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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지 귀를 의심하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입에서 "신영복을 존경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는 말이 나왔다. 19일 윤석열 대통령도 기다렸다는 듯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이라고 발언했다.

이런 상황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가을 단풍이 다 지기 전에 신영복 선생이 쓴 표석과 현판이 있는 오대산 상원사를 다녀오고 싶었다. 단풍철이라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 걱정되었지만, 더 늦으면 단풍구경을 못 할 것 같아 지난 22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나도 김일성주의자? 
 
상원사 입구에 있는 표지석 - 신영복 선생이 쓴 글로 제작되었다.
▲ 상원사 표지석 상원사 입구에 있는 표지석 - 신영복 선생이 쓴 글로 제작되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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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오대산 일대 월정사는 초입부터 진입이 쉽지 않았지만, 산의 넉넉함 때문인지 주차장은 빈틈이 없어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숲이 주는 안식을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했다.

오대산 입구에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3m가 넘는 자연석으로 오랜 세월 계곡에 반쯤 묻힌 채 누워서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돌이라고 했다(신영복 <변방을 찾아서> 중에서). 그 표지석에는 신영복 선생이 쓴 '오대산 상원사'와 직인처럼 '적멸보궁'과 '문수성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오대산 상원사에 왔음을 기념하고자 표지석을 배경으로 촬영하는 이들이 이어져 표지석만 찍기 위해서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기념촬영을 하는 이들은 이 표지석의 글씨가 신영복 선생의 글씨인 것을 알까?' 하는 생각과 김문수의 발언이 떠오르면서 그들의 눈에는 나도 '김일성주의자'로 보이겠구나 싶었다. 신영복 선생을 존경할 뿐 아니라 그가 쓴 표지석과 현판을 다시 보기 위해서 200km가 넘는 길을 달려왔으니 말이다.
 
오대산 상원사 가는 길
▲ 오대산 오대산 상원사 가는 길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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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의 가을은 끝자락이었다. 월정사만 해도 단풍이 한창인데 상원사는 이미 이파리를 다 놓아버린 나무들도 많이 보였고, 미처 떨어지지 못한 단풍잎은 말라버렸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상원사는 '적멸보궁'이다. 부처의 사리만 있는, 부처상(象)이 없는 사찰인 것이다. 깨달음을 통해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는 있지만, 부처가 되었지만, 부처가 없는 적멸보궁 상원사. 또한, 상원사는 '문수성지'다. 깨달음의 성지라는 뜻이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가 상원사 계곡에서 몸을 씻고 있을 때 문수보살이 어린 동자로 현현신하여 세조의 등을 씻어주었단다. 세조는 동자에게 "왕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동자는 "왕은 문수동자를 만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고는 홀연 듯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물론 세조의 피부병이 씻을 듯 나은 것은 물론이다. 세조가 계곡에서 몸을 씻기 위해 옷을 벗어 걸어놓았던 '관대걸이'와 관련된 일화요, 상원사 문수보살과 관련된 내용이다.

어라? 아무것도 없네?
 
'Who am i?' 의미심장한 물음이다.
▲ 상원사 "Who am i?" 의미심장한 물음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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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계단을 따라 상원사 현관 입구에는 네모난 함이 있다. 나는 그저 불전함인 줄로만 알았다. '돈을 밝히기는 어느 종교나 다르지 않은 것인가?' 싶은 생각이 씁쓰름하기도 했다. 그런데 상원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다시 보니 내가 '불전함'으로 생각하던 것에는 'Who am i?'라고 쓰인 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네?"였다.

그제야, 나는 그것이 '불전함'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인 성물임을 알았다.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 'i'와 '아무것도 없음(無)'. 나는 감히 나를 주장할 수 없는 작은 존재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물이다. 깨달음을 통해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는 있지만, 부처가 되었지만, 부처가 없는 적멸보궁 상원사였던 것이다.
 
문수전이라는 글자도 신영복 선생의 글씨다.
▲ 상원사 문수전 문수전이라는 글자도 신영복 선생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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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앞마당에 올라서자 신영복 선생이 쓴 '문수전'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문수란, 제불(諸佛)의 지혜를 맡은 보살이니 문수전은 이들을 모신 법당이다. 문수동자상은 예불을 드리는 이들도 있으므로 결례를 피하고자 눈으로만 보고 사진으로 담지는 않았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이 신영복 선생의 손글씨를 이용한 '신영복체'로 제작됐던 직인을 교체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미 국가정보원도 신영복체로 된 원훈을 교체한 바 있는데, 이런 일련의 행태들을 보면서 자신들과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포용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유아기적인 행태를 이 시대에도 봐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
 
동종 모형
▲ 상원사 동종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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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며, 모양과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국보 36호다. 이 종은 관리를 위해 아크릴판으로 모양만 볼 수 있고, 그 옆에 모형의 동종이 있다. 물론, 모형으로 만들었지만 타종을 하면 그 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질 것이다. 

상원사를 나와 월정사로 가는 길에 선재길 섶다리를 들렀다. 이전부터 월정사와 상원사를 이어주던 선재길로 9km의 숲길이다. 월정(月精)에서 문수(文殊)에 이르는 길, '달의 정기를 만나고 문수보살을 찾는 마음이 곧 지혜이기도 할 것'이라고 신영복 선생은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밝혔다.
 
월정사와 상원사를 이어주는 선재길에 놓인 섶다리
▲ 섶다리 월정사와 상원사를 이어주는 선재길에 놓인 섶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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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후 6년여 세월이 흘렀다. 그 6년의 세월, 우리는 진보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본다. 물론, 늘 진보하고 성숙을 이뤄갈 수는 없는 것이 역사요, 삶이지만 아쉬움이 많은 시간을 살아간다.

성덕왕 4년(705년)에 세워진 사찰,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 들러 지혜를 얻고, 위로를 얻고, 새로운 삶의 힘을 얻고 주어진 빛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힘썼을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이 나라가 이 시대가 거꾸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성숙한 세상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지는 단풍 속에 들어있는 저 봄날의 위대한 연록의 꿈처럼 말이다.
 
상원사의 가을
▲ 상원사 상원사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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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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