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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밥
 가마솥밥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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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자취다. 이번에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 따로 살 때가 왔음을 우리 가족 모두가 직감했을 뿐이다. 내년이면 벌써 28살이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가고 갑갑했던 일상. 이제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혼자만의 삶을 살고 싶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취도 여러 번 해볼수록 만만하다. 절대 처음부터 많은 도구를 사지 않는다. 난 심지어 드라이기도 사지 않았다. 헬스장 가서 씻고 올 것이기 때문에. 짐이 늘어날수록 털어야 할 먼지도 늘어난다. 무드등, 커튼, 귀여운 인형은 나중 얘기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기껏해야 세제, 휴지, 건조대 뿐이다.

이 과정에서 엄마아빠와 다퉜다. 이삿짐에 '전기밥솥'을 넣느냐 마느냐로 싸웠다. 2년 전이랑 똑같다. 난 여전히 전기밥솥 거부파다. 여태까지 가마솥이나 냄비로도 밥 잘 지어먹었는데, 왜 굳이 기계를 하나 더 들이냐는 게 내 주장이고, 엄마는 언제까지 그런 데 시간을 쓸 거냐며 효율적으로 살란다.

으으으, 왠지 모를 거부감. 그러나 엄마가 이겼다. 나의 부엌 한 켠에 대포알 같은 전기 밥솥이 들어섰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신도시 며느리 집에 놀러 온 할머니가 이런 맘일까. 밥솥의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마솥 밥은 쌀을 6시간 정도 불려 놓고, 한번 끓을 때까지 기다린 뒤, 그 다음 중불로 15분, 약불로 15분, 어느정도 된 것 같으면 뜸을 10분 들이면 끝이다. 그러나 요놈의 전기밥솥은 냉정하게 버튼 몇 개만 띡 붙어있다.

먼저 안의 솥을 꺼낸다. 솥 안쪽에 눈금이 붙어있다. 쌀컵수와 물높이? 눈금만큼 쌀을 부으라는 건가? 쌀을 탈탈탈 쏟는다. 이렇게 많이 부어야 한다고? 이러고 나니 물 부을 공간이 없다. 어쨌건 남은 눈금까지 물을 붓는다. 쌀이 3/4, 물이 1/4가 된 것 같다. 영 이상하지만, 백미 취사를 누른다. 단 5분 만에 모든 일이 끝났다. 간편하긴 하군.

가마솥이냐 전기밥솥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밥솥 밥
 전기밥솥 밥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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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이 지났다. '곧 취사가 완료됩니다. 잘 섞어 보온해주세요' 소리가 난다. 응? 시원하게 김이 나오지 않고 나오다 '픽~' 꺼진다. 뭔가 이상하다. 뚜껑을 여니 밥이 넘치기 직전이다. 맙소사! 쌀을 너무 많이 부었다. 한 입 떠먹어본다. 완전히 꼬들밥이다. 윽.

밥을 소생시키기 위해 검색창을 두들긴다. '물 한 컵을 넣고 한 번 더 취사하세요' 역시 인터넷은 없는 정보가 없다. 물을 듬뿍 넣고 다시 취사 버튼을 누른다. 갑자기 데자뷔가 스친다.

그러고보니 2년 전 쓴 '새둥지 자취생 이야기 시즌1' 첫 화가 망한 밥 얘기였다. 지금이랑 똑같다. 그땐 냄비 밥을 똑같이 꼬들하게 만들어서 야밤에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왔더랬다. 그리고 지금처럼 콸콸 소주를 부었다. 밥은 살아났다.

[관련기사 : 망한 냄비밥, 이렇게 소생시켰습니다]

따지고 보면 가마솥이냐 전기밥솥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뭘 해도 첫번째는 일단 망하고 본다. 그러나 그 뒤로는 모든 게 만만해진다. 망해도 소생할 방법이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니다. 밥이 아니더라도 모든 문제가 다 그러했다.

다시 한번 취사가 끝났다. 밥을 이리저리 찔러보고 쳐다본다. 어느 정도 살아나긴 했다. 위에는 꼬들밥, 아래는 된밥이지만 상관없다. 원래 자취가 그런 것 아닌가. 한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그러나 굴러만 가면 되는. 이제 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다시 새둥지 만들기 시작이다.

태그:#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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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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