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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와 선양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의 그림자로 남은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인물들이 많습니다.

무강(武剛) 문일민(文一民:1894~1968)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평남도청 투탄 의거·이승만 탄핵 주도·프랑스 영사 암살 시도·중앙청 할복 의거 등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문일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일민이라는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해 <무강 문일민 평전>을 연재합니다. [기자말]
1920년 6월 무렵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의 상·하원 의원과 가족들이 필리핀과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관광 시찰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미국 상원의원 3명, 하원의원 39명, 가족 74명, 기타 인원 포함 총 123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관광단이었다. 이들의 여정은 1920년 7월 미국을 출발, 필리핀과 중국을 거쳐 8월 24일께 한국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임시정부는 이를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알리고 한국의 독립을 호소할 절호의 기회라 판단했다. 이에 안창호를 중심으로 미 의원단의 방문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골몰했다. 그 결과 주요 대응책으로 미 의원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면담해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 제출, 의원단의 한국 도착 시 민중을 동원한 시위운동 전개 등이 계획됐다.

마침 상하이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단장 이탁(李鐸)이 머무르고 있었다. 미 의원단의 방한 소식이 전해지자 안창호는 이탁을 만나 선전활동을 위해 중국 안동(오늘날 단둥)에 있는 청년들을 동원할 수 있는지 물었다.

"미 의원단이 한국에 들어갈 때 시위운동을 하고자 하오. 만주에 있는 청년들을 동원할 수 없겠소?"
"문제 없습니다. 제가 직접 만주로 건너가서 계획을 전달하지요."


이탁은 '거사'를 위해 흔쾌히 자신의 광복단원들을 동원하는 데 동의했다. 이탁은 곧바로 광복단장 대리로 임무를 수행 중이던 오동진(吳東振)에게 편지를 부쳐 임시정부의 명령을 전달했다.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실제 전투적 행동'을 담당할 군대를 조직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광복단은 1920년 7월 만주 콴뎬현(寬甸縣) 안쯔거우(安子溝)에서 오동진을 총영장으로 하는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으로 거듭났다. 광복단원이었던 문일민은 광복군총영이 결성되면서 자연스레 대원으로 편입된 것 같다.
 
『동아일보』(1931.6.18)에 실린 오동진의 사진
 『동아일보』(1931.6.18)에 실린 오동진의 사진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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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총영 평양 폭탄대 소속으로 국내 침투

광복군총영에게 부여된 첫 번째 임무는 '국내에서의 다발적 의열투쟁'이었다. 미 의원단의 방한에 맞춰 서울·평양·선천·신의주 등에서 관공서 폭파·관공리 암살 등의 의열투쟁을 전개함으로써 한국인의 자주 독립 의지를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거사는 임시정부에서 조직한 의용단(義勇團)도 합작하는 대규모 계획으로 추진됐다. 거사용 폭탄은 상하이의 구국모험단(救國冒險團)이 제조한 12개를 임득산(林得山)이 안동의 이륭양행(怡隆洋行)까지 운반한 후 다시 의용단의 국내 각 지단으로 비밀리에 보냈다.

거사를 담당하게 된 광복군총영에서는 다음과 같이 4개조의 폭탄대(爆彈隊)를 조직, 국내로 급파했다.

<광복군총영 폭탄대 조직>

서울 방면 : 김영철(金榮哲), 김성택(金聖澤), 김최명(金最明)
평양 방면 : 문일민(文逸民), 장덕진(張德震), 박태열(朴泰烈), 우덕선(禹德善), 안경신(安敬信)
선천 방면 : 이학필(李學弼), 임용일(林龍日), 김응식(金應植)
신의주 방면: 이진무(李振武), 정인복(鄭仁福)


문일민은 평양 폭탄대의 일원으로 평양 침투 공작의 임무를 맡았다.

문일민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문일민 이력서>에 의하면 당시 문일민은 평양 폭탄대의 대장으로 대원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태열 혹은 장덕진이 대장이었다고 하는 기록들도 있어 누가 대장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평양 폭탄대는 1920년 7월 중순(음력 5월 하순) 서울 폭탄대를 먼저 배웅한 뒤 조선을 향해 출발했다. 이들은 폭탄 3개와 권총 4자루에 실탄 300발을 휴대하고 안쯔거우 본부에서 출발해 쪽배로 압록강을 건넜다.

조선에 잠입한 대원들은 일제의 눈에 띄지 않게 험한 산길로 이동했다. 수중에 여비가 있었지만 전해 흉년이 심했던 탓에 금전으로도 음식을 사기가 곤란했다. 이들은 옥수수 등으로 굶주림을 해결하면서 평양을 향해 계속 걸었다. 평양 폭탄대의 일원이었던 박태열은 이 시기의 괴로움에 대해 아래와 같이 회고한 바 있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려는 유일한 희망을 가진 일행은 중도의 간난(艱難)이 더욱 심하였다. 행인이 전혀 없는 험악한 산길로만 가게 되었다. 출발한 당일부터 노숙과 피곤과 기갈뿐이었었다. 그러나 도저히 큰 길이나 도시 부근으로 갈 수 없었다. 중도에 적경(敵警)을 두려워함보다도 사명인 목적을 완성하자면 아니 그럴 수도 없었다." - 박태열, <張德震傳>, 삼일인쇄소, 1925, 19쪽.

중간에 웬 무뢰배 한 명이 시비를 거는 바람에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뻔한 일도 있었지만 안경신이 "작은 분노를 참아 큰 용기에 방해되지 않게 하자"고 대원들을 다독인 덕분에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렇게 대원들은 큰 탈 없이 의주(義州)-삭주(朔州)-구성(龜城)을 차례로 지나 7월 30일 아침 평안남도 안주(安州)에 입성했다.
 
1920년 7월 광복군총영 평양 폭탄대의 국내 침투 경로도 (추정)
 1920년 7월 광복군총영 평양 폭탄대의 국내 침투 경로도 (추정)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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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검문 시도하는 일본인 순사 사살

그런데 대원들에게 뜻밖의 위기가 찾아왔다. 길 한복판에서 일제 순사들을 마주친 것이다. 대원들은 우선 안경신과 길잡이를 먼저 보내고 다른 일행인 척 태연한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거기 잠깐 멈추시오!"

순사들은 대원들을 멈추게 한 뒤 행방을 물으며 몸을 수색하려고 했다. 이들은 안주경찰서 용흥(龍興) 경찰관 출장소에서 근무하는 순사 쿠도 소자부로(宮東宗三郞)와 조선인 순사 김명균(金明均)이었다.

이때 장덕진이 품 속에서 재빨리 권총을 꺼내 쿠도의 안면을 비롯한 여섯 군데를 겨냥해 탄환을 발사했다. 갑작스러운 총격에 쿠도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김명균에게도 총을 쐈으나 달아나는 바람에 죽이지는 못했다.

현장에는 이들을 따라다니던 순사보조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응할 생각도 못한 채 달아나며 "회개합니다!" "다시는 순사 안 다니겠습니다!"라고 소리를 질러 대원들조차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우리는 대한독립군으로서 왜적을 토벌하는 사람들이니 동포들은 안심하시오!"

문일민 일행은 갑작스러운 총격전에 놀란 주민들을 이렇게 안심시킨 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근처 농가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마침내 폭탄대는 평양 잠입에 성공했다. 평양에 들어섰을 때 또 한 번 형사로 추정되는 이를 마주치면서 위기가 찾아오나 했지만, 대원들의 행색이 너무나도 남루하여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실로 천행이었다.

- 5부에서 계속 -

[주요 참고문헌] 

1) <조선일보>, <매일신보>
2) <문일민 이력서>
3) 도산기념사업회, <安島山全書> 中, 범양사, 1990.
4) 박태열, <張德震傳>, 삼일인쇄소, 1925.
5) 朝鮮總督府 高等法院 刑事部, <박태열의 상고 기각 판결문>, 1937.2.8.
6) 平壤覆審法院 刑事部, <吳東振事件判決>, 1932.6.21.
7) <한국독립운동사자료> 3, 국사편찬위원회, 1973.
8)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29, 국사편찬위원회, 1997.
9) 흥사단, <제239단우 文逸民>, 1930.5.13.

10) 김영범, <의열투쟁 I–1920년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1) 김은지, <미국 의원단 동아시아 방문을 계기로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60,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7.
12) 나가타 아키후미, <일본의 조선통치와 국제관계>, 일조각, 2008.

태그:#문일민, #무강문일민평전, #광복군총영, #독립운동가,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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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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