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12월 자신의 새 이름을 공개하며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한 엘리엇 페이지는 여성배우인 앨런 페이지 시절 <엑스맨:최후의 전쟁>과 <인셉션>,<투 로마 위드 러브> 등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페이지가 10대 미혼 임산부를 연기했던 영화 <주노>는 700만 달러의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2억3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제작비의 3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는 엄청난 가성비를 자랑했던 영화 <주노>는 2008년 2월 국내에서도 개봉했지만 6만 9000명의 관객에 그치며 흥행 실패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당시 앨런 페이지는 국내 관객들에게 인지도가 높지 않았고 10대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파격적인 소재 역시 국내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노>처럼 북미나 세계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도 국내 관객들의 정서와 맞지 않아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세계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던 작품들이 한국시장에서는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지난 2005년에 개봉해 북미에서는 큰 실패를 맛봤지만 국내에서는 3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던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일랜드>였다.
 
 북미에서 제작비의 절반도 수거하지 못한 <아일랜드>는 국내에서 3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북미에서 제작비의 절반도 수거하지 못한 <아일랜드>는 국내에서 3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장르 가리지 않는 도전적인 배우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이완 맥그리거는 배우였던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젊은 시절부터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94년 대니 보일 감독의 <쉘로우 그레이브>에 출연하며 영화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맥그리거는 1996년 <트레인스포팅>에서 마약중독자 역할을 잘 소화하며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고 1999년 그의 대표 캐릭터가 된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의 오비완 캐노비를 만났다.

맥그리거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세 편에 걸쳐 제작된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에서 최고의 빌런 다스베이더가 되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스승 오비완 캐노비를 연기했다. 특히 <스타워즈 에피소드3-시스의 복수>에서 보여준 오비완과 아나킨의 마지막 광선검 대결은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2001년에는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에 출연해 니콜 키드먼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스타워즈> 프리퀄3부작을 끝낸 맥그리거는 2005년 마이클 베이 감독의 신작 <아일랜드>에 출연했다. 맥그리거가 1인2역을 소화한 <아일랜드>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답게 1억 26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북미 3500만 달러,세계적으로도 1억 6200만 달러의 성적에 그치며 흥행실패했다. 맥그리거 역시 <아일랜드> 이후 2009년 <천사와 악마>에 나오기 전까지 스케일이 큰 영화 출연을 자제했다.

초기작이었던 <벨벳 골드마인>부터 성소수자 캐릭터도 과감하게 도전했던 맥그리거는 2010년 <필립 모리스>에서도 짐 캐리와 동성애 연기를 선보였다. 물론 2013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처럼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상업영화 출연도 꾸준히 이어갔다. 2017년에는 12억7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디즈니의 실사판 <미녀와 야수>에서 촛대 르미에 역을 맡아 뛰어난 노래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7년 대니 보일 감독과 20년 만에 재회해 <트레인트포팅> 속편에 출연한 맥그리거는 에단 호크와 함께 지난 10월에 공개된 애플TV의 오리지널 영화 <레이먼드&레이>에 출연했다. 예전부터 자신의 대표캐릭터인 오비완 캐노비 역을 다시 맡고 싶다는 바람을 밝혀온 맥그리거는 지난 5월에 방송된 디즈니 플러스의 스핀오프 드라마 <오비완 캐노비>에 출연하면서 오랜 소원(?)을 이뤘다.

과학적 오류 많지만 영화적 재미는 충분
 
 <아일랜드>는 과학적으로는 오류가 적지 않지만 액션영화로는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아일랜드>는 과학적으로는 오류가 적지 않지만 액션영화로는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 6번째 날 >과 샘 록웰 주연의 <더 문>,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블레이드 러너 2049>, 톰 크루즈 주연의 <오블리비언>, 윌 스미스 주연의 <제미니 맨>, 공유·박보검 주연의 <서복>까지. 사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제작돼 왔다. 따라서 <아일랜드>가 특별히 복제인간 소재의 선구적인 작품이라거나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데뷔작 <나쁜 녀석들>을 시작으로 <더록>,<아마겟돈>,<진주만>,<나쁜 녀석들2>까지 연출을 맡았다 하면 무조건 흥행이 보장되던 마이클 베이 감독은 <아일랜드>를 통해 감독 데뷔 후 첫 흥행실패를 경험했다(물론 2년 후 <트랜스포머>를 만들며 곧바로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지금이야 MCU의 블랙 위도우 역을 통해 액션배우로 대성했지만 <아일랜드>는 스칼렛 요한슨이 데뷔 후 처음으로 도전한 액션 장르의 영화였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통해 아리따운 젊은 여성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스칼렛 요한슨에게 <아일랜드>의 조던은 모험에 가까운 변신이었다. <아일랜드>로 액션의 맛(?)을 본 요한슨은 2010년 <아이언맨2>를 통해 본격적인 액션연기를 시작했다.

비록 영화 자체의 호불호도 심한 편이고 북미와 세계흥행에서도 실패했지만 <아일랜드>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답게 '볼거리' 만큼은 어떤 영화 못지 않게 화려하다. 특히 마이클 베이 감독이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에 등장하는 시그니처 액션장면인 자동차 추격신은 <아일랜드>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1인2역을 소화한 맥그리거의 열연을 통해 볼 수 있는 두 링컨의 대립도 관객들을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개봉 후 저예산영화 <클로너스>의 감독 로버트S. 파이브선과 표절시비로 법정분쟁에 시달렸다. 실제 <클로너스>와 <아일랜드>는 복제인간인 주인공 남녀가 지상낙원이라고 여기며 살던 곳이 모두 꾸며진 장소라는 기본설정이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아일랜드>의 배급사 드림웍스는 뒤늦게 <클로너스>의 제작진과 합의를 하면서 사실상 표절을 인정했다.

복제인간에게 감정이입한 용병대장
 
 '쫓는 자'와 '쫓기는 자'였던 링컨과 로렌트는 영화 후반부 동료가 돼 3000여 명의 복제인간들을 구해낸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였던 링컨과 로렌트는 영화 후반부 동료가 돼 3000여 명의 복제인간들을 구해낸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8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모델로 데뷔한 자이먼 운수는 90년대 중반부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 리들 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의 <콘스탄틴> 등에 출연하며 배우활동을 병행했다. 다소 무서워 보이는 강인한 인상 때문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분노의 질주: 더 세븐>, <레전드 오브 타잔> 등 많은 영화에서 악역을 자주 맡기도 했다.

운수는 <아일랜드>에서 수용소를 탈출한 복제인간들을 잡아 오라는 임무를 받은 용병부대의 대장 알버트 로렌트 역을 맡았다. 두 주인공은 로렌트의 집요한 추격에 위기를 맞지만 복제인간들이 주인에게 장기이식 후 소모품처럼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노예였던 자기 부족의 아픔이 떠올라 링컨과 조던을 돕는다. 로렌트는 영화나 만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우리 편이 되는 적' 같은 역할을 했다.

출연하는 영화, 연기하는 대부분의 캐릭터가 끝내 사망에 이른다는 묘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숀 빈은 <아일랜드>에서 복제인간을 부자들에게 판매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메릭박사를 연기했다. 복제인간들을 끝까지 상품 취급하는 <아일랜드>의 최종빌런으로 자신이 만든 복제인간인 링컨과 싸우다가 연구소가 폭발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

상업영화와 저예산영화를 오가며 독창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스티브 부세미는 1998년 <아마겟돈>에 이어 7년 만에 마이클 베이 감독과 재회해 <아일랜드>에 출연했다. <아일랜드>에서는 링컨과 친분을 맺은 복제인간 통제시설 직원 맥코드 역을 맡아 지극히 정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맥코드는 링컨과 조던에게 그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탈출을 적극적으로 돕지만 결국 로렌트가 이끄는 추격대의 총에 맞고 사망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아일랜드 마이클 베이 감독 이완 맥그리거 스칼렛 요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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