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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요 박병호 도예가는 전통청자제작기법에 현대적인 감각을 넣어 21세기 청자를 제작하고 있다.
 서광요 박병호 도예가는 전통청자제작기법에 현대적인 감각을 넣어 21세기 청자를 제작하고 있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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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22년 10월 24일 오전 8시 57분]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는 한적하고 아늑한 시골 마을이다. 1950년대 이전부터 칠기가마가 있어 대한민국 전통도자기의 부활을 일으킨 도예촌이기도 하다. 세월은 흐르고 전통도자기의 불황이 지속되자 이 마을에서 명성을 날리던 도예가들은 하나둘씩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전통청자와 21세기 청자를 제작하는 도예가가 있다고 하여 지난 16일 서광요를 방문했다. 2021년 이천시도자기명장으로 선정된 박병호(60)도예가이다. 그는 면대면으로 대화를 할 경우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상대방이 마스크를 쓰고 있을 경우 수첩에 글자를 적어달라고 하여 소통하기도 한다.

그는 명지대학교 전자공학과 4학년 때 청각장애(돌발성난청)가 생겼고 현재 청각 장애 3급 진단을 받았다.

청각장애인이 도예업을 택한 이유

- 많은 직업 가운데 도예업을 선택한 이유는
"소리가 잘 안들리지만 어떤 일이든 잘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이력서를 내면 서류에 합격해도 면접에서 매번 탈락했다.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같은 과 동기인 아내와 결혼한 상황이어서 가장으로서 평생 할 수 있는 일, 혼자서도 가능한 일을 알아봤다. 청각이 아예 상실될 경우도 생각했다. 그렇게 아내와 심사숙고한 끝에 도자기를 배워보자고 결정했다. 도예는 내가 잘 할 수 있고 도자기로 내가 원하는 걸 표현하면 즐거울 것 같았다."

- 이천에 오게 된 계기
"도자기를 배워보기로 결정한 후 요장과 도자기공장 등을 찾아다니며 직원모집에 대해 문의했다. 그런데 나한테 같이 일해보자는 요장이 한 군데도 없었다. 다행히 효천요(窯) 권태현(대한민국 도자기 부문 명장) 대표님을 만났다.

당시 나는 성남에서 살고 있었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성남에서 이천으로 출퇴근해도 됩니까?'라고 여쭸다. 그랬더니 권 대표님께서 '도자기는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바로 이천시 사음동으로 이사를 왔고 효천요에 출근했다. 도자기를 배우면서 권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다."

- 그 당시 어떤 일을 했나?
"가마에 기물을 넣고 불을 조절하는 일을 했다. 당시 이천의 도자기 공장에서는 도자성형, 그림, 조각, 유약 만들기, 소성 등 각 분야별로 분업화 돼 있었다. 그만큼 직원도 많았다. 1년 후 부림요로 이직했고 그곳에서 꼬박사를 했다. 꼬박사는 물레대장실 보조를 말하는데, 흙을 잘 반죽하여 물레대장한테 갖다 주고, 물레대장이 흙덩이를 물레 위에 얹어 놓고 기물을 완성하면 그것을 건조하고 관리하는 일 등을 했다."
 
2021년 이천시도자기명장으로 선정된 박병호 도예가
 2021년 이천시도자기명장으로 선정된 박병호 도예가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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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박사할 때 어땠나?
"재미있었다. 젊고 꿈이 있었으니까. 1987년 그 시절 회사에 다닌 내 친구들의 급여는 40만 원 정도였고 내 급여는 20만 원 정도였다. 워낙 박봉이어서 내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써주신 부림요(窯) 이기휴(1990년 작고)대표님한테 고마워했다. 일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도자기에 전력 질주한 후 이 분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각오도 있었다.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작업장 청소부터 시작하여 다른 일도 부지런히, 정말 열심히 했다."

- 부림요 이후 다른 요장에서도 근무했나?
"성원요(窯) 천세영 대표님 아래에서 일을 했다. 천 대표님은 나보다 7년 선배였고 당시 고려청자로 명망 높은 해강요(海剛窯)에서 조각실장을 하시다가 성원요를 차렸다. 천 대표님께서는 나한테 각별하게 신경써주셨고 배려해주셨다. 그 덕분에 전통 도자기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두루, 충분히 연습했고 습득할 수 있었다."

- 1980년대 말 이천의 도자기 공장의 작업장 환경이 궁금하다.
"작업장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연탄을 때던 시절이었는데 난방이 제대로 안 돼서 추운 겨울엔 흙을 만지면 손이 시리고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도시락을 2개 싸 가지고 와서 한 개는 점심 때 또 한 개는 직원이 모두 퇴근한 후 혼자 먹고 물레 연습한 것, 고3 수험생처럼 치열하게 연습한 것도 떠오른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니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래도 그 덕분에 우리 딸 둘 다 공부시키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차별화에 중시하면서 작품 활동 몰두 

- 직장생활한 지 5년 만인 1992년 서광요를 설립했다. 30대 초반에 창업했다. 
"처음에는 무척 난감했다. 작은 가게를 임대해 시작했는데, 거의 1년 동안 도자기 한 점을 팔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아내하고 같이 1년 365일 거의 매일 야근할 정도로 주문량이 많았다. 1990년대 초반 이천도자기가 전반적으로 호황기였던 덕도 있었다."
 
전통청자제작기법에 선을 접목한 현대청자
 전통청자제작기법에 선을 접목한 현대청자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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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이천시도자기명장에 선정됐다.
""나는 운이 좋았다. 이천에는 나보다 기능이나 예술적인 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도예가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1995년도부터 전승공예대전을 비롯해 다양한 공모전에 출전해 입상을 했다. 그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작업을 했는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고 그것을 투영한 내 작품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또 공모전에 출전했다."

박병호 도예가는 전승공예대전, 전국기능경기대회(도자기 부문 1위), 제5회 강진청자문화제 청자공모전 최우수상 등 다수의 공모전에 출전해 27회 수상했다. 2006년 제4회 런던 코리안 페스티벌(영국 에어 갤러리)등 국내·외 도자 관련 전시회에도 40회 이상 참여했다. 도자 작업을 하면서 명지대 대학원(도자기기술학)도 졸업했다. 

- 디자인이 독특한 청자작품이 많다.
"디자인이 독특한 데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도예는 기능에 예술을 더하는 것이다. 한데, 나는 기능은 부단한 연습으로 채웠지만, 미술이나 예술적인 부분은 부족했다. 미술대학원 진학을 꿈꿨으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전통청자 제작 기법에 선(線)을 이용한 문양을 접목했다.

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면서 설계를 공부했는데 선(線)그림은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과 중심이고 이때 그것을 연결하는 것은 선이라, 선 그림을 수없이 연습한 경험이 있었다. 역발상이라고 했던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잘하는 것으로 채우고 응용하여 나만의 청자 작품을 만들었다. 그 작품으로 공모전에 나갔는데, 심사위님들께서 '21세기 청자, 현대적인 청자'라는 평을 해주셨다."

- 도예업의 불황시기에 일요일인데도 작업을 하고 있다.
"기능을 습득하는 시간에 치열하게 몰입하고 다른 작가와 차별화를 추구하면서 작업에 충실했는데 그것을 알아주는 때가 온 것 같다. 사실, 도자기는 우리 전통 공예 중에서도 비중이 가장 크다.

특히 고려청자는 유려한 선, 비색이라고 불릴 만큼 고아하고 은은한 푸른빛은 세계에서도 일품이라고 인정한다. 안타까운 점도 있다. 도예업의 불황이 지속되고 청자는 제작 공정이 까다롭다 보니 청자 제작의 전 과정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해내는 도예가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청자를 작업하고 있는 도예가가 전통청자 제작의 마지막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원동력은 '가족'과 '좋은 사람들'" 
 
자연을 품은 도자기, 도자기를 품은 자연, 마당의 꽃들도 작품의 소재가 된다. .
 자연을 품은 도자기, 도자기를 품은 자연, 마당의 꽃들도 작품의 소재가 된다. .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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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바라는 점
"우선 전통도예 전문가에게 전통도예 기능을 습득하기를 바란다. 세계적인 도예가가 되려면 작품에 우리의 멋과 맛이 들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어도 우리나라의 탄탄한 전통 공예 기능이 수반되어 있어야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이다."

- 도자기를 배워서 창업하고 싶은 분들에게
"도예로 창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스스로에게 '이 일이 절실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어떤 도예가를 만나느냐가 중요한데 이천시에는 실력을 갖추고 열정있는 도예가가 많다.

그런 스승 옆에서 작업하는 것을 보면서 몸소 흙을 만져보기를 바란다. 도예는 직접 흙으로 기물을 만들면서 감각으로 느끼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터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흙으로 뭔가를 만들어보기를 권한다. 흙놀이는 소근육과 집중력을 키워주고 뇌 운동에 도움을 준다."

- 35년 동안 도자기와 함께 해왔다. 그 원동력은?
"'도자기'라는 한 우물을 팔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생각이 나고 그래서 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박병호 도예가에게 '도자기는 첫 직장이자 평생 같이 가야할 동반자'라고 한다. 그는 여전히 전통청자를 제작하고 전통 상감기법과 도예기법을 토대로 하여 전통디자인과 문양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청자반달, 청자항아리, 청자계영배 등 청자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수백 년 전 우리 선조가 사용했던 목(木)물레에 흙덩이를 올려놓고 기물을 만든다.

엘리엘동산(중증장애인요양 및 장애인직업재활시설)과 한마음일터 등에서 수년 째 도자기 작업 지도 봉사활동도 하고 있는데, 그는 그곳에 계신 분들과 흙을 가지고 논다고 표현했다. 박 도예가의 좌우명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이다. 그의 즐겁고 쉼없는 도전을 응원한다.

태그:#서광요, #박병호 도예가, #고려청자, #신둔면, #이천시도자기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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