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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방학 좀."

얼마 전 바뀐 친구의 카톡 프로필이다. 친구는 20년 넘게 쉬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에서 마음대로 쉴 수 없는 회사원의 애환이 느껴진다. 방학이 있는 학생들도 등교와 하교, 시험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마음 편할 리 없다. 집에 있는 가정주부 또한 출근하지 않을 뿐, 식사 준비와 먹고 돌아서면 쌓이는 설거지, 매일 청소기 돌리기와 빨래, 분리수거 등 되풀이하는 일상 속에 매몰되기 쉽다.

인간의 영원한 노동과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를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것이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시지프(Sisyphe)다. 시지프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바위 하나를 산 정상까지 쉬지 않고 굴려 올리라는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정상까지 올라간 바위는 그 무게 때문에 굴러떨어지고 시지프는 다시 바위를 올려야 한다. 이 형벌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형벌이 아니라 인간의 반항이라고 보았다. 그 이유를 철학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에서 '부조리'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원칙이 없고 그냥 존재하는 '실존'의 세계이다.
 
책 <시지프 신화>
 책 <시지프 신화>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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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의미를 부여하거나 개념을 찾으려고 할 때, 그 간극에서 혼란(부조리)이 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것은 나의 예다- 우리가 길을 갈 때 돌멩이 4개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돌멩이는 그냥 있는 것(실존)인데, 우리는 죽을 사(死)를 떠올리며 의미를 부여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가 이 혼란을 종교적 귀의로 해결한다. 세상 모든 것이 신의 계획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부조리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인간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돈후안주의, 배우, 정복자, 창조자이다.

돈후안주의

호색한으로 유명한 전설 속 인물인 돈 후안은 매 순간 최고의 가치(사랑)에 충실해 열정을 쏟는다. 과거를 소유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충실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불태우는 사람이다.
 
"돈 후안은 여인들을 <수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수의 여인을 남김없이 끝까지 사랑하며 그 여인들과 더불어 자신 삶의 기회까지 모두 소진한다. 수집한다는 것은 과거를 양분 삼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 후안은 희망의 또 다른 형태인 후회를 거부한다." (111~112쪽,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열린책들)
 
나는 '수집'이란 단어에서 내 책장에 가득한 책이 생각났다. 나는 귀동냥으로 좋다는 책을 듣자마자 온라인 서점에서 사고, 동네 책방을 들려 눈에 보이면 또 한두 권씩 사게 된다. 그렇게 읽지 않은 책이 쌓여간다. 그뿐인가! 도서관에 가도 대출 권수인 5권을 꼭 채워 빌려오지만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기 일쑤다.

그동안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수집'하고 있었다. 일 년에 몇 권의 책을 샀는지 몇 권을 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몰입'하고 내 삶에 '적용'하며 완전히 소화했을 때, 독서의 기쁨 나아가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이 깨달음은 오마이뉴스에 '책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책서말 꿰보배>를 연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 권이라도 깊게 읽고, 내 생각이 휘발되지 않도록 내 삶과 내가 사는 세상에 꿰어보자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배우

까뮈가 말한 두 번째 부조리인간은 배우이다. 연극은 삶의 축소판이며, 배우는 무대에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함으로써 인간은 언젠가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소멸할 것을 알지만 배우는 인물을 해석하고 구상하고 연습해 자신을 완성 시킨다. 배우는 맡은 배역 속으로 들어가 "그 유령들에게 자신의 피를 수혈한다 (124쪽)."

나는 얼마 전 카뮈가 말한 배우형 부조리인간이 무대로 구현된 현장을 체험했다. 지난 9월 14일 서울 국제 무용축제(SIDance) 개막작 <유령들>을 보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언어 혹은 소리로 관객들에게 말을 걸던 무용수들은 한꺼풀씩 옷을 벗기 시작해 결국 모두 나신(裸身)이 되어 춤을 추었다.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춘다' '정해진 안무에 따라 춤을 춘다'라는 고정관념을 깨지는 시간이었다.

안무가 김보라는 잡지 <객석> 인터뷰에서 "언어, 춤, 몸, 극장이라는 유령 속에서 무용수들은 순수한 자기만의 춤을 출 것이다. 춤에 있는 '유령'은 무용수의 여러 가지의 삶이 쌓여 발생한다"라고 했다. 배우는 무대에서 그 시간을 통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리 삶에 적용해본다면 살아있는 동안 자기가 맡은 역할을 최대한 충실하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정복자

시지프 신화의 세 번째 부조리인간은 정복자이다. 정복자는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인간이다. 죽음이라는 끝을 알기 때문에, 정복이란 행동이 무용하다는 것을 안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음을 아는 정복자는 '자신을 극복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래서 목표를 세우고 자기 시간과 열정으로, 신(神) 즉 '자기 운명'에 맞서서 혁명을 성취한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정복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각종 챌린지 (challenge)만 해도 그렇다. 챌린지란 일정 기간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개인 혹은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아침 5시 기상하기, 하루 물 6잔 마시기부터 달리기 30분, 경제기사 10개 찾아 읽기, 영화 회화 녹음하기 등 다양한데 SNS나 단톡방에 매일 인증 사진을 올린다.

다짐을 위해 돈을 걸고 하는 경우도 많다. 성공했을 때, 자기에게 선물하거나 의미 있는 일에 기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올해가 100일이 남았다 하여 '100일 챌린지'를 시작한 이들도 많았다. 대부분 도전하는 단기간의 프로젝트가 평생습관(반복)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겨있을 테다.

창조자

카뮈가 말하는 가장 부조리한 인간은 창조자이다. 삶을 설명하고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를 인정하고 '느끼고 묘사하기' 때문이다. 미술, 음악, 소설 창작 등 예술작품은 논리적 사고를 포기할 때 탄생하며, 창조적 사고는 세상의 다양성을 촉발한다. 자신의 운명에 스스로 형태를 부여할 때, 죽음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 따라서 가장 탁월한 부조리의 즐거움은 창조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화 속 시지프는 부조리의 영웅이다. 신은 아무 소용없고 희망 없는 노동이라는 참혹한 형벌을 주었지만, 시지프는 숙명을 경멸함으로써 운명을 극복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벌을 내린 신에게 '반항하는 인간' 시지프를 행복하다고 상상해야하는 까닭이다. 바위를 올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 정상에 올렸을 때의 만족과 성취감이 있으니까.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다(191쪽)."
 
매일 바위를 올리는 시지프는 허무의 상징이 아닌 자유의 상징이었다. 카뮈는 우리의 삶이 반복된다고 해서 무의미하지 않다고 위로한다. 그 살아가는 시간을 통해 나만의 삶을 구축하고 의미를 만들어갈 때, 인간은 운명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지은이), 박언주 (옮긴이), 열린책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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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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