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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을 시작으로 매월 첫째주,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연재한다. <주간함양> 곽영군 기자가 함양의 치열한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흥미롭게 전하는 연재 코너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 '함양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자말]
사과농장주 김창진씨
 사과농장주 김창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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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빛 찬란한 가을의 낭만도 이제 한풀 꺾이고 차가운 바람을 대동한 동장군이 서서히 고개를 들추는 시기, 딱 사과가 맛있어질 계절이다. 밤낮 분명한 온도차는 사과를 더욱 품격 있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다. 수동면 감 농장에서도 그랬듯 경남 함양의 기온은 과일 당도를 결정하는 일등공신. 감 농장에 이어 두 번째 '체험 함양 삶의 현장' 체험지는 함양읍 김창진씨가 운영하는 사과농장이다.
   
새벽녘에 내린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이른 시간 목적지를 향했다. 최근 전시회가 열리는 곰 갤러리를 지나 도착한 사과농장에는 이곳 터줏대감 백구가 꼬리를 흔들며 취재진을 반겼다. 반가운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을 요량으로 다가서니 이빨을 드러내며 경계한다. 그냥 일하러 가야겠다.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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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하게 펼치진 사과 밭에는 구역마다 빨갛게 무르익은 사과가 장관을 이룬다.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가 공주를 유혹하기 위해 사과를 선택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보기만 해도 맛있는 맛, 나무에 매달린 사과가 매력적이다.
    
사과는 크게 쓰가루, 홍로, 양광, 부사(후지)로 구분된다. 이중 김창진씨 농장에서 재배되는 품종은 부사와 홍로다. 부사는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끄는 품종으로 1970년 초반 국내로 들어왔으며, 당도가 높고 보존성이 뛰어나다. 사과 표면에는 흰색 반점이 있으며 10월 이후 주로 수확한다. 홍로의 경우 당도와 신맛이 모두 풍성하며 9월 이후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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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주에게 사과 따는 방법을 간단히 듣고 본격적인 체험에 나섰다. 방법은 이전 감 농장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특이한 점은 사과는 먼저 손으로 비틀어 가지를 잘라낸 다음 가위로 남은 부분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지를 너무 짧게 자르면 상품 가치가 떨어져 적당한 길이로 잘라야 한다. 살짝 손목 스냅을 이용하니 사과가 툭툭 잘 떨어진다.
    
한창 사과 수확기라 그런지 농장주는 트랙터를 몰며 사과 옮기기에 정신이 없다. 평수가 워낙 넓어 바쁜 시기에는 인부를 고용해 부족한 일손을 채운다.

본격적인 사과 작업을 위해 밭 안쪽으로 들어서니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농장주와 함께 웃음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파자마 복장을 한 어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계셨다. 이 분들은 사과 수확철이면 용돈을 벌겸 며칠씩 일을 도와주신다. 사과를 따는 어머니, 딴 사과를 선별해 바구니에 옮기는 어머니 등 10여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어머니들 사이로 다가가니 어색한 모습을 보이며 부담스러워 했다.

어머니 한 분이 "여기는 크게 도와줄 일이 없다. 저기 위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성격유형검사(MBTI) 검사 결과 ENFP(호기심이 많은 탐험가형,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인 나에게 외면이란 있을 수 없다. 특유의 친근감으로 꾸준히 말을 걸며 어머니들을 귀찮게 했다. 20분쯤 옆에서 재롱을 떨며 일손을 도우니 그제야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농사전문 일꾼처럼 옆에서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가 되선 안 된다. 꽉 찬 사과 바구니를 옮기며 무겁고 힘쓰는 작업을 도맡았다. 나무 밑에서 작업을 마친 어머니들이 사다리를 이용해 나무 꼭대기에 열린 사과까지 남김없이 거뒀다. 한쪽 발을 나무에 걸쳐 위태롭게 작업을 이어나가는 모습에 걱정을 내비치니 어머니는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최선을 다해야지"라며 곡예에 가까운 작업을 이어갔다.

특별한 비법보단 지역적 특성이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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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이어지는 어머니들의 수다는 주로 자식 이야기와 연예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여전히 <미스터트롯>은 인기다. 특히 가수 임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그 외 신유, 영탁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아이돌 얘기하는 젊은 친구들 모습과 다를 게 없다. 트롯가수에 대한 지식이 빠삭했다. 서로 가장 좋아하는 가수 이름을 말하며 세세한 소식부터 집안사정까지 나열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고생이었다.
     
1만8천여 평이 넘는 김창진씨 사과농장 사과들은 대부분 완판이다. 특별한 비법보단 지역적 특성이 한몫 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이 지역 해발이 460정도 되며 뒤로는 지리산이 자리잡고 있어 다른 지역보다 더 춥고 기온차가 커 사과가 맛있다"며 "또 다른 지역에 비해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피해도 크지 않아 환경적 조건이 사과 키우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사과 품종을 결정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맛과 빛깔이다. 현재 김창진씨 농장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안겨주는 품종은 부사이다. 이 부사도 세분화하면 종류가 10가지가 넘고 그중 가장 맛 좋고 저장성이 좋은 사과를 김창진씨는 선택했다. 과거에는 다른 품종을 시기별로 재배했지만 지금은 부사와 홍로를 주로 재배하고 있다.

그런데 사과 밭 일부에 특이한 사과나무들이 있다. 최근 부상 중인 신규 재배기술 다축형 수형 조성이다. 하나의 축을 통해 방추형으로 결실을 맺는 기존 사과나무와 달리 한 뿌리 위로 2축, 4축 등 여러 개 축을 키워 열매가 달리도록 하는 기술이다. 
  
나무 하나에 여러 축이 있으니 생산성이 증가하고 개별 축이 햇빛을 골고루 받아 품질이 높이는 장점이 있으며 반사필름도 필요가 없다.
    
오늘같이 농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들은 대부분 60대가 넘는 어르신들이다. 지금은 가까스로 외국인 근로자와 고령의 어르신을 고용해 부족한 농업 일손을 채우고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농업의 일손은 누가 책임지게 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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