 선무영씨
 "예전에는 농사일을 '돕는' 입장이었는데 귀농을 선언하고부터는 정말 모든 게 제 일이 되고, 스스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픈 마음이 강해지더라고요." - 선무영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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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귀농을 먼저 한 어머니인데 아들의 귀농은 반대하셨어요. 그리고 아들은 그걸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썼고요. 설득의 수단으로 편지를 택했다는 게 또 재밌는 부분이에요.

선 : "어머니나 저나 예전에도 종종 편지를 써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나누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어머니가 평소에 글을 즐겨 쓰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제 나름대로는 욕심을 내봤던 거기도 하죠."

조 : "말로는 하기 어려운 게 글로는 가능한 부분이 있잖아요. 말로 하기엔 간지럽거나 힘들어서 전하지 못하는 것도 편지로는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때가 많고요. 아들이 서울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고, 그런 생활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 가끔씩 편지를 썼죠."

- 두 사람이 편지로 귀농 찬반을 나누는 동안 어머니의 생각이 변하는 게 점점 보이기도 합니다.

조 : "맞아요. 무영이가 제 나름의 논리로 이야기 하는 것들,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들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처음에는 힘든 이야기를 해야 안 올테니, 제가 귀농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냥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또는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만으로는 귀농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요. 그런데 무영이와의 편지가 오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런 마음이면 정말 시골 와서 사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웃음)."

선 : "제가 명절마다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안 된다고 말씀 하셨거든요."

조 :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어쨌든 귀농은 확실해진 이야기고, 이제 여기 와서 무얼 하든지 해내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어요."

선 : "저 역시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농사일을 '돕는' 입장이었는데 귀농을 선언하고부터는 정말 모든 게 제 일이 되고, 스스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픈 마음이 강해지더라고요."
 
"로스쿨에서 깨달은 게 많습니다. 넘어지는 법을 배웠달까요, 제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배웠달까요. (…) 곧 변호사가 되리라 생각되던 아들이 이제는 농부가 되겠다니 당황스러운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아쉬울 게 없습니다. 제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렵니다." - 선무영, 26쪽 '인생을 시골에 걸어볼 생각입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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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힘들게 사는 분들, 제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http://omn.kr/21t3u

월간 옥이네 통권 65호 (2022년 11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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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 선무영 (지은이), 한겨레출판(2022)


태그:#귀농,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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