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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축구를 찾아봤을까. 예전에도 국가대표팀 경기를 본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클럽 축구를 찾아보기 시작한 건 스무 살 무렵 한 친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이 녀석은 흔히들 '콥(Kopp)'으로 불리는 리버풀 팬이었다.

박지성이 한국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2005년부터 해외축구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 전부터 리버풀의 경기를 챙겨봤다. 언제나 팀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를 신처럼 모셨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박지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너희가 이스탄불의 기적에 대해 아느냐'며 일장연설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이 맞붙는 노스웨스트 더비가 열리는 날이면 친구의 반응은 유독 더 튀었다. 모두가 박지성과 그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는데 홀로 리버풀을 편들고 있었으니까.

유난히 내 주변엔 애니메이션,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무협지 등 여러 분야의 '덕후'들이 많았는데, 딱히 대단한 취미도 관심도 없던 나는 그들에게 훌륭한 영업대상이었다.

그렇다. 그 친구는 나를 리버풀 팬으로 만들기 위해 수시로 영업을 시도했다. 그때마다 나는 '리버풀이 리그 우승을 하면 생각해 보겠다'며 얼버무렸고, 그 말이 나올 때면 왠일인지 그는 늘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축구, 간절함이 만들어내는 드라마
 
손흥민이 지난 6월27일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독일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쐐기골을 넣기 위해 뛰어가는 모습.
 손흥민이 지난 6월27일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독일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쐐기골을 넣기 위해 뛰어가는 모습.
ⓒ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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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5월 언젠가, 그 친구가 주말 낮에 전화를 걸어왔다. 평생 전화 한 통 안 걸던 놈이 뭔 일이지? 그는 다짜고짜 오늘 FA컵 결승이 열린다며 축구 얘기부터 했다. 리버풀과 웨스트햄의 경기였다. 때마침 케이블 채널에서 경기를 방송해준단다.

주말이고 시간대도 괜찮으니 심심하면 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며 내게 경기 시청을 권했다. '어차피 리그는 첼시가 우승한 거 아냐?'라고 했더니 그냥 잠자코 경기를 보라며 성을 내더니 전화를 끊었다.

친구의 장담과는 다르게 경기 초반은 싱거웠다. 웨스트햄이 먼저 두 골을 넣었다. 생각보다 일방적인 경기. 채널을 돌려볼까 싶은 순간 리버풀의 만회골이 터졌다. 갑자기 무서워진 리버풀의 움직임. 혹시? 싶은 순간 동점골이 터졌다. 호오, 흥미롭네? 생각이 든 나는 잠시 리모컨을 내려놨다.

하지만 다시 이어지는 웨스트햄의 역전골. 그래, 그럼 그렇지. 경기 뒤집는 게 그렇게 쉽나. 그 이후 웨스트햄은 90분 안에 경기를 끝내겠다는 각오로 온몸을 던져 수비를 했다. 나는 바로 체념했다. 응원한 팀도 아니지만 입에서는 절로 '에이! 졌네, 졌어!'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때 웨스트햄 수비수가 걷어낸 공이 스티븐 제라드를 향해 굴러갔다. 제라드가 그 공을 화풀이라도 하듯이 걷어 차버렸고, 순간 골 망이 출렁였다. '아니 이게 들어간다고?' 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그의 골에 경기장이 뒤집어졌다. 카메라맨이 제대로 앵글을 잡지 못할 정도였다. 리버풀은 그 뒷심을 그대로 이어받아 승부차기에서 웨스트햄을 꺾었다. 2대0에서 3대3, 그리고 승부차기까지. 이런 경기도 가능하구나.

이 경기를 보고 있을 리버풀 '덕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친구가 엉엉 울고 있었다. 친구의 바람과는 다르게 끝내 리버풀 팬이 되진 않았지만 그 경기는 내 인생 한편에 생생히 남았다(나는 이후 모드리치의 플레이에 반해 토트넘 팬이 되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저런 것임을 온몸으로 느꼈다고나 할까.

모든 것을 바쳐 노력해 본 적 있나

하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건 패배한 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상에 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강한 의지는 승리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꼭 의지가 부족해서 패배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걸 새삼 깨달은 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였다. 우루과이와 프랑스의 8강전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가 2대 0으로 이기고 있던 상황. 후반 42분쯤이었던가. 수비수 호세 히메네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응? 갑자기? 처음엔 공이 급소에 날아와 맞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그 눈물에 감정이입이 됐다.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공을 뺏기 위해 피치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그건 '에이! 졌네, 졌어'라며 채널을 돌리는 나 같은 시청자들의 감정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것이었다. 체념했다면 그렇게까지 울지 않았을 테니까. 그의 눈물은 너무 이기고 싶은데 그것이 불가항력일 때의 좌절과 분함, 그럼에도 단 1퍼센트의 가능성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의지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모든 바람이 현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히메네스는 경기가 끝나고 동료들의 위로를 받으며 펑펑 울었다. 월드컵은 그런 눈물이 많은 축제였다. 그럴 수밖에. 결국 우승팀을 뺀 나머지 서른 한 팀은 어찌됐든 한 번 이상의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으니까.

경기를 다 보고 생각해봤다. 이제껏 살아가면서 저렇게까지 간절히 이뤄내려 했던 게 있었던가. 대학 입시 때? 취업준비생 때? 아무리 좋게 봐도 저만큼의 간절함은 없었던 것 같다. 나름 절박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언제나 '그 때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섞인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 단 일말의 후회도 남기지 않는 노력과 좌절 같은 건 이제껏 겪어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했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적 없고,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내 벽을 모른다. 게으르게 산 건 아니지만, 초인적인 근성으로 총력전을 감행한 적도 없다. 항상 그 한계에 닿지 못해 생긴 틈을 가능성이라 위안 삼으며 살아왔다.

그들의 열정을 자랑스러워하자

피치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선수들의 열정은 그런 의미에서 늘 존경스럽다. 그것이 항상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 좌절들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줄 알면서도 기어이 온몸을 다 바쳐 노력한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는 그 성장을 경험한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승팀의 연전연승이 아니라 언젠가는 패배를 맞이하게 될 나머지 31개 팀의 뜨거운 눈물이 아닐까. '에이! 졌네, 졌어!'라며 리모컨을 돌리는 대신 말이다.

어떤 팀은 제일 먼저 무대에서 떠날 것이고, 어떤 팀은 결승전까지 살아남아 정상의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다.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지, 어느 순서로 탈락할지는 하늘만이 안다.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든 선수들은 피치 위에 온몸을 내던질 것이다.

결과를 떠나 그들의 열정과 간절함을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자. 대회에 나가는 이들 모두가 후회 없이 이 축제를 즐기길. 월드컵에 나설 32개국 대표 선수들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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