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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병원에서 퇴원하라는 얘기를 들은 다음날, 불안하고 급한 마음에 맞은 편 침대까지 보행기를 짚고 걸어보려 했다. 급한 마음과 달리 다리가 버텨주질 못했다. 제자리 걷기와 한두 걸음 옮기기 정도밖에는 아직 할 수가 없었다. 한 열흘 정도를 조급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드디어 나를 받아주겠다는 의사를 만났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나니 지금 나에게 닥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병원의 의료행위를 심사하고 지원금을 결정하는 곳인 듯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화를 했다. 민원 상담을 하는 곳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어쨌든 지금 내 상황에 대해 뭔가 설명을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다.

마땅히 물어볼 데가 없어서 검색하다 전화했다고 우선 양해를 구했다. 몸은 병원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인데, 진단서의 일수에 따라 퇴원을 해야 하는 상황임을 설명했다. 병원의 의료행위에 대한 심사기준이 진단서의 일수인지, 그렇다면 나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자신들의 평가기준이 진단일수는 아니다, 환자의 퇴원 여부는 전적으로 담당 의사의 판단이다, 의사와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등의 답이 돌아왔다.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었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더 답답해졌다.

목소리가 떨려서 나왔다. 끊고 나니 한참 눈물이 흘렀다. 나에게 닥친 엉터리 같은 상황에 누구도 그럴 듯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와 통화했던 직원은 '당신의 힘든 상황이 우리 조직 탓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튼 위로가 되는 말을 듣거나 상황이 이해가 돼서 속이 좀 풀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하고 울면서 내 속풀이를 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세상의 무수한 모순을 보고 겪으며 나름 적응하고 살다가도, 받아들이기 힘든 답답한 순간들이 불쑥 찾아오곤 한다.

별다른 힘이 없는 우리 서민들의 경우는 일상에서 그런 순간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특권을 가능케 하는 것이 권력이라면, 말도 안 되는 억울함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일반 서민들의 삶인 듯해서 씁쓸해진다.

그래도 당장 내가 의지할 곳이 생겼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며칠 남지 않은 한방병원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운동실에서 안전바를 잡고 걷는 것도 시도해 보았다. 몸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 발을 끌지 말아라, 허리를 펴라 등 물리치료사의 간단한 코치가 도움이 되었다.

재활병원으로 옮겨 치료받으면서 내 경우는 진작부터 한방병원보다는 재활병원을 왔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방병원을 선택하긴 했지만, 나처럼 큰 사고를 당한 경우에 적절한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초기에는 한약과 침의 덕도 보았고, 숲속의 좋은 환경과 시설 등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했지만 굳고 약해지는 몸의 재활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재활병원에서는 회진 때마다 의사가 땀 흘리며 환자들의 몸을 만지며 풀어주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굳어있던 데가 많이 풀렸는지 걷는 것이 달라졌다. 이전 한방병원에 있다가 나보다 열흘쯤 후에 이 병원으로 옮겨서 같은 방을 쓰게 된 분이 있었다.

그 간병인이 나를 보고는 열흘 만에 너무 달라졌다며 놀라워했다. 한방병원에서는 그림의 떡이었던 재활용 자전거도 이곳에 온 지 이틀 만에 타기 시작했고, 잔뜩 긴장해서 있는 힘껏 부여잡던 보행기도 꽤 여유롭게 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병원의 시설은 많이 낡고 불편했다. 이전 병원의 시설과는 달리 낡았지만 의료진들에 대한 믿음과 창 너머 보이는 바다 풍경으로 불편을 극복하는 시간이었다. 창가에 서면 바로 앞 넓고 푸른 바다가 마음을 만져주었다.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니 완전 휴양지라며 감탄했다.
 
병원에 거의 갇혀 있다시피 지내던 때, 창밖의 넒고 푸르른 풍경은 나의 몸과 마음을 쓰다듬어주곤 했다.
▲ 병원 창밖 풍경  병원에 거의 갇혀 있다시피 지내던 때, 창밖의 넒고 푸르른 풍경은 나의 몸과 마음을 쓰다듬어주곤 했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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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만지지 못하던 왼쪽 발가락을 만지게 된 것, 오른쪽 발톱을 낑낑대며 스스로 깎은 것, 아침저녁으로 건물 밖 주차장으로 나가서 보행기로 걷기 시작한 것, 병실 내에서 보행기 없이 독립보행을 시작한 것 등이 재활병원에서의 한 달 간 겪은 변화들이었다.

그렇게 일신우일신의 나날을 보내다보니 입원 한 달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다른 병원을 또 알아봐야 할지 퇴원해서 집으로 가도 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처음엔 병원 바깥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생각할수록 집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과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결국 귀가를 택했다. 침대를 임대하고,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가사도우미 단체 연락처를 알아놓는 등 퇴원에 필요한 준비들도 해나갔다.

담당의와 상의하면서 퇴원일을 정했고, 거의 넉 달 동안 함께 했던 간병사님과도 퇴원 일주일 전쯤 헤어졌다. 이별을 앞두고 같은 방에 계셨던 환자분이 자리물회, 양념갈비 등을 사주시기도 했다. 간병사님이 안 계신 빈 자리는 같은 방 간병사님이 많이 채워 주셨다. 빨래를 해서 널어주고 걷어주고, 떠나는 날 짐도 1층까지 옮겨주셨다.
 
드디어 병원을 나서는 날이 왔다. 그동안 나름 익숙했던 병원을 나서는 마음이 두려움, 기대 등으로 조금은 어지러웠다.
▲ 퇴원을 위한 짐  드디어 병원을 나서는 날이 왔다. 그동안 나름 익숙했던 병원을 나서는 마음이 두려움, 기대 등으로 조금은 어지러웠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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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넉 달에 걸친, 나에게는 결코 짧지만은 않았던 병원 생활이 드디어 끝났다. 그런데 재활병원에 있으면서 이미 몇 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는 신경 손상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힘들게 걷기 연습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모습의 한 청년은 퇴원을 앞둔 나에게 부럽다고 했다. 그것도 밝은 얼굴로. 병원 입원 7년쯤 됐다 했던 것 같다. 주변에선 다들 걸을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같이 병원생활을 하던 환자 한 분이 할 수 있다며 계속 응원과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그 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병원에 찾아와서 청년의 운동을 도왔다. 환자로 살면서 몸에 대해 전문가가 됐나보다. 운동할 때는 온갖 욕까지 섞어가며 강행군을 시켰다.

내가 살아보니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니 한 발짝 걷는 것이 인생 최대의 일인 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병원에서의 삶도 삶이었다. 건강해도 아파도, 젊어도 늙어도 살아있다는 것에서는 다르지 않다. 죽기 전까지 우리 모두는 살아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이유라는 생각을 하며 4개월간의 병원 생활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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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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