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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이태원 참사 후 첫 주말인 5일 여러 시민과 외국인이 참사 장소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아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후 첫 주말인 5일 여러 시민과 외국인이 참사 장소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아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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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생님, 어느 날 전화를 한 통을 받았습니다.
따뜻한 목소리로 본인은 BTS 팬이자,
그들의 공식 팬클럽 ARMY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셨어요.

저의 글을 잘 읽어보았다고 대화의 서문을 여셨지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BTS와 나의 글이 무슨 관계일까.
무척이나 궁금했지요.

그러다가 듣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열린 BTS 콘서트 현장에서도 아찔하고 위험할 뻔한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을요. 10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콘서트였지만, 한 순간에 팬들이 몰리는 것을 대비하거나 안전하게 할 인원은 턱없이 부족했다고 했습니다.
그날 콘서트의 메시지는 'Yet To Come'이었어요.
외국팬들이 'Yet To Come'이 아닌,
'Not to come 부산'이라고 외쳤다는 것을 듣고, 너무 속상해져버렸습니다.

우리는 10.29참사와 비교해서 부산콘서트를 비교하고, 여의도 불꽃 축제를 비교하며 주최가 있는 모임과 주최가 없는 모임을 나란히 두며 이번 참사가 주최가 없음을 탓했었지요.

슬펐어요.
처음부터 주최가 있고 없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론에서 한동안 나오던 부산의 이야기와 현장에 있던 사람의 이야기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저를 많이 슬프게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무엇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걸까요.
아니, 제대로 볼 생각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까요?

제가 그분께 여쭤봤어요.

"그럼에도, 부산 콘서트에서 인명사고가 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장에서 안내하는 사람과 관리하는 사람이 수 없이 부족했지만, 그것을 알고 있었고, 저를 포함한 ARMY들이 자원봉사팀을 만들어 움직였습니다. 단 한 명의 팬도 다치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팬덤은, 팬문화는,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니까요."


결국 정답은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서로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서로 사랑해야 할 때예요. 다시 한번 국가에게, 국민에게 외치고 싶어요,
우리 서로, 사랑했으면 해요.

2.
저는, 사실 록 덕후입니다.
록페스티벌을 사랑하고, 봄 여름이면 록밴드들이 공연하는 축제와 공연, 페스티벌을 다니는 것 때문에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국내 밴드 중에서는 잔나비라는 그룹의 팬이지요.
잔나비는 특이한 그룹입니다. 특정 연령층이나 세대에 팬이 몰려 있지 않아요.
그 점이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성별 불문, 10대부터 60대까지 볼 수 있는 팬 문화거든요.

부산 록페스티벌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코로나로 인해서 록페스티벌들이 몇 년간 열리지 않다가,
3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 3대장 안에 드는 록페스티벌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그중에 하나에 속하는 부산 록페스티벌에 당연히 저도 참가했습니다.

잔나비가 헤드라이너였거든요.
헤드라이너급의 밴드가 무대에 설 때면 무대 주변은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요. 잔나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 60대 부부와 60대 여성분 한 분이 손목에 잔나비 슬로건을 들고 덩실덩실 즐기려고 서 계신 거예요.
열정 넘치게 록앤롤을 외치는 젊은 친구들에 못지 않게 방방 뛰기도 하시고, 때로는 에너지가 부족해 조금 쉬기도 하셨지만, 그 모습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곧 주변의 모든 젊은 친구들은 그 분들이 다치치 않게 밀거나 외면하거나 하지 않고 공간 확보를 해주는 매너를 보였어요.

나이에 상관없이 기성세대라고 일컫는 이분들이 다양한 세상과, 다양한 문화를 즐겁게 즐기고 사는 것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아무도, 젊은애들 노는 곳에 나이 든 사람이 뭐하러 놀러갔냐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지켜주고 그들이 소외감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분위기였어요.

다시 한번 외치고 싶어요.
10월 29일 그날, 놀러나간 것이 죄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놀다가 죽은 거 맞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니 할로윈을 없애버리자고 하는 사람들에게.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고요.

인간으로서 다양한 삶과 가치를 느끼며 즐기며 노는 것은 죄가 아니며,
그것으로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것을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하는 것이 본질이라고요.
이 간단한 것이 안 되는 이유는 그저 남을 미워하기만 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그릇된 마음 때문이라고요.

혐오에 지지 말아야겠습니다. 혐오에 지지 않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팬덤으로 바라보는 10.29참사가 지난 저의 글에 이어,
다시 한번 제 가슴에 '사랑'이라는 단어로 남아요.
저는 저에게 연락주신 BTS ARMY 분이 여시는
'팬덤으로 바라보는 10.29참사 안전 포럼'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스피커로서, 혐오에 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와야겠어요.

3.
어제는 허지웅 작가가 하는 라디오에 출연했어요.
심민영 국가트라우마 센터장님이 출연하신다기에, 사실 그분을 뵙고 싶어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센터장님께서 그러시더군요.

PTSD는 그냥 사건 그 자체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PTSD도 없는 것이었을 것. 그냥 어떤 사건이 나에게 일어난 것뿐이라는 것. 그러니, 죄책감이라는 것을 가질 필요도, 가질 이유도 없다고.

허지웅 작가는 제게 물었어요,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냐고.

"그냥...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잘 산다는 의미가 대단히 거창한 것은 아니고요. 내가 좋아하는거 한 번이라도 더하고, 내가 좋아하는 거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맛있는 거 한 번이라도 더 먹고. 젊은 친구들은 지금 보다 더 나대셨으면 좋겠고요, 그렇게 행복하게, 그냥 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허지웅 작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또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냥... 우리 서로 조금만 더 다정해지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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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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