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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추수감사절 때 시어머니표 호박 파이를 구웠는데, 이번엔 한국을 방문하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지나갔다. 그러다 며칠전 미국에 있는 딸과 통화하는데, 이번 추수감사절에 교수님 댁에 초대를 받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맞다! 미국은 아직 추수감사절이 안 지났지! 날씨가 훨씬 추운 캐나다는 추수감사절이 미국보다 한 달가량이 빠르다.

어쨌든 파이를 좋아하는 나는 뜬금없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핑계로 캐나다에서 시어머니표 호박 파이를 굽기로 마음을 정했다. 다양한 레시피가 있지만, 시어머니의 파이는 유독 부드럽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손글씨 레시피
 시어머니의 손글씨 레시피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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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파이를 만들 때 호박은 무엇을 사용할까? 흔히, 핼로윈 때 장식하는 펌킨 호박으로 만드는가 생각하지만, 사실 그 호박은 그리 맛있지 않아서, 먹는 용도보다는 장식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그래서 캐나다인들은 흔히 간편하게 캔으로 된 것을 사용한다. 호박 퓨레라고 불리는 통조림은 미리 준비되어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집에 호박이 아직도 네 덩어리나 있으니, 저걸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푹 익은 한국 호박으로 만들면 당연히 맛있겠지만, 사실 우리 집 녀석들은 푸르스름할 때 따 놓은 호박이어서 속이 얼마나 달지 감도 안 잡혔다. 그러나 뭐,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번 기회에 하나 잡아보기로 했다.

일단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제일 작은, 그러나 거의 50cm 가까이 되는 길이의 날씬이 늙은 애호박을 잘랐다. 이건 원래 늙힐 계획이 아니었는데, 발견하지 못한 곳에 있어서 어느새 커버린 것이었다.

늙은 한국 애호박으로 파이를 만들다
 
늙어버린 애호박
 늙어버린 애호박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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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을 씻어서 반을 갈라보니, 상당히 말라서 과육이 많이 얇아져 있었다. 빨리 익으라고 썰어서 껍질을 까고 씨를 빼서 그대로 오븐에 구웠다. 손 가는 게 싫으면, 큼직하게 잘라서 씨만 빼고 껍질째 구운 후, 긁어내도 된다. 

대략 한 50분 정도 구워준다. 살캉하게 익히는 게 아니라, 누르면 무를 만큼 넉넉히 익히는 것이 좋다. 오븐이 없으면 굽는 대신 쪄도 되지만, 그러면 수분이 많아서 질척해지기 때문에, 면포에 받쳐서 물기를 빼서 사용해야 한다.
 
오븐에 호박 굽기
 오븐에 호박 굽기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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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재료 중에는 농축우유(evaporated milk)도 있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농축우유는, 일반 우유를 약간 졸여서 수분을 살짝 날려준 우유이다. 아무것도 추가로 첨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팥빙수에 넣는 연유랑은 다르다. 

한국에서 이걸 구할 수 없다면, 우유를 낮은 온도로 잠시 졸여서 사용해도 된다. 농축우유는 일반 우유의 60% 정도가 되니, 3/4컵의 농축우유를 넣으려면 1과 1/4컵을 졸여서 사용하면 적당량이 될 수 있다. 
 
호박 퓨레와 농축우유 통조림
 호박 퓨레와 농축우유 통조림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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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정도 끓이면 되는데, 이때 불을 약하게 하지 않으면 쉽게 끓어 넘치니 주의해한다. 그리고 자주 저어주지 않으면 위에 단백질 응고된 것이 뜬다. 그 점을 주의해서 만들면 좋다. 집에 재료가 똑 떨어지면 나도 종종 사용하는 방법인데 무리 없이 잘 만들어진다.

그밖의 재료로는 여러 가지 향신료가 있다. 생강과 계핏가루는 필수이다. 넛맥이 들어가야 맛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구하기는 어렵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당밀도 들어가는데, 향과 색을 준다. 한국에서는 식용당밀을 구하기가 힘드니 생략해도 된다. 흑설탕이 들어가면 그것으로 비슷한 맛이 난다.

이제 파이지만 있으면 준비 완료다. 파이지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만들어본 적이 없다면 판매되는 냉동생지를 이용하면 간편하다. 밀가루를 피하고 싶다면, 아예 파이지를 생략하고 호박 커스터드로 구워도 된다. 남편은 밀가루를 못 먹는 알러지가 있어서, 어머니가 특별히 자신을 위해서 이 커스터드를 만들어주셨다고 했다.

재료가 다 준비되었다면, 이제 합쳐서 구우면 된다. 이때부터는 일사천리로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오븐 예열을 걸어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먼저 호박 퓨레에 향신료와 감미료를 모두 넣고 잘 저어준다. 그러면 노랗던 호박이 갈색을 띠게 된다.

달걀은 따로 풀어준 뒤에, 우유와 섞어주고, 다시 호박 퓨레와 섞어주면 끝이다. 내용물이 너무 묽어서 깜짝 놀랄 수 있지만, 그 안에 달걀이 있기 때문에, 굽고 나면 고정이 잘 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구울 준비가 된 파이
 구울 준비가 된 파이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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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파이지에 부어준다. 나는 두 배로 내용물을 준비해서, 나머지는 커스터드로 구웠다. 이렇게 한 50분 정도 굽고 나서 커스터드를 먼저 꺼냈다. 아무래도 반죽이 없으니 빨리 익었다. 
 
내열용기에 부어서 구우면 호박 커스터드가 된다
 내열용기에 부어서 구우면 호박 커스터드가 된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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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파이는 식혀서 차갑게 먹는 것이지만, 이렇게 구워서 나왔으니 빨리 맛을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얼른 커스터드 하나를 꺼내서 잘라 담았다. 그리고 파이지가 없으니 그 대신 생크림을 듬뿍 얹어서 간식으로 먹었다. 

맛에 관한 남편의 평가는, 서양 호박이어서 풍미가 다르지만 색다르게 맛있다고 했다. 호박마다 맛이 다르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남편이 어릴 때부터 먹어온 호박과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호박 커스터드에 생크림을 얹어서 먹는다
 호박 커스터드에 생크림을 얹어서 먹는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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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원래 설탕을 안 먹지만, 이번에는 흑설탕을 사용해서 색과 풍미를 지켜주기로 했다. 단, 원래 레시피에서 설탕을 반으로 줄여서 만들었다. 그래도 충분히 달다. 추수감사절도, 핼로윈도 지나갔지만, 아직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호박 파이가 있으니까.
 
호박파이 한 조각
 호박파이 한 조각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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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파이 만드는 법>

파이지(없으면 생략), 호박 퓨레 1컵, 흑설탕 1/4컵, 소금 1/2 작은술, 넛맥 가루 1/2 작은술, 생강가루 1/2 작은술, 계핏가루 1작은술, 당밀 1큰술 (없으면 생략), 달걀 2개, 우유 1/2컵, 농축우유 3/4컵(우유를 뭉근히 끓여서 식혀서 사용해도 된다).

1. 파이지를 준비해서 파이 틀에 넣어 모양을 잡는다.
2. 오븐을 220°C(450°F)로 예열한다.
3. 달걀과 우유를 제외한 재료를 먼저 섞어 놓는다.
4. 달걀과 두 가지 우유를 섞어주고, 다시 퓨레와 섞는다.
5. 파이지나 내열용기에 붓고, 예열된 오븐에 넣는다.
6. 오븐을 즉시 180°C(350°F)로 낮추고, 50분~1시간 정도 구워준다.
   이쑤시개로 찔러봐서 반죽이 묻어 나오지 않으면 완성.
7. 그대로 어느 정도 식힌 후, 냉장실에서 완전히 식혀서, 차가운 상태로 생크림 얹어서 서빙한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비슷한 글이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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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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