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여자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사령탑에 부임한 박미희 감독(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이 세 시즌 만에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자 프로스포츠에서도 여성지도자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7년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 이도희 감독이 부임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여자프로농구의 신생구단 BNK 썸에 유영주 감독이 선임되면서 4대 프로스포츠에 여성감독이 3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도희, 유영주 감독이 2020-2021 시즌, 박미희 감독이 2021-2022 시즌을 끝으로 소속팀과의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프로스포츠에 '여성파워'는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사실 프로스포츠에서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구단이 가장 먼저 감독교체를 고려하는 것은 성별과는 무관한 일이다. 이제 4대 프로스포츠의 유일한 여성감독은 여자프로농구 BNK의 박정은 감독 밖에 남지 않았다.

유영주 감독과 함께 했던 두 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던 BNK는 박정은 감독이 팀을 이끈 지난 시즌 정규리그 4위로 봄 농구 막차 티켓을 따냈다. BNK는 플레이오프에서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KB스타즈에게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지만 2차전에서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며 선전했다. 농구팬들이 박정은 감독과 함께 하는 두 번째 시즌 BNK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이유다.

박정은 감독 체제로 창단 첫 봄 농구 진출
 
 프로 5년 차를 맞는 이소희는 지난 시즌을 통해 BNK 공격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프로 5년 차를 맞는 이소희는 지난 시즌을 통해 BNK 공격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2017-2018 시즌이 끝나고 KDB생명 위너스가 농구단 운영 포기의사를 밝혔지만 한국여자농구연맹은 2018-2019 시즌이 시작 전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KDB생명은 OK저축은행의 네이밍 스폰서를 받아 WKBL의 위탁운영 구단으로 한 시즌을 치렀다. 다행히 2019년 2월 BNK금융지주에서 부산을 연고로 새 구단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히며 WKBL은 6개 구단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역 시절 여자농구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이름을 날리던 유영주 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한 BNK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양지희와 최윤아를 코치로 선임하면서 여성들로 구성된 코칭스태프를 완성했다. 하지만 BNK는 2019-2020 시즌 5위, 2020-2021 시즌엔 30경기에서 단 5승만 따내는 부진 끝에 최하위에 머물렀고 유영주 감독은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유영주 감독 체제가 두 시즌 만에 실패로 막을 내린 셈이다.

BNK는 2021년 3월 2대 감독으로 또 다른 여성 사령탑 박정은 감독을 선임했고 FA 시장에서 국가대표 출신 슈터 강아정과 트레이드를 통해 2020-2021 시즌 챔프전 MVP 김한별을 영입하며 전력을 대폭 강화했다. BNK는 2020-2021 시즌 독보적인 최하위에서 2021-2022 시즌 상위권을 넘볼 수 있는 다크호스로 떠올랐지만 정규리그에서 12승 18패로 4위에 머물렀다. 그나마 플레이오프에서 KB를 괴롭히며 희망을 발견한 것이 위안이었다.

BNK는 지난 시즌 FA시장에서 3억 3000만 원을 투자해 데려온 강아정이 5.95득점2.19리바운드 0.86어시스트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프로에서 4번째 시즌을 맞은 가드 이소희가 30경기에 모두 출전해 14.43득점 4.10리바운드 1.67어시스트 3점슛 성공률 39.9%를 기록하며 엄청난 성장속도를 보였다. 이소희가 이번 시즌에도 또 한 단계 성장한다면 BNK 역시 더 높은 곳으로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WKBL 최단신(164cm) 선수 안혜지는 지난 시즌 2018-2019 시즌, 2019-2020 시즌에 이어 커리어 3번째 어시스트 여왕(6.27개)에 등극했다. 그리고 BNK가 자랑하는 젊은 에이스 3인방의 맏언니 진안도 BNK의 핵심빅맨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시즌 데뷔 후 가장 많은 17.07득점(5위)과 함께 9.37리바운드(2위)를 기록한 진안은 박지수(KB)를 제외한 리그 최고의 골밑자원이라고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강아정 대신 한엄지, 더 젊어진 BNK
 
 김한별은 이번 시즌 개인 활약은 물론이고 주장으로서 코트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후배들을 이끌어야 한다.

김한별은 이번 시즌 개인 활약은 물론이고 주장으로서 코트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후배들을 이끌어야 한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BNK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지난 시즌 최악의 부진에 빠졌던 강아정이 고질적인 발목 부상에 허리디스크까지 겹치며 끝내 현역은퇴를 선택했다. 물론 전성기 때의 기량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선수생명이 긴 WKBL에서 만 33세에 은퇴를 결정한 것은 다소 이르다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참고로 강아정의 드래프트 동기인 김단비(우리은행 우리WON)와 배혜윤(삼성생명 블루밍스)은 여전히 팀의 간판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기대했던 강아정이 이탈한 만큼 팀 내 최고참 김한별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김한별은 지난 시즌 27경기에서 9.00득점 5.78리바운드 3.67어시스트로 2017-2018 시즌 이후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냈고 오는 11월21일이 되면 만 36세가 된다. 하지만 김한별은 30대 이후 WKBL에서 본격적인 전성기가 찾아온 만큼 이번 시즌에도 주장으로서 코트 안팎에서 후배들을 든든하게 이끌 필요가 있다.

BNK는 FA시장에서 연봉 1억 8000만 원을 주고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던 1998년생의 젊은 포워드 한엄지를 영입했다. 한엄지는 신한은행 에스버드에서 활약했던 지난 시즌 무릎부상으로 단 3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시즌 내 복귀했을 만큼 빠른 회복속도를 보여 이번 시즌에도 초반부터 활약이 기대된다. 팀 적응만 잘 한다면 한엄지는 주전들의 평균 신장이 작은 BNK에서 단숨에 주력선수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BNK는 강아정이 은퇴, 김진영(신한은행)이 보상선수 이적, 노현지(우리은행)가 지명권 트레이드로 각각 팀을 떠났다. 안혜지-이소희-김한별-한엄지-진안으로 이어지는 주전 라인업은 어느 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지만 지난 시즌 평균 15분 이상 소화한 벤치 멤버가 아무도 없을 정도로 벤치는 상당히 허전해졌다. 자칫 주전 선수 한 두 명이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팀의 균형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번 시즌 BNK는 창단 후 4번째 시즌을 맞는다. 게다가 지난 시즌 봄 농구 진출을 통해 선수들의 경험도 쌓였다. 게다가 선수단 대부분이 여전히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만큼 동반성장이 이뤄진다면 창단 첫 봄 농구를 경험했던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과연 4대 프로스포츠의 유일한 여성 사령탑이 된 박정은 감독은 이번 시즌 WKBL 코트에서 '여성파워'를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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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신한은행 2022-2023 여자프로농구 BNK 썸 이소희 김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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