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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에서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배정받을 수 있는 중학교는 총 세 곳이다. 그런데 그 중 한 곳은 학부모들이 가장 꺼리는 학교라고 소문이 나 있다. 이유인즉슨, 그 중학교 근처에 북한이탈주민들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가 있는데 그 아이들이 배정받는 학교라는 것. 맨 처음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참 징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차별을 하려면 온갖 이유를 들어서라도 어떻게든 차별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도대체 사람들 심리는 왜 그럴까? 티브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에서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실상들을 보면 혀끝을 끌끌 차며 슬퍼하다가 그 사람들이 어려움을 못 이겨 고향을 등지고 굽이굽이 돌고 돌아 남한 땅으로 들어오면 왜 차별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걸까? 비단 개개인의 문제일까? 국가가 탈북민에게 하는 행태들을 보면 탈북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과 배제는 국가 스스로 나서서 만든 것이나 다름 없다.
 
「탈북마케팅 ? 누가 그들을 도구 로 만드는가 -」
 「탈북마케팅 ? 누가 그들을 도구 로 만드는가 -」
ⓒ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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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탈북마케팅>은 탈북민들 중에서 '간첩'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국가 폭력을 드러낸다. 한참 전의 일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인혁당 사건 재심 준비를 도왔다. 내가 맡은 일은 한자와 한글이 섞인 조서들을 변호인과 재판부가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통일해서 정리하는 일이었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조작사건으로 1974년 4월 9일 8명의 관련자가 사형판결 하루 만에 사형을 당하였고,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사건 관련자들의 조서들을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의문이 쌓여갔다. "어떻게 수년전의 일까지 날짜와 시간, 장소 등이 하나도 헷갈리지 않고 여러 명의 기억이 모두 똑같을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했다. 모진 고문을 가해 모두의 말을 맞추게 만든 것이다.

책<탈북 마케팅>을 읽으며 그때가 떠올랐다. 방법만 좀 덜 잔인해 보이는 것처럼 바뀌었지 본질이 달라져 있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는 '자유의 땅'에 도착했는데 그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 그리고 차별과 배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 또한 이 부분을 꼬집는다. 저자는 탈북민들이 북한을 떠나오는 순간 '국가'라는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망명자가 되는데, '또 하나의 조국'이 되어야 할 대한민국은 그들을 '탈북 마케팅'에 이용하는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며 의구심을 드러낸다.

탈북민들은 대한민국 땅에 도착하면 국정원 중앙 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조사를 받는다. 그런데 조사를 받는 과정이 1970년대에 조작간첩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받았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

자신의 생애사를 쓰고, 또 쓰고 특정 경험들을 정리해서 쓰고, 그 내용들 중에서 앞의 것들과 비교하여 내용이 맞지 않거나 빠진 것이 있으면 집요하게 묻고 답하고를 반복하며 간첩은 아닌지 끝없이 의심을 받는다. 즉, 탈북민을 잠재적인 간첩으로 보는 것이다. 이 책의 주를 이루는 조작간첩 피해 당사자 탈북민들의 인터뷰를 보면 모두 한 사람의 인터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과정이 매우 비슷하다.

저자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탈북민을 잠재적인 간첩으로 보고, 또 간첩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들을 여과 없이 서술한다. 단순히 조작간첩 피해만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대한민국 땅에 약 3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탈북민 전체가 경험하는 탈북 경로와 탈북 과정에서 일어나는 구조적인 인권 침해를 기록하고 드러내는데 힘을 쏟았다.

또한 저자는 여러 인터뷰와 조사 등을 통해 탈북 브로커들이 국정원과 연계되어 있음을 밝히는데, 탈북민 출신의 브로커가 많고, 그들 대부분이 국정원의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여러 증언들을 통해 알려져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특히 저자는 국정원은 왜 브로커를 묵인하고 이용해서 탈북민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개입하는지, 탈북민들을 자신들이 받아야 할 정착금(이 정착금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다)을 브로커에게 빼앗겨야 하는지,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북한 주민들을 데려오는데 통일부는 왜 묵인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런 대답 없는 질문들에 저자는 브로커가 개입하고 돈이 오간다는 점에서 국정원이 하는 탈북민 사업을 '탈북 마케팅'이라고 명명한다.

우리는 여러 종편 채널에서 탈북민들이 패널로 나와 자신들이 북한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증언하고, 탈북 과정들을 이야기하며 분노하고 슬퍼하는 장면들을 종종 보곤 한다. 또 반북 집회와 교회 등에서도 장소만 바뀌었지 비슷한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자극적인 것들을 이용해서 관심을 끌고 시청률을 높이겠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이 책에 인터뷰한 탈북민들의 말에 따르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신들은 간첩이 아니라고 이런 자리들을 통해 계속해서 드러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생계 문제이다. 탈북민들은 자신들의 처신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도 '간첩'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북한을 비판하는 활동을 하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인 생계문제는 보탤 말도 없다. 탈북민들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많다. 연고도 인맥도 없는 이 땅에서 그들이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돈이 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압록강 일대와 단둥 일대에서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탈북자들을 모아서 돈 주면서 성경공부를 한다고 한다.(p139)

그 돈의 출처는 어디일까? 한국에서는 탈북민이 교회에 나가서 예배 시간에 앉아 있기만 해도 돈을 주는 교회가 있고, 북한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거나 '신앙 간증'을 하면 더 많은 돈을 준다고 한다. 또 기자와 연구자에게 증언을 해주면 보수가 지불되는데 증언이 끔찍할수록 비싸다는 것이다.(p228-229)

지난 10월 말, 혼자 살던 탈북민 여성이 사망한 지 약 1년만에 백골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보다 더 오래 전인 2019년 7월에는 서울 관악구의 임대아파트에서 살던 탈북민 모자가 사망한지 수개월이 지나 발견되었다. 사인은 아사였다.

환대를 기대하고 목숨을 걸고 건너왔을 이 땅에서 탈북민들은 국가와 주변인들의 노골적인 차별과 배제, 그리고 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무리들을 만났다. 탈북민들을 '탈북 마케팅'에 이용하며 국가도 언론도 한눈을 파는 동안 탈북민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한 관리 시스템 정비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탈북민들은 각자도생 하거나, 외롭게 삶을 마감했다.

탈북민들을 대하는 정부와 한국인들은 너무나 이중적이다. 그들이 '탈북민'으로 존재할 때에는 동정 어린 시선으로 맞이하다가 우리와 일상생활을 나누는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려고 하면 그들을 밀어내기 바쁘다.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탈북민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처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탈북민들은 하나같이 감격에 겨웠다고 말한다.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지만, 현실은 주민등록증이 신분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일부 탈북민들은 어렵게 온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기도 한다고 한다. 차라리 말을 못 알아 듣는 곳에서 차별을 받는 것이 낫다며 말이다.

적잖이 부끄럽다. 대통령은 '자유 대한민국'을 외치는데 내가 모르는 '자유'의 뜻이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자유 대한민국'에서 탈북민들은 정말 자유로울 수 있나. 우리는 그들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는가.

탈북민들을 잠재적인 간첩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구성원이 될 사람들로서 그들을 환대하기 시작한다면 굶주림을 피해 온 나라에서 굶주려 죽지 않았을지도, 혼자 외롭게 죽은지 1년이 지나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마따나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 곁에서 행복할 때, 우리는 북한 주민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을 쓴 사람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입니다.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소식지 <교회와인권>에도 실렸습니다.


탈북 마케팅 - 누가 그들을 도구로 만드는가

문영심 (지은이), 오월의봄(2021)


태그:#탈북마케팅, #탈북, #탈북민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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