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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절규했다. 깜빡 잊고 딱 하나 있는 휴대폰 충전기를 회사에 놓고 온 것이다. 어느덧 사용한 지 3년이 되어가는 휴대폰. 이제 배터리 효율이 좋지 않아서 저녁 무렵엔 배터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는데 말이다. 배터리 잔량 18퍼센트.

"이제 어쩌지?"

나는 햄릿과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버티느냐 꺼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무리 뒤져봐도 집에는 고장 난 충전선 밖에 없다. 혹시나 싶어 휴대폰의 궁둥이를 아무리 찔러보아도 배터리의 번개 아이콘이 켜지질 않는다. 이대로라면 얼마 가지 못해 전화가 꺼질 것이 분명하다. 근처 편의점이라도 가서 휴대폰 충전줄을 사가지고 올까, 혹은 그냥 버틸까?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결국 그냥 버텨보기로 했다.

휴대폰 충전기가 없다
 
배터리 잔량 18퍼센트. 그냥 버텨보기로 했다.
 배터리 잔량 18퍼센트. 그냥 버텨보기로 했다.
ⓒ 언플래시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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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아이에게 휴대폰 좀 그만 보라고 그리 잔소리를 했는데, 오늘 한 번 나도 도전해 보지 뭐' 하면서 과감히 휴대폰을 현관 신발장 위에 뒤집어 놓았다.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휴대폰 없이 살아보기 저녁 편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밤이니까 낮처럼 연락할 일이 많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 동시에 전화가 울렸다. 지난주에 주문한 물건이 도착한다는 연락이었다. 통화를 약 삼 분 가량 했는데 배터리가 훅 줄어들었다.

점점 줄어드는 배터리 잔량이 조금 과장을 섞자면 마치 목숨 줄이 줄어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저녁에 독서모임 줌 주소가 카톡에 있는데 카톡을 켜서 주소를 확인하며 이것저것 확인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안돼~!!! 이러다 꺼지겠어."

황급히 전화기를 얌전히 내려놓았다. 평상시 같으면 반신욕을 하면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았을 텐데 그것도 못하게 되었다. 물을 받아놓고 조용히 물 안에 들어가 있으니 조용하다. 조용해서 좋긴한데 마음 한구석에서 어떤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휴대폰 잠시 동안 꺼진다고 무슨 일이 있기야 하겠어?'라고 쿨하게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휴대폰을 수시로 확인하지 못하니 불안이 몰려왔다. 만약 이 밤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세상 누구와도(아무리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연락할 방법이 없다.

나에게로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고, 나 또한 바깥으로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큰 상실감을 주었다. 게다가 휴대폰은 휴대폰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었더라. 전화의 기능은 오히려 휴대폰의 메인 임무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통화보다는 메신저를 더 많이 쓰는 세상이니 말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시간 확인과 각종 알람이다. 워킹맘인지라 아이의 스케줄을 포함한 온갖 스케줄은 잊지 않도록 휴대폰 캘린더나 메신저 비서를 사용해 예약해 놓는다. 적어 놓지 않으면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업무를 위한 소통은 거의 휴대폰 메신저로 이루어진다. 아이의 동선 파악에도 휴대폰 메신저를 주로 사용한다. 야근을 할 때 배달앱으로 집으로 원격으로 밥 차리기도 하고, 은행 업무나 금융 업무도 모두 다 휴대폰을 이용한다.

불면이 심한 날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수면시간을 체크하는 것이다. 잠을 적게 잤다고 생각 한 날은 왠지 모르게 피곤하다. 이런 날엔 일어나자마자 수면 시간이 체크되어 있는 앱을 본다. 내 생각보다 많은 시간 잤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 덜 피곤한 느낌이다.

그것 뿐인가. 틈틈이 휴대폰으로 웹툰과 소설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고, 길을 찾고, 버스 시간도 확인하고, 쇼핑도 한다. 먹을거리 입을거리들도 거의 휴대폰을 통해 구매한다. 각종 공과금도 거의 휴대폰으로 납부한다. 때때로 휴대폰 인증을 통해 '나'의 존재를 인증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일을 휴대폰으로 하고 있었으니 손에서 떨어져 있는 순간보다 붙어 있는 순간이 많았을 것은 당연지사.

순간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없어도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일상을 이리도 깊숙이 지배하고 있었다니.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휴대폰을 오래 보고 있다고 아이만 잡았는데, 사실 내가 더 문제였다. 아이가 누굴 보고 그렇게 따라했겠는가... 제대로 현타가 온 시간이었다.

오지에라도 다녀온 기분

그 밤을 무사히 보내고 휴대폰은 정확히 다음날 아침 7시 20분경에 방전되었다. 휴대폰 없이 출근하는 길은 설명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평상시의 1.5배로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켜지지도 않은 휴대폰을 손에 꼭 그러쥐고 출근하자마자 휴대폰을 충전했다. 잠시후 무사히 켜진 휴대폰의 액정을 바라보니 마치 오지에라도 다녀 온 낮선 느낌이 들었다.

무사히 켜진 휴대폰을 보고는 놓친 메시지가 없는지 꼼꼼이 확인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러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에 휴대폰을 의지하고 있던 나를 냉정히 바라보았다.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상태. 이게 바로 중독 아닌가?
 
중독의 사전적 의미 :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깨닫지 못하는 사이 휴대폰 없이 못 사는 삶이 되었나보다. 잠시 동안 켜지 못한 것에 이렇게 불안이 몰려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저 네모난 작은 것에 묶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은 훨씬 넓은데 저 작은 네모난 프레임으로 온갖 세상을 보던 현실을 의식하고나니 너무 속박같이 느껴졌다.

조금씩 프레임을 깨보고 싶다.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작은 수첩에 펜으로 메모 하고, 메신저를 보내는 대신에 직접 얼굴으 보면서 생일을 축하해주고, 디지털 활자대신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읽는 등 말이다. 단 하루 휴대폰 없는 저녁을 보내보고 나니 조금씩 이 작은 네모틀이 전부인 세상에서 격하게 탈출하고 싶어졌다.

태그:#휴대폰잠시끄기, #휴대폰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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