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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미국 에미상 6관왕을 했다는 소식이 이제 놀랍지 않은 세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OTT의 대중화 속에서 많은 자본이 방송미디어산업으로 유입되었고 산업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여전히 무법지대로 남아있는 노동실태가 있다. 과거와 달리 근로시간 제한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현장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무법지대 투성이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2018년 창립 때부터 방송미디어노동자들을 위한 상담·신고 창구인 '미디어신문고'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접수된 사례를 통해 여전히 드넓게 남아있는 방송미디어산업의 노동권 무법지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래 서술된 내용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하였다. - 기자 말


함께 똑같이 일하는데 프리랜서?

유튜브 매체 소비가 지상파 방송을 넘어섰다. 14~25세 청소년·청년은 하루에 유튜브를 1시간씩 본다. 방송미디어산업에서도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웹드라마나 짧은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방송한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 과정을 보면, 작은 제작사에서는 여러 명의 PD가 기획과 연출, 제작 및 편집까지 함께 작업한다.

미디어신문고에도 다음과 같은 사례가 들어왔다. 한 PD가 다음날부터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근무 불성실과 자막 실수 등이었다. 프로그램 조회 수가 저조하여 오래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자 당황스러웠고 생계가 걱정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30일의 해고 예고가 지켜지거나 이에 상응하는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는 당연히 없었다. 프리랜서 계약서를 썼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하고 절차를 이어갔다. 제작사는, 다른 PD는 정규직이지만 구제 신청을 한 PD는 프리랜서라는 주장을 펼쳤다. 팀으로서 협력하며 똑같은 업무를 똑같이 수행하지만, 누구는 직원이고 누구는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라는 것이다. 출퇴근을 같이하고 동일한 업무 지휘를 받는데 프리랜서라는 것이다.

임금체계나 직급, 계약 기간 등에 있어 차이가 없는같은 팀 구성원끼리 누구는 정규직이고 누구는 프리랜서인 게 가능할까? 회사는, 프리랜서라는 주장과 더불어, 다른 보통의 부당해고 싸움처럼 당사자가 얼마나 불성실했는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같은 팀으로 일했으나 외부 프리랜서이고, 그래서 해고가 아닌 계약 해지이지만, 계약 해지 사유는 보통의 노동자처럼 업무 불성실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운영하는 미디어신문고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운영하는 미디어신문고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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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인 노동자성 확인에 가로막힌 노동권 보호

OTT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산업 생태계가 급격히 확장됐고, 과거 뉴스를 통해서나 종종 접할 수 있었던 대규모 제작비 미지급 사태는 찾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소규모 제작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여전히 발생하는 일이다.

한 제작사에서는 거의 모든 드라마 스태프의 한 달 치 임금이 체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촬영이나 조명 등 기술 스태프뿐만 아니라, 데이터 매니저나 FD와 같은 연출 직군, 심지어 단역배우 등에 이르기까지 직군을 가리지 않았다. 드라마 촬영 진행 중에 한 달 치가량의 임금이 미지급되었고, 이후 제작사의 일방적인 사정으로 촬영이 잠정 보류되었다. 촬영이 보류되는 동안 스태프들은 다른 일을 구하지 못해 소득도 없이 기다려야 했다.

노동법이 제대로 적용된다면, 1개월의 미지급 임금과 1개월의 휴업 수당(평균임금의 70% 수준)이 지급되는 게 마땅하다. 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었으나,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노동자성을 부정한 것이다. 근로감독관은 진정을 넣은 당사자에게, 출퇴근 보고를 하는지, 인사복무 규정을 적용받는지, 복장 규정이 있는지, 제3자에게 대신 일을 맡길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

일주일 전, 또는 심하면 전날 알려주는 방송 촬영 일정에 따라서 출퇴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에게 형식적인 출퇴근 보고 체계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인사복무 규정, 취업규칙 등은 존재하지도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출근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제3자에게 대신 일을 맡길 수 있는지도 현장의 종속관계를 생각해보면 결과를 당연히 짐작할 수 있다. 판례에 근거한 근로자성 판단을 위해 기계적으로 들이대는 이러한 형식 논리는, 당사자 입장에서 보자면 이걸 왜 물어보는지 몰라 황당할 뿐이다.

2018년과 2019년 근로감독을 통해 드라마 촬영장에 있는 스태프 거의 모두가 노동자임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럼에도 개별 진정을 넣으면 기계적으로 노동자성 판단 질문을 하고 그에 따라 당사자의 권리 구제가 가로막히는 실정이다. 행정력의 한계 때문인지 몰라도 이러한 개별 진정에서 노동자성 판단은 면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사 양쪽에 단지 일회성 진술을 통해 진위를 확인하거나, 심지어 업무 지시를 하지 않았다거나 본적도 없다는 사용자의 거짓말에도 노동자에겐 반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나마 부당해고 사안이라면 노동위원회를 통해서 다투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임금체불은 노동청에서 노동자성을 부정하면 민사소송밖에 방법이 없고, 소액일수록 여기에 드는 시간적·물질적 비용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 근로시간 위반도 마찬가지이다. 개별적인 대응을 위해 일련의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 이미 촬영이 종료되고는 한다.
 
‘미디어친구들 제대로 캠페인’에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미디어신문고 상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미디어친구들 제대로 캠페인’에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미디어신문고 상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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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자유롭다고?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책임지고 있는 업무에 따라서 강제로 정해진다면, 출퇴근 시간이 고정된 것보다도 훨씬 더 종속된 것을 의미한다. 근무일에 노동자의 시간 주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앞서 드라마 스태프의 경우를 보자면, 기술 스태프는 대체로 촬영 일정에 따라서 일한다. 연출 직군의 경우에는 촬영이 없는 날도 바쁘다. 이는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수개월 단위로 집중하여 촬영하고 끝나면 다른 드라마로 옮겨가는 드라마 촬영과는 다르게, 예능은 길면 수년간 정기적으로 방송이 계속된다. 다만 프로그램의 포맷이나 출연진, 촬영장소 등이 더 패턴화된 방식이다. 한 예능 연출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로 연락해왔다. 노동자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출퇴근 시간을 물었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고 답하였다.

이미 2020년 청년유니온의 조사로 극한의 장시간 초저임금 노동실태가 드러난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스타가 참여하는방송 일정에 맞춰 준비·정리 시간을 더한 만큼 움직이게 되며, 이는 당연히 하루 8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게다가 퇴근하고도 다음 방송 스타일링을 혼자준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평균 월급은 13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또한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으며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기에, 임금 체불이 발생하면 근로시간 문제가 발생한다.

교통카드 기록으로 출퇴근 시간을 정리하고 업무 지시를 받은 소셜미디어 메시지 등을 함께 제출하여도,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거나 고용관계가 아닌 개인과 개인 간 사적인 약속으로 보고 노동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경력 3년 차인 어시스턴트가 1년 반을 일한 팀에서 괴롭힘으로 인해 퇴사하고 마지막 달 임금을 받고자 하였다. 이 경우 근로시간을 일일이 확인한 뒤 최저임금을 적용하여 계산한 체불 임금 규모가 퇴직금을 포함하여 1600만 원에 달했다.

유연함을 넘어 형태를 잡기 어려운 방송미디어 노동

방송미디어 노동은 너무나도 유연하여 형태조차 잡을 수 없다. 마치 아무 형태나 될 수 있는 '메타몽'(만화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캐릭터. 어떤 형태로도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님)과도 같다. 당사자들도 그런 유연한 노동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창작 노동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노동 형식에 익숙해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개인의 일상 및 건강, 산업 생태계가 지속가능하고 일터의 안전이 보장되려면 당연히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회사원'을 잣대로 노동자성 기준을 들이대고, 여기에 충족되지 않으면 노동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으며, 그래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모조리 사라지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방송미디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건 머나먼 길이다.

노동자성을 회피하기 위한 방식도 다양하다. 4대 보험 미가입이나 업무용 노트북을 주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실제로 작동할 만한 상황이 없어도 일하는 사람이 제3자를 고용하여 일을 넘길 수 있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고, 출퇴근과 업무 지시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노동자성을 회피하는 데 성공하면 노동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베팅해보는 것일 테다. 이러한 편법을 계속 용인해서는 안 된다. 행정당국은 업종 특성과 현실에 맞게 노동자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센터장이 쓴 글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1,12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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