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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충남 홍성의 사무실에서 출발해 2시간 30분을 달려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전남 곡성 김성곤 이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법정 앞에서 처음 만난 그와 광주지방법원 103호 법정으로 들어갔다. 큰 액수라 할 수 없는 '과태료 100만 원 사건'이지만 긴장됐다.

곡성 과태료 사건과 인연을 맺게 된 건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를 통해서다. A개발이라는 회사가 곡성군 겸면 운교리의 7개 필지 9만 4000여㎡ 부지에서 쇄골재용, 토목용, 조경용 토석 157만 5888㎥를 10년간 채취하겠다며 토석 채취 신청을 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반대해 결국 최종 불허된 게 요지다.
​​​(관련기사 : 현수막 걸었다고 1800만원...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http://omn.kr/1z9pr)

여기까지는 시골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는데, 이후 이야기에 의아한 내용이 많았다. 곡성군 3개 마을 주민들이 토석 채취 허가를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 61장을 내걸자 곡성군이 지정게시대가 아닌 곳에 현수막을 걸었다는 등의 이유로 1843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 것이다.

법 위반이니까 과태료 부과 처분 자체는 이해했지만, 지자체가 시골 농민들에게 18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라고 하다니 너무하다 싶었다. 결국 마을 주민들과 하승수 변호사는 이의신청을 내겠다고 했고, 하 변호사의 말을 정리해 이의신청서를 썼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이의신청 결과 1843만 원의 과태료가 100만 원으로 감액됐다고 전해 들었다. 결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주민들과 하승수 변호사는 과태료 100만 원에 대해 다퉈보겠다고 했다.
 
전남 곡성군 주민들이 건 채석장 반대 현수막
 전남 곡성군 주민들이 건 채석장 반대 현수막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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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태료 100만 원'의 네 가지 문제
     
이들이 다투려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 채석장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 수 있는 자유는 표현의 자유 영역이다. 고령의 마을 주민들은 인터넷도 유튜브도 할 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현수막은 부당한 처분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 표현의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현수막을 내걸었다고 과태료가 부과되면 자기 검열하게 돼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못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여러 과정을 거쳐 벌금이 100만 원으로 조정됐지만, 나중에는 1000만 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우려스럽다.

둘째,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2조 2항은 "이 법을 적용할 때는 국민의 정치 활동의 자유 및 그 밖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채석장 반대 현수막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환경 보호를 위한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게시한 것으로 환경권 행사의 수단이다. 이러한 성격의 현수막에 과태료 부과 처분을 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환경권 등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한다.

셋째, 불법의 영역에서 평등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하나 곡성군에서 2020년 이후 현수막에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가 없다. 특정 현수막만 골라서 과태료를 부과하는 처분은 수긍하기 어렵다.

넷째, 어르신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현수막을 내건 것이다. 어려운 농촌 형편에 과태료로 1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다.

그래도 법을 위반했으니 100만 원은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반면, 나름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이 사건의 변론을 맡은 변호사가 나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가격을 매긴다면?

다시 법정으로 돌아오면, 판사는 친절했고 충분히 말할 시간을 주었다. 법원이 과태료를 감액해줬음에도 문제를 다시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변론을 끝까지 들어주던 판사는 이장님에게도 충분히 말할 시간을 줬고, 잘 검토해보겠다며 심문을 종결했다.

변론을 마치고 이장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차를 마셨다. 마을은 채석장과 폐기물업체 등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모두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홍성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표현의 자유에 가격을 매긴다면 얼마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라면 100만 원 낼 각오를 하고 현수막을 걸 것인가?"
"100만 원이면 싼 것일까? 비싼 것일까?"


정해진 결론은 없었다. 개인마다 지불할 수 있는 범위도 다를 수 있었다. 동시에 돈을 지불해야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걸까 고민도 들었다. 홍성으로 돌아오는 길이 멀었다.
 
전남 곡성군 주민들이 채석장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전남 곡성군 주민들이 채석장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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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곡성, #현수막, #과태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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