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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현안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
▲ 출근길 현안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현안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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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취재진에게 "양곡관리법, 농민에 도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후에 만난 전북 순창군의 한 농민은 이 발언에 대해 "속된 말로 뻘소리를 하고 있다"며 "서른다섯 살 때부터 농사짓기 시작해 지금 쉰 넷이니까 20년이 지났지만, 내 이름으로 된 땅 하나가 없다. 농사지어 먹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농사는 지어 보고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지난 1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서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했다. 개정안은 현행 임의조항으로 돼 있는 쌀 시장격리를 '의무조항'으로 수정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날치기 통과"라고 반발했다.

농민 "양곡관리법 개정안, 원론적으로는 찬성"
 
지난 20일 오후 전북 순창군 유등면 소재 논에서 벼를 수확하는 모습.
 지난 20일 오후 전북 순창군 유등면 소재 논에서 벼를 수확하는 모습.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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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의 또 다른 농민은 "윤석열 대통령처럼 여당에 '양곡관리법, 농민에 도움 안 된다'고 마치 어떤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하는 것처럼 단정해서 말하는 대통령을 본 기억이 없다"면서 "대통령이 '여당은 정책 결정과 법안 마련에 있어 야당과 잘 협의해서 진행하길 바란다' 정도로 언급할 사항을 '안 된다'고 단정해서 말했는데, 대통령이 여야 갈등을 부추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농민은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운 내용이 있지만 60마지기(1마지기 200평) 농사를 십수 년째 짓고 있는데 현재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원론적으로 찬성한다"면서 "나락값은 이명박 정부 때 바닥을 쳤다가 문재인 정부 때 그나마 조금 회복됐었는데, 올해는 기름값과 비료, 기계운임비 등 생산비가 턱없이 올랐음에도 나락값은 오히려 떨어져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라면서 말을 이었다.

"논 한 마지기 기준으로 농사를 잘 지을 경우 나락은 네 가마니(한 가마니 80kg)가량이 나와요. 저는 소작을 하니까 논 주인에게 줘야 할 몫이 한 가마니, 기름값·비료·기계운임 등으로 한 가마니에서 한 가마니 반 정도가 지출되는 구조예요. 한 마지기 농사지어서 손에 쥘 수 있는 건 많아야 한 가마니 반 정도예요. 내년에는 막노동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아요."

이날 오후 논에서 벼를 수확하고 있던 한 농민은 "양곡관리법이 반드시 개정돼 쌀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면서 "쌀 시장격리를 의무조항으로 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보지만, 시장격리가격은 최소한 수확기 산지 평균가격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추가해야 하고, 무엇보다 시장격리는 적정 시기를 맞추는 것이 관건이다"라고 의견을 더했다. 

이날 만나 본 농민들은 '쌀값 안정'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농민들은 생존에 직결되는 양곡관리법 개정 내용과 정부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했다.

한 농민은 "일회성 시장격리가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번 기회에 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면, 쌀 최저가격제도 도입, 쌀 수입 중단·저율관세할당 폐기, 100만 톤 이상 공공비축미 확대 등 양곡관리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농민은 이어 "쌀은 요건이 되면 의무적으로 시장격리하는 것이 맞다"면서 "문재인 정부 농정 성과라고 할 수 있는 '2017년도 쌀값 회복'은 미리 선제적으로 시장격리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점을 감안하면 시장격리는 수확기가 끝나기 전에 먼저 하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정부-여당, 개정 반대하기 전에 농촌 현실 직시해야"
 
지난 20일 오후 벼를 수확하던 한 농민은 “'양곡관리법이 농민에 도움 안 된다'고 발언한 대통령은 농사나 지어보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지난 20일 오후 벼를 수확하던 한 농민은 “'양곡관리법이 농민에 도움 안 된다'고 발언한 대통령은 농사나 지어보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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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농민은 "100마지 농사를 소작하고 있다"며 농가 수입을 산출했다.

"공익직불금과 100마지 논에서 수확한 벼를 수매하면 대략 3000만 원가량을 벌어요. 수매가의 변동이 생기기는 하지만, 흉년이 아닌 경우에는 제가 일한 인건비를 겨우 건지는 수준이에요.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해요. 대농들이야 괜찮지만, 트랙터 한 대에 1억원이 넘는 상황에서 소작농은 생산비를 줄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하기 이전에 농촌의 현실을 직시해야 해요."

한편, 정부는 지난 9월 25일 쌀 45만 톤을 시장에서 격리하겠다 밝혔다. 산지 쌀값은 당시 크게 올랐지만, 현재 산지 쌀값은 평년보다도 낮게 형성돼 있는 상태다.

한 농민은 "벼 수매는 40kg당 5만 원을 먼저 입금해 주고 연말에 최종 수매가를 결정해 차액을 추가로 입금해 주는 구조인데,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올해 수익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지난해에는 벼 40kg을 7만5000원에 수매했지만 올해는 물가상승과 생산비 상승 등으로 인해 8만원대는 받아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순창군청에서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순창군의 농가인구는 지난 2021년 말 기준 8344명으로 순창군내 15세에서 64세까지 생산가능인구 1만5085명의 5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태그:#양곡관리법, #양곡관리법 개정안, #벼 수확, #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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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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