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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무색무취 같은 사람이었다. 진하게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자신의 신념을 자식들에게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냥 지켜만 보았다. 그 무색과 무취가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 특별히 요구조건을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알아서 아버지 비위를 맞춰야 했고 식사를 챙겨야 했고 가족을 건사해야 했다.

선명하지 못한 나의 성격이 누굴 닮았나 생각해 보니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고 결론을 냈다. 어머니는 당신이 가진 짐을 더는 방법으로 욕을 택하셨다. 그 욕이 어린 시절에는 듣기 싫었고 욕을 하는 어머니가 부끄러웠다. 생각해 보니 그도 없었으면 어머니는 세상을 살기 참 힘들었을 것 같다. 구성지고 걸쭉하고 진한 전라도 욕설을 뱉어내며 어머니는 쌓인 한도, 남편에 대한 불만과 푸념도 함께 뱉어냈던 것 같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의 빨치산 아버지처럼 신념을 위한 투쟁이 없었던 사람이었음에도 아버지의 삶은 수월하지 않았고 내내 신산하고 어지러웠다. 아버지는 징용에 끌려갔다 돌아왔다. 왜 징용에 끌려가야 했는지 당신이 돌아가실 때까지 묻지 못했다. 징용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친지들의 말에 휘둘렸고 여러 사업에 실패했다. 잇속을 챙긴 그들과 달리 아버지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시간을 공유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내내 힘들었다. 술기운에 아주 드물게 속내를 풀었지만 본래의 성품이 징용의 상처로 인해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폭력적인 모습은 아버지에게서 보지를 못했으니 깊이 침잠하는 쪽으로. 이제 와서 생각하니 당신은 더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다.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닮은 나도 자주 내가 답답하니, 아버지는, 아버지가 살아온 시절은, 그 삶은 오죽 답답했을까. 

책을 만나기 전에 책의 추천을 먼저 접했다. "근년에 보기 드물게 찡하게 오는 소설"이며 '빨치산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라고 했다. 이념 편향은 어쩐지 불편한데 빨치산이라니. '산다는 것의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말은 그나마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읽을 마음이 들게 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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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고작 사 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그 아버지가 애처로웠다. 누구보다 사리판단이 분명했고 경우가 넘쳤으며 신념을 지킬 논리와 소신이 뚜렷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은 과격했으나 마음은 의로웠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작가의 이끎대로 따라가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추천사, 김미월)

빨치산 사 년의 시간이라고 하니 내 아버지의 사 년도 떠올랐다. 7남매의 장남으로 혼인과 동시에 징용에 끌려가야 했던 아버지는 사 년이라는 시간을 낯선 땅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작품 속 아버지에게 사 년의 빨치산의 시간이 본인과 가족, 친지의 생애를 지배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사 년도 아버지의 생애와 가족들의 생활을 지배했다. 다만 아버지의 징용은 아버지의 선택도 아니었다. 사 년은 징용 이전의 이십 년의 시간을 지웠고 남은 시간도 어렵게 했다.
 
아버지가 평생 당하고만 살지는 않았다. 당하지 않으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고, 선택한 싸움에서 쓸쓸하게 패배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십 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졌다.              

넉넉하지는 못해도 먹고 살 걱정은 없던 집이었는데, 징용 갔다 오신 이후로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식구들의 입은 무지막지 했다. 무려 4대가 함께 사는 집안의 가장, 일제강점기 말, 무거운 짐을 아버지는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  

한 등에 두 짐뿐만이 아니라 네댓 개쯤은 넉넉히 짊어지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 고통을 안고 아버지는 늘 조심했다. 빨갱이가 무서워 좌익 활동을 했던 장인 주변과는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물론 어머니도 친정을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한탄하듯 토로하셨지만,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는 의사를 보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해방 일지> 말미에 작가는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빨치산이 아닌 아버지와의 진한 추억이,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작품을 읽으며 나도 내 아버지를 줄곧 소환했다. 사흘간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화장장에서도, 장지에 묻힐 때도 나는 아버지의 부재나 그 한에 대하여 통곡하지 못했다. 그저 노후에 병치레로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가 떠나가신 것에 대해 안도했다. 

그런 아버지를, 아버지의 상처를 지금에서야 떠올리고 있다. 하루하루 옆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견디며 가족들이 있는 고향에 돌아오려고 버텼을 모진 시간이, 인정사정없었던 그 노동이, 빼앗긴 나라의 백성된 처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침에 눈을 뜨는 것과 저녁에 눈을 감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기약 없는 촘촘하고 거대한 압박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작가의 빨치산 아버지를 따라 나는 내 아버지를 만났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힘들었던 어머니를 만났다. 내내 침묵으로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했던 그 아버지가 얼마나 스스로 견뎌내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는지 생각하며 뒤늦게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그 아버지와 함께 걸쭉한 욕으로 한을 풀었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고향 선산에 자리를 잡으셨다.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꿈에서 더 자주 만났고 그때마다 사근사근한 막내딸이 아니었던 것이 체한 것처럼 마음에 걸렸다. 그러면서 당신의 성격을 닮아서라고 누구도 묻지 않는 변명을 혼자서 하곤 했었다. 

아주 가끔 어머니가 쓰던 욕을 시절을 탓하며 따라 할 때가 있다. 어색해야 정상인 것 같은데 제법 그럴듯하게 입에 착 붙는다. 진한 추억은 맛으로만 소환되는 것이 아니라 말(사투리)로도 소환되는 것 같다. 더불어 옆에서 조용히 쳐다보고 계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죽으면 그걸로 끝인디..." 당신들에게는 끝이지만 자식들에게는 무엇도 끝이 아니다. 아직은 징용의 문제도, 일제의 탄압과 착취도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지만, 작가의 아버지가 딸의 기억을 통해 해방된 것처럼 내 아버지도 나의 어설픈 기억을 통해 해방될 수 있기를 마음을 다해 바라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은이), 창비(2022)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징용, #빨치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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