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출범 후 단 한 번의 우승(2002년 여름리그) 밖에 하지 못했던 현대 하이페리온은 2004년 신한은행이 팀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특히 기존에 전주원(우리은행 우리WON 코치)이 이끌던 팀에서 2006년 정선민(국가대표 감독)과 하은주를 차례로 영입하면서 호화멤버를 구성했고 그 결과 2007년 겨울리그부터 2011-2012 시즌까지 '통합 6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전주원의 은퇴와 정선민, 강영숙의 이적 등으로 신한은행의 전력은 점점 약해졌다. 그리고 신한은행이 차지하고 있던 정상의 자리는 신한은행의 코치였던 위성우 감독과 신한은행의 유일한 영구결번 전주원 코치가 이끄는 우리은행에게로 넘어갔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2013-2014 시즌 챔프전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이후 8번의 시즌 동안 우승은커녕 단 한 번도 챔프전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하은주, 신정자, 최윤아의 잇따른 은퇴에도 신한은행이 근근이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김단비(우리은행)라는 걸출한 에이스의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한결같이 신한은행을 위해 활약했던 김단비는 지난 5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이적을 선택했다. 팀 내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에이스의 이적으로 인해 신한은행은 이번 시즌 '강제 세대교체'가 불가피해졌다.

구나단 감독대행 체제로 정규리그 3위 선전
 
 WKBL 최고령 선수 한채진은 지난 시즌에도 리그에서 4번째로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했다.

WKBL 최고령 선수 한채진은 지난 시즌에도 리그에서 4번째로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프로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5시즌 연속 우승을 경험했던 김단비는 이후 10시즌 동안 한 번도 신한은행에 우승컵을 안겨주지 못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로 김단비를 비난하는 농구팬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자프로농구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이다. 김단비가 지난 15년 동안 신한은행을 위해 뛰었던 헌신과 노력은 그 어떤 종목의 프랜차이즈 스타들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김단비는 신한은행의 주전 선수가 된 2009-2010 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무려 418경기에 출전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이 치른 정규리그 경기가 448경기였으니 김단비는 지난 13번의 시즌 동안 신한은행이 치른 정규리그 경기의 93.3%를 소화한 셈이다. 한마디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김단비는 항상 신한은행을 위해 코트를 누비며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 구나단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렀음에도 30경기에서 16승14패를 기록하며 '2강' KB스타즈와 우리은행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물론 신한은행이 3위에 오른 비결에도 김단비의 활약은 절대적이었다. 김단비는 지난 시즌 24경기에서 평균 35분 41초(2위)를 소화하며 19.33득점(2위) 8.75리바운드(3위) 4.13어시스트(8위) 1.21스틸(6위) 1.79블록슛(1위)으로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쳤다.

만38세로 WKBL에서 활약하는 현역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한채진은 지난 시즌에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한채진은 전 경기에 출전해 리그에서 4번째로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하며 9.47점 6.30리바운드 2.40어시스트 1.60스틸 3점슛 성공률 34.5%를 기록했다. 특히 한채진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6개 이상의 평균 리바운드를 기록했을 정도로 황혼의 나이에도 전성기에 버금가는 기량을 유지하며 신한은행의 기둥으로 맹활약했다.

구나단 감독이 내심 큰 기대를 걸었던 1998년생의 젊은 포워드 한엄지(BNK 썸)가 무릎부상으로 3경기 밖에 소화하지 못한 가운데 역시 무릎부상으로 두 시즌을 걸렀던 유승희는 지난 시즌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역시 전 경기에 출전해 32분56초를 소화한 유승희는 11.97득점 5.50리바운드 3.30어시스트로 에이스 김단비에 이어 득점과 어시스트 부문에서 팀 내 2위를 기록했다.

'포스트 김단비 시대'의 주역은 누구?
 
 지난 시즌 우리은행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던 김소니아는 이번 시즌부터 신한은행의 1옵션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지난 시즌 우리은행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던 김소니아는 이번 시즌부터 신한은행의 1옵션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신한은행은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시작한 구나단 감독을 지난 2월 정식감독으로 임명하며 3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팀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에이스 김단비가 우리은행으로 이적하는 큰 변화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김단비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 받았던 한엄지마저 FA협상에 실패하면서 BNK행을 선택, 신한은행은 하루 아침에 팀의 원투펀치를 잃고 말았다.

물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신한은행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김단비의 보상선수로 리그에서 가장 터프한 포워드로 꼽히는 혼혈선수 김소니아를 데려온 것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김소니아는 지난 시즌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던 우리은행에서 득점(16.82점)과 리바운드(8.21개) 부문 1위를 기록했던 선수다. 신한은행은 김단비라는 에이스를 내주면서 우리은행의 에이스급 선수를 데려온 셈이다.

FA시장에서 영입한 180cm의 장신슈터 구슬도 신한은행의 외곽에 큰 힘을 보탤 수 있는 자원이다. 비록 하나원큐에서 활약했던 지난 시즌엔 무릎 부상으로 2경기 만에 시즌 아웃 됐지만 BNK시절에는 세 시즌 연속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안정적인 슈터였다. 한엄지의 보상 선수로 영입한 김진영 역시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신한은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WKBL의 지배자' 박지수(KB스타즈)는 건강문제로 시즌 초반 경기에 나서기 힘들다. 박지수가 당장 출전이 어렵다면 WKBL 최장신 선수는 189cm의 신장을 가진 신한은행의 김태연(개명 전 김연희)이 된다. 2020년 3대3 대회에서 무릎을 다친 김태연은 2020-2021 시즌을 통째로 결장했고 지난 시즌에도 경기당 8분을 소화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김태연이 이번 시즌 신장을 활용해 주전센터로 활약한다면 신한은행은 또 하나의 좋은 무기를 장착할 수 있다.

이번 시즌 신한은행에는 포인트가드부터 센터까지 필요에 따라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던 WKBL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김단비가 없다. 그만큼 여러 선수들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신한은행 구단과 팬들은 김단비 이적과 관계 없이 3위에 올랐던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원하고 있다. 과연 20대의 젊은 선수들이 대거 합류한 신한은행은 이번 시즌 성적과 세대교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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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신한은행 2022-2023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에스버드 한채진 김소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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