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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이태원 핼러윈 압사사고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이태원 핼러윈 압사사고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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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인 10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정부가 국가 차원의 애도를 선포한 것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은 한 가지 정말 중요한 것이 빠졌다고 느낀다.

바로 '국가의 사과'다.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정부이고 정부 통솔자는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비극의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헌법의 가치

왜 대통령이 사과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우선, 헌법이 명하는 바에 따라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 가치 실행에 관한 포괄적이고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제34조6항이다. 이 헌법 조항을 구현하는 법률인 '재난안전법'(재난 및 안전 관리에 관한 기본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라고 명시한다(제2조). 특히 재난안전법은 정부가 재난 대응을 위해 지자체 및 민간과 협력할 수 있고, 그 경우에도 총괄책임은 정부(행정안전부장관)에 있다고 밝힌다.

이처럼 헌법과 법률은 천재지변도 포함해 모든 형태의 재난에서 국가가 예방의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충분히 그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재난이었다. '10만 명의 인파가 집중될 것이 예상'된다고 서울 용산경찰서는 알고 있었고, 용산구청은 민간과 대책회의까지 했다. 정부의 총괄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이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벌어지는 일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0월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참배를 마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0월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참배를 마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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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대통령이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급 공직자들도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진다. 하급 공직자들은 잘못을 인정했다가 자칫 사태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실제 용산구, 서울시, 경찰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바쁘다.

또 한편으로 공직자들이 대통령과 정부 방어를 제 역할로 여기게 된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참사 다음날인 10월 30일 "경찰이나 소방을 미리 배치했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하더니 10월 31일에는 "근본적으로는 집회나 모임을 시정해야 하는 건 아닌지"라며 시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했다.

공직자들이 책임을 회피하면 그 책임은 어디로 향하는가? 자연스럽게 희생자들로 향한다. 축제에 참석한 시민이 도덕의식이 부족했고 상인이 이기적 행위를 하는 바람에 참사가 벌어졌다는 편협하고 왜곡된 서사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구조적 원인은 묻히고 참사 피해자는 더 큰 트라우마를 겪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를 한 달 이상 질질 끌면서 유가족들이 경험한 일이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위한 전제 조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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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대통령이 책임을 인정해야 성역 없는 참사 진상규명이 가능하고 재발방지 대책도 올바로 수립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의 권위적 태도는 진상규명의 범위를 가두는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

윤 대통령은 '주최자 없는 자율행사'도 안전 통제를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핼러윈 행사에 매뉴얼이 없어 안전 관리가 실패했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10년 넘게 이어진 행사였고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대단히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실 이전으로 경찰 업무가 과중해지고 현장 피로가 누적된 것이 안전 관리에 소홀했던 이유는 아닐까? 지자체와 경찰이 상인들과 대책회의까지 하고도 소극 행정만 한 것은 공공기관 조직문화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닐까? 이런 의문이 당연히 든다.  

진상규명은 바로 이런 지점까지 낱낱이 드러내고 점검해야 의미가 있다. 또한 그래야 재발을 막는 실질적 개혁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사과 한 마디 없으면 공직자들은 진상규명 요구를 '가이드라인' 안으로 통제하려 든다. 이상민 장관이 "섣부른 추측이나 선동성 주장을 하지 말라"며 선을 긋는 행동은 전형적이다. 그러나 지난 여러 재난참사 조사에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조직 자체가 문제로 밝혀진 적이 허다하다.  

중국의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천하대사 필작어세)고 했다. 대형 참사는 작은 문제를 내버려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누가 잘못했는가 따지기 전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국민 안전의 최종 책임자인 정부가 먼저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성역 없는 진상조사도 가능하고 국민도 정부를 믿고 지켜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지금이라도 피해자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라.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당 공동대표입니다.


태그:#이태원참사, #윤석열, #핼로윈참사, #대통령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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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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