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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조감', 종이에 채색, 84.1x118.9cm, 2022 ⓒ임진우
 '덕수궁 조감', 종이에 채색, 84.1x118.9cm, 2022 ⓒ임진우
ⓒ 임진우, 배재학당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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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 종이에 채색, 36x26cm, 2021
 '중명전', 종이에 채색, 36x26cm, 2021
ⓒ 임진우, 배재학당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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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정동거리를 산책하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펜화그림전 '정동산책, 그리고 서울'을 감상했다. 덕수궁과 근대문화유산 등 역사적 흔적이 많은 정동거리와 서울 곳곳을 펜화로 그린 작품들 중엔 눈 내리는 풍경이 유독 많았다.

일반 사진과 달리 펜화는 어딘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그림 속 눈 발자국들은 방금 만들어진 것처럼 생생했다. 남산과 명동성당의 서정적인 수채화에서는 눈이 내리는 듯 했고 그 장소를 찾아 걷고 싶은 유혹마저 느꼈다.

내가 만든 추억의 눈사람은 작품에 없지만 눈을 배경으로 한 다채로운 풍경들은 마치 첫눈을 고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첫눈이 내릴 때다. 펜화에 몰입하면서 불현듯 동심의 추억들이 시나브로 떠올랐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겨울손님 

기후변화 탓인지 요새는 눈이 적고 내리는 날도 드문 편이다. 난동(暖冬)에 눈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어릴 적엔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애들은 추위보다 첫눈이 내려야 비로소 겨울을 실감하곤 했다. 그리고 눈이 오면 어김없이 밖으로 뛰어 나가 놀았다.

첫눈은 애들이 기다리는 겨울손님이다. 어른들은 생업에 바쁜지 눈발에 심드렁하고 폭설을 걱정하지만 우리들은 왠지 철없이 신났다. 딱이 겨울눈을 애타게 기다린 것도 아닌데 첫눈 소식을 어른들에게 맨 먼저 알리는 것도 우리들이었다.

무서운 선생님도 눈 오는 날만큼은 말썽피우는 우리들을 '살살' 대했다. 어떤 선생님은 눈을 애타게 기다린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 우리들은 속으로 킥킥댔다. 겨울눈은 심성을 아름답게 그리고 선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가 여겼다.

눈싸움은 우리들이 즐기는 겨울철 대표적인 놀이였다. 폭설이 내리면 싸움판도 커지는 법, 이때는 피아가 따로 없이 눈뭉치를 던졌다. 당시 허약한 체질에도 눈싸움만큼은 자신 있었다. 친구 눈을 맞혀 퉁퉁 부은 채로 다니는 걸 보고 미안한 마음에 피해 다닌 적도 있었다.

눈 내릴 때의 설레임을 따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어른들과 달리 하늘을 자주 쳐다보는 순진한 마음을 간직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밤새 눈이 많이 내리면 세상이 고요하다는 것도 잠에서 깨면 직감적으로 알았다.

눈 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비참한'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다방구(술래잡기)'를 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술래를 피해 도망 다니다 넘어진 곳이 하필 '인분거름더미'다. 살짝 눈 덮인 더미를 그만 밟고 말았다.

발목까지 빠지고 미끄러진 내 모습은 '꼴'이 아니었다. 인분에다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애들은 이때 '개똥이'란 그럴듯한 내 별명 하나를 추가했다. 어쩔 수 없이 인분을 뒤짚어 쓴 채 집에 와 부모님에게 혼난 적이 있다.

폭설이 내리면 우리들은 아랑곳없이 놀기에 바빴다. 놀다가도 눈이 내리면 더욱 신났다. 내리는 눈을 손바닥으로 받아 핥아가면서 깔깔댔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우스울지 모르지만 그때는 눈을 만끽했다.

어릴 적 기억에는 집 마당에 쌓인 눈도 애써 치우지 않았다. 그 자체가 아름다운 풍경이기에 서서히 녹을 때까지 그냥 나두고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갑자기 폭설이 오면 골목길 통행을 위해 동네 어른들이 함께 눈을 치우곤 했다.

눈이 쌓이면 놀이터가 되고 그 속에서 뒹굴었다. 희한한 게 눈바닥에 몇 번이고 미끄러져 다쳐도 병원에 간 친구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눈이 아니라 마치 솜이불 위에서 장난친 것 같았다.

첫눈을 기대하는 건 여전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가까운 친구들은 첫눈에 따로 모임을 갖자고 전격 제안한다. 그러나 약속대로 만남이 성사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약속을 잊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그만큼 순수한 감정과 동심이 사라졌다는 방증이다.

그래도 첫눈을 기대하는 것은 여전하다. 첫눈을 애타게 기다렸던 어릴 적 동심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변함이 없다. 비록 눈을 즐기고 함께 놀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그저 기다림 속에 희망과 사랑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기예보를 보면 조만간 첫눈이 내릴 모양이다. 눈이 적던 많던 날씨를 알려주는 기상캐스터들은 적설량과 안전을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눈을 반기며 아름다운 설경과 분위기도 함께 알려주면 좋겠다.

동심의 추억과 낭만은 그림이나 사진에서 꺼내 볼 정도로 희미해지고 있다. 그래서 첫눈의 촉감이 그리운지도 모른다. 욕심을 내 눈길을 걷거나 뛰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넘어지면 고관절이 다칠까 걱정하는 나이가 됐다.

어릴 때 소리 지르며 놀던 것처럼 할수는 없지만 첫눈이 내리면 아내와 함께 폼 잡고 사진 한 장 남겨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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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어쩌다 글이 언론에 발표되고 이를 계기로 습작과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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