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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병명은 처음 들었다. '체념 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이라니. 병명만 들어서는 '체념은 나도 하는데'라며 사소히 넘길 수 있겠지만, 실상을 보면 그럴 수 없다. 꽤 심각하다.

신경학자 수잰 오설리번은 한 뉴스 웹 사이트에서 '스웨덴의 불가사의한 병'이라는 기사를 본다. 기사는 '불가사의한 병'으로 '체념 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을 다뤘는데, 그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스웨덴에 있었다. 신경학자에게 불가사의한 병이란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했을 터, 그는 곧 스웨덴으로 향했다.

그가 스웨덴에서 만난 환자는 9살 난 소녀였다. 소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깊은 잠이 '불가사의한 병'의 실체였다. '자는 게 무슨 병이야' 할 텐데, 물론 자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깨어나지 않는 데 있다(이 병에 걸린 아이들과 부모의 실상을 한눈에 확인하고 싶다면, 이 질병을 다룬 존 헵터스, 크리스틴 새뮤얼슨 감독의 다큐멘터리 <체념 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의 기록>을 시청하는 것도 좋다).

소녀는 1년 넘게 잠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그녀의 뇌를 찍은 영상은 그녀의 상태가 건강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의료 검사도 정상이었다. 검사 결과가 입증하듯 소녀는 뇌사나 혼수 상태가 아니라 그저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소녀는 왜 자고 있는 것일까, 아니 왜 깨어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병의 또 하나의 문제는 깊은 잠에 빠진 아이가 이 소녀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200건(2019년 당시)이 넘는 증상이 보고되었고, 이 집단 발병 현상은 스웨덴을 넘어 그리스와 호주로까지 번지고 있다. 발병한 나라들을 살펴볼 때 눈 밝은 이라면 눈치챘겠지만, 난민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다. 이 잠자는 소녀들 모두는 난민이다.

수잰 오설리번이 만난 환자들의 가족도 환자만큼이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 출신들인데, 살던 곳에서 폭행과 강간, 협박 등의 위협을 받아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어 탈출했다. 이 모든 폭력을 아이들도 목격했고 겪어야 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피신했지만, 난민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 삶은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다.

이 불안과 공포가 소녀들에게 병으로 나타난 것이다. 오늘 당장이라도 목숨을 위협받았던 곳으로 추방될 수 있는 현실은 이 질병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목('Life Overtkakes Me')처럼 소녀들의 삶을 집어삼켜버렸다.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삶에 압도당한 소녀들이 택한 것은 바로 잠으로의 도피였다. 소녀들은 자신에게 들이닥친 삶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심리적 도피를 수잰 오설리번은 '해리' 현상으로 진단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를 동원해 이 모든 불안과 공포를 우회해 잠으로 떠난 것이다. 다행인 점은 소녀들의 이런 증상은 이들의 신분이 안정되면, 즉 난민 지위가 보장되면, 서서히 회복된다.

바꿔 얘기해 이들의 지위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회복은 한정 없이 지체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몇 년째 잠에서 깨나지 않는 소녀들이 바로 그렇다. 회복이 몇 년 간 늦어진다면 소녀들은 황금 같은 성장기를 빼앗긴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몸이 경직되지 않게 스트레칭을 시키고, 코에 낀 호스로 유동식을 공급하고, 마치 깨어 있는 아이를 대하듯 이름을 부르고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지만, 의식이 단절된 상황의 연속을 삶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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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 증후군'같은 집단 발병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수잰 오설리번은 그의 저서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에서 이 현상들을 자세히 다룬다. 니카라과 미스키토 부족의 '그리지시크니스'라는 집단 히스테리, 쿠바 주재 미국 외교관들에게 집단 발작으로 나타난 '하바나 증후군', 현대 의료 과잉진단화로 급증하고 있는 ADHD나 자폐 등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들 집단 발병에서 첨단 의료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집단 질병은 그 지역의 환경, 의학, 심리적인 요인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형성된다. 문화적으로 다르게 발현되는 질병을 다룸에 있어 서구의 진단체계를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대응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질병은 사회적으로 패턴화되는 행동"으로 질병에 대한 생각이나 신체 변화에 대한 태도, 병에 대한 설명 방식, 치료 방법 등은 모두 그 사회의 문화 속 학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확립된 의료 기술에 의한 생물의학적 진단만으로는 환자가 처한 심리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담아내지 못한다. 때문에 그 사회의 삶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민족지학적 연구 자세가 집단 질병 진단에 필요한 이유다. 민족지학적 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신 의학자 아서 클라이먼은 그의 저서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에서, "사회적 맥락에서 질병과 환자의 역사를 알아내려는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만 적실한 진단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진단은 곧 질병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수잰 오설리번 역시 의사의 민족지학적 태도를 환자의 질병을 해석해 내기 위한 유효한 도구로 간주한다. 환자의 신체 증상은 '암호화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난민 소녀들이 불안과 공포에 대한 SOS를 깊은 잠에 빠지는 것으로 발신한 것처럼 말이다. 집단 발병 환자들이 처한 사회 문화적 환경과 이를 반영한 심인성 진단이 도외시한다면, 이들이 보내는 신호는 번번이 기각될 것이다.

의사인 저자가 책을 마무리하며 집단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안한 것은 뜻밖에도 의료적 조치가 아니다. 그 지름길은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있었다. 집단 발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개인이 속한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가 겪는 질병의 증상을 낙인찍어 삶을 위협하지 않고, 든든한 지지와 촘촘한 지원망으로 질병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적 의지가 발현될 때, 집단 질병이 비로소 예방되고 치료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을 덮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걱정스럽다. 우리 사회는 이방인에게 매우 냉혹하다. 또한 질병에 대한 낙인 또한 강하다. 아픈 것을 태연히 드러내기 어렵고, 질병에서 완쾌하지 못한 이는 낙오자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등 사회 구성원의 집단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충격적인 재앙에도 사회의 반응은 냉담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지긋지긋한 레토릭을 반복하며 어서 잊고 일상으로 복귀하라 다그친다. 이렇게 회복을 재우치는 사회는 질병을 포용할 수 없다. 포용되지 못하고 내쳐지는 이들이 내릴 결정은 어딘가로의 도피밖에 없다. 이들에게 도망칠 곳이 남아있기나 하겠는가. 집단 질병은 그 사회의 참담한 실패다.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은이), 서진희 (옮긴이), 한겨레출판(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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