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 현대건설이 최하위 AI 페퍼스를 제물로 홈경기 19연승 기록을 세웠다.

강성형 감독이 이끄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16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15,25-17,25-13)으로 승리했다. 외국인 선수 야스민 베다르트가 어깨부상으로 결장했음에도 AI 페퍼스를 1시간14분 만에 가볍게 꺾은 현대건설은 남녀부 합쳐 V리그 역대 최고기록인 홈 19연승을 달성했다(7승무패).

현대건설은 미들블로커 콤비 양효진과 이다현이 나란히 13득점을 올린 가운데 이다현은 11번의 공격을 시도해 10번을 성공시키며 90.91%라는 엄청난 공격성공률을 기록했다. 아웃사이드 히터로 출전한 정지윤과 황민경도 각각 10득점과 7득점으로 힘을 보탰다. 그리고 현대건설 선수단의 '맏언니'이자 V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황연주는 지난 11일 KGC인삼공사전에 이어 2경기 연속으로 17득점을 기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외국인 선수와 겹치는 토종 왼손잡이 공격수
 
 황연주는 흥국생명에서 3회, 현대건설에서 2회 우승을 달성하며 총 5개의 우승반지를 가지고 있다.

황연주는 흥국생명에서 3회, 현대건설에서 2회 우승을 달성하며 총 5개의 우승반지를 가지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스포츠에서 왼손을 잘 쓰는 것은 대단히 유리하다. 야구에서는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는 야수들이 왼손으로 타격을 하는 우투좌타 선수가 부쩍 늘어났고 복싱에서도 '왼쪽을 지배하는 선수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왼손을 잘 쓰는 선수가 상당히 유리하다. 하지만 V리그에서는 왼손잡이 선수들, 특히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하는 토종 왼손잡이 공격수들은 프로 무대에서 고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심할 정도로 큰 V리그의 특징 때문이다. V리그가 출범하고 열린 첫 번째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선발된 184cm의 왼손잡이 공격수 나혜원은 일신여상 시절부터 '여자 김세진'이라는 닉네임을 얻었을 정도로 주목 받는 대형 유망주였다. 하지만 하께우 다 실바와 베타니아 데 라 크루스, 데스티니 후커 등에 밀린 나혜원은 프로 무대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지난 2013년 은퇴했다.

사실 왼손잡이 공격수들은 프로 입단 후 생존을 위해 포지션 변경을 하는 선수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선수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에서 활약했던 하유정(개명 전 하준임)이다. 188cm의 장신 아포짓 스파이커 자원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하유정은 2010년 어창선 감독의 권유에 따라 미들블로커로 변신해 도로공사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현재는 현대건설의 왼손잡이 공격수 나현수가 하유정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현존하는 왼손잡이 공격수 중 가장 성공한 선수인 '문가든' 문정원(도로공사)은 왼손잡이 공격수에 174cm의 단신이라는 두 가지 '핸디캡'이 있다. 단신의 왼손잡이 공격수 문정원의 성공을 예상했던 배구팬은 많지 않았지만 문정원은 리그에서 흔치 않은 '수비형 라이트'라는 독특한 유형의 포지션을 개척해 도로공사의 주전 선수로 도약했다. 리베로급 수비와 함께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스파이크 서브 역시 문정원의 전매특허.

고교 시절 박은진과 박혜민, 정호영(이상 KGC인삼공사) 등과 함께 선명여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아포짓 스파이커 이예솔(인삼공사)도 프로 입단 후 외국인 선수의 존재 때문에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예솔은 미들블로커로 변신할 수 있을 만큼 신장(177cm)이 큰 것도 아니다. 따라서 서브의 장점을 살리고 아직은 미숙한 수비를 보완해 문정원처럼 '수비형 아포짓'을 노리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야스민 공백 완벽히 메운 V리그 전설
 
 황연주는 야스민 부상 이탈 후 2경기에서 34득점을 기록하며 현대건설의 주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황연주는 야스민 부상 이탈 후 2경기에서 34득점을 기록하며 현대건설의 주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이처럼 토종 왼손잡이 공격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V리그에서 유일하게 왼손잡이 공격수로서 V리그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는 선수가 바로 황연주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시절 '여제' 김연경과 3번의 우승을 이끌었던 황연주는 2010-2011 시즌 현대건설의 프로 출범 후 첫 챔프전 우승을 견인하며 여자부 최초로 'MVP 트리플크라운(정규리그, 챔프전, 올스타전)'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황연주의 소속팀이 아웃사이드 히터를 소화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를 구했을 정도로 팀 내에서 존재감이 컸던 황연주도 378득점을 올린 2017-2018 시즌을 끝으로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특히 작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해설위원으로 후배들을 응원하는 등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는 듯 했다. 사실 황연주는 언제 현역은퇴를 선언해도 될 만큼 V리그에서 많은 것을 이룬 선수다.

하지만 지난 시즌 26경기에서 76득점에 그쳤던 황연주는 이번 시즌에도 현역 연장을 선택했고 지난 여름 컵대회에서 4경기에 출전해 69득점(평균17.25점)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정작 V리그가 개막되자 황연주는 외국인 선수 야스민에 밀려 4경기에서 단 1득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렇게 웜업존만 달구던 황연주는 지난 11일 인삼공사전 1세트에서 야스민이 어깨부상으로 교체되면서 뜻밖의 기회를 만났다.

인삼공사전에서 교체선수로 들어간 황연주는 23.08%의 점유율과 38.46%의 성공률로 17득점을 올리며 현대건설의 3-2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오랜만에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활약을 펼친 황연주는 16일 AI 페퍼스전에서도 야스민을 대신해 아포짓 스파이커로 선발 출전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30번의 공격을 시도한 황연주는 서브득점 3개와 블로킹 1개를 포함해 양 팀 합쳐 가장 많은 17득점을 기록하며 현대건설의 홈 19연승을 견인했다.

검사결과 어깨부위에 염증이 발견된 야스민은 큰 부상은 피했지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챔프전 우승을 목표로 하는 현대건설 역시 주공격수 야스민을 무리해서 급하게 쓸 이유는 전혀 없다. 결국 현대건설은 야스민이 없는 기간 동안 국내 선수들의 분발이 절실한 상황인데 야스민의 포지션에 'V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황연주가 있는 것은 현대건설로서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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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황연주 야스민 베다르트 토종 아포짓 스파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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