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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예전 교육회사에 다닐 때 영아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한 적이 있다. 어린아이와 신체 활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음악과 신체 활동을 기초로 하고 다른 영역의 활동을 조금씩 접목해 교육안을 작성했다. 현장에 나가면 돌밖에 되지 않은 아기도 음악에 맞춰 목과 어깨를 움직였다. 기분이 좋아 까르르 웃는 아기들이 많았다. 리듬을 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하고 생각했다.

최근 리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필라테스 선생님이 던진 한 문장 때문이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여러 운동을 섭렵했다. 춤도 추고 헬스도 하고 어릴 적엔 수영 선수였다. 선생님은 실패로 가득한 내 운동 에피소드를 좋아한다. 요즘 난 선생님에게 내 수영 이야기를 한다.

"평영을 잘하고 싶은데 안돼요. 저번 주엔 평영을 하는데 수영장 바닥 무늬가 바뀌지 않는 거예요. 계속 그 자리라는 거죠. 조급해져 더 빨리 팔과 다리를 휘젓는데 그래도 제자리인 거 있죠. 결국 뒤에서 수영하는 사람에게 피해 줄까 봐 그냥 일어났어요."
"평영은 등의 힘으로 하는 건데 너무 팔과 다리만 움직이는 거 아닐까요?"


선생님은 나에게 평영 팔동작을 보여준다.

"아. 그리고 킥판을 잡고 평영 발차기만 하면 좀 되는 것 같은데 팔이랑 같이 하려고 하면 팔의 어떤 동작과 발동작을 맞춰야 하는지 헷갈려요. 완전 엉망이에요."

내가 이 말을 마치자 선생님은 몇 주동안 내 머릿속에 맴도는 그 문장을 말했다.

"모든 운동에는 리듬이 있어요. 그 리듬을 찾지 못해 팔 동작과 다리 동작이 겉도는 거예요. 지은씨를 보면 한 동작은 하는데 두 동작을 합하면 그 동작들을 한 리듬에 얹히지 못해 어색할 때가 있어요."

난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 리듬감은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는 걸까.

몸의 리듬 알기
 
공원에서 벽치기를 하고 있는 남편
▲ 벽치기 공원에서 벽치기를 하고 있는 남편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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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연습장을 바꾸고 다시 서브를 배웠다. 테니스 초보의 경우 서브 실력에 따라 승패가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이형택의 테니스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잘하는 사람들도 서브 미스로 점수를 잃는 경우가 많다.

서브를 잘하고 싶다. 옆으로 서서 왼손으로 공을 위로 던지고 라켓으로 쳐낸다. 역시. 또 네트에 걸렸다. 내 모습을 계속 보던 남편이 멀리서 소리쳤다.

"리듬을 타라고. 공을 그냥 위로 던지지 말고 몸을 굽히고 반동을 주며 리듬을 타다가 던져."

여기도 리듬이 중요하구나. 레슨 시간은 끝나고 난 리듬감을 알지 못한 채 아쉽게 집으로 온다.

일주일에 한 번 테니스 레슨으로는 실력이 늘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가끔 남편과 근처 공원에 벽치기를 하러 간다(코트를 빌려 연습하고 싶지만, 예약이 하늘에 별따기다). 벽치기는 말 그대로 벽에 맞고 날아오는 공을 라켓으로 쳐내는 운동이다. 옆에서 보면 그렇게 쉬워 보일 수가 없다.

하지만 직접 해 보면 다르다. 기본적으로 공이 벽에서 튕겨오는 속도를 보고 내 힘을 조절해야 하는데 난 과도하게 힘을 주거나 힘을 뺀다. 공이 리듬을 타지 못한다. 너무 세게 튕겨 다른 쪽으로 날아가거나 벽을 맞고 그냥 힘없이 떨어진다.

다른 사람이 내 옆에 벽치기를 하려고 오면, 난 내 라켓과 공을 가방에 넣어 정리한다. 분명히 내 공이 그 사람의 영역까지 침범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난 뛰고 올게!"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그 옆 한강변으로 달려간다.

마라톤은 내가 남편보다 낫다. 남편은 내 뒤에서 내가 뛰는 모습을 본다. 저번 마라톤이 끝나고 남편은 나에게 발을 탁탁 일정하게 구르며 뛰는 게 안정적이라고 했다. 내가 유일하게 리듬감 있게 하는 운동이다.

생각은 더 나아가 예전에 스쿠버다이빙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스쿠버다이빙은 아예 밑바닥으로 가라앉지도 않고 바다 위로 떠오르지도 않는 중성 부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난 바닷속에 들어가 조금 지나면 둥실둥실 바다 표면으로 떠오른다. 일행 중 나만.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나 가이드는 떠오르는 나를 붙잡아주었다. 허리에 차는 웨이트 무게를 무겁게 해도 공기조절을 해봐도 잘 되지 않았다. 항상 그게 스트레스였는데 어느 날, 나도 모르는 노하우가 생겼는지 몸이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다다음 날도. 난 유유히 물고기와 함께 물속을 유영했다.

순간 뭔가 알 것 같았다. 아! 리듬은 익숙해지는 거구나.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고 여러 번 연습하고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몸에 배는 거구나. 리듬은 '리듬을 타야 해! 리듬을 탈 거야!' 하는 다짐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리듬을 타는 것은 본능이 아니라, 리듬을 타고 싶어하는 게 본능인 것 같다. 엇박으로 또는 어색하게 몸을 움직이는 아기들도 많으니까.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박자를 타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익숙하게 몸에 배게 하기 위한 연습. 또한 리듬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리듬은 운동뿐 아니라 삶에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활에도 리듬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나의 스쿠버다이빙 모습
▲ 스쿠버다이빙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나의 스쿠버다이빙 모습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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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니지 않는 내 삶은 정해진 일정이 없다. 회사에서 주는 일 말고 글도 쓰고 싶어 프리랜서를 한 지 벌써 5년째. 집안일은 항상 있고 외주 일은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며 가끔은 없다. 그 사이 사이에 공모전이 있다. 공모전 준비와 탈락 이벤트만으로도 한 해가 꽉 찬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리듬이 필요하다.

아침엔 출근할 때처럼 무조건 집에서 나와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외주 업무를 처리한다. 아이가 오는 두 세시쯤 집에 가서 아이를 챙기고 아이가 학원 가는 시간에 다시 나와 다 못한 일을 하거나 장을 보거나 운동을 한다.

어렵게 찾은 나에게 맞는 생활 리듬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지 않을 때도 많다. 괜찮다. 리듬을 놓치면 다시 찾으면 된다. 서핑보드에서 떨어져도 다시 보드에 올라 다음 파도를 타면 되는 것처럼.

얼마 전 가족 행사로 지방에 다녀오느라 흐름을 놓쳐 오늘은 리듬을 타리라. 결심했는데 본인이 수령해야 한다는 카드와 집 소독해 주시는 아주머니를 기다리느라 오전 시간이 다 갔다. '아, 몰라, 오늘은 망했어. 글 하루 안 쓴다고 뭐 큰일 나나.' 핸드폰 속 넷플릭스 앱을 클릭한다. 언제나 그렇듯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이럴 땐 벌떡 일어나야 한다. 생각을 멈추고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라도 무조건 나가야 한다. 좋은 작품이 나오기까지 창작자들이 견딘 시간을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절망을 이겨낸 많은 사람을 생각한다.

익숙한 생활 리듬에 늦게라도 몸을 얹어야 한다. 나는 지금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조금 늦었지만 오늘의 리듬을 타는 중이다.

테니스를 할 때도 수영을 할 때도 필라테스를 할 때도 더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반복되는 연습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언젠가는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될 테니.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태그:#리듬 , #리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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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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