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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둘이 여행 갈래?"
"둘이?"


"응. 둘이. 엄마가 생각해보니까 누나랑은 둘이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너랑은 한 번도 안 다녔더라구. 금요일이나 월요일중 하루 학교에 체험학습신청서 내고, 2박3일 다녀올까 하는데 어때?"
"어디로?"


"목포 어때? 한 번도 안 가봤지? 마침 '뮤직페스티벌'도 하더라구.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페스티벌도 보고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 "
"그럼 그럴까?"


아이는 내 말을 듣고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쉽게 허락을 했다. 갱년기와 힘 겨루기를 하고 있는 내가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된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오롯이 둘이서만 여행을 하려고 마음 먹은 건 한 달도 더 전의 일이다.

주변에서 듣는 사춘기 아이들의 모습에 비하면 보잘것 없겠지만 특별한 이유없이 조금씩 짜증이 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여유를 주고 싶었다.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학교에서 친구들과 문제는 없는지 등 궁금한 점도 많아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

대화가 없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그러기에 여행은 참 좋은 구실 아니던가. 더구나 그곳에서는 마침 아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도 있었다.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며 피아노와 기타를 열심히 치고 있는 요즘이니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살아보니 사춘기든 갱년기든 둘 중의 하나는 거쳐가야 하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 내가 아이처럼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갱년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심하게 오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나도 아이도 휴식이 필요할 때인지 모르겠다.

아이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나서 나는 바로 아이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해서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도착지는 목포. 네비게이션을 켜서 목적지를 입력하니 다행히 막히지 않아서 대략 4시간 후에 도착한다고 알려준다. 그렇게 우리의 찬란한 여행은 시작되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는 목포의 바다는 정말 멋졌다.
▲ 목포해상케이블카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는 목포의 바다는 정말 멋졌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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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목적지까지 가겠다는 나의 기대는 그저 기대일 뿐이었다. 짐을 실을 때 기타도 가지고 나오더니 차 안에서 지루해지면 치겠다며 뒷자리에 앉았다.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고, 핸드폰으로 게임도 하고 음악도 듣던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내내 들으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나 역시 이런 시간은 참 오랫만이었으니까. 

나도 아이도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우리는 애초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목적지와 숙소만 정하고 떠나온 터였다.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2박3일을 어떻게 보낼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을 가기로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 자리에서 바로 케이블카도 예약완료! 북항승강장에서 타고 고하도승강장에 도착해서 돌아올 때는 유달산승강장에서 내려 일몰을 보며 산을 내려오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한옥 게스트 하우스 '춘화당'에서 고즈넉하게 쉬기로 했다.
 
아이가 아주 마음에 들어했던 게스트하우스 '춘화당'의 마당전경
▲ 한옥게스트하우스 마당 아이가 아주 마음에 들어했던 게스트하우스 "춘화당"의 마당전경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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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각자 혼자서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유롭게 지내고, 장소를 이동할 때는 서로에게 이야기 하고 다니기로. 그렇게 자유롭게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 식사 시간즈음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고 뮤직페스티벌에 가기로 합의.

마지막 날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니 아이가 가보지 않은 군산에 들르기로 했다.

사실 이런 무계획은 큰아이와의 여행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계획을 하지 않고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큰아이와는 미리미리 동선을 정해 놓아야 한다. 달라도 참 다른 두 아이. 이렇게 휴게소에서 대충 세운 2박3일의 계획이었지만, 우리는 이 계획대로 꽤나 재미있게 보냈다. 계획을 그대로 지키면서 말이다.

덕분에 아이도 나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관광지를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맛집을 찾아 다니고 하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함께 했던 곳에서는 그에 어울리는 수다를 떨었고 각자의 시간 속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며 나름의 자유를 얻었다. 이번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빈둥거린 시간' 쯤으로 하면 될까.
 
유달산에서 바라본 일몰
▲ 유달산 전망대 유달산에서 바라본 일몰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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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갈 때와는 다르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의 학교생활 속에서 일어났던, 미처 시간이 부족해 하지 못했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도 들려 주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지금 하고 있는 고민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 보였고, 어느새 많이 자라 있었다. 엄마인 나의 갱년기로 인한 몸과 마음의 힘듦도 차근차근 설명해 주니, 격하게 공감해주는 배려도 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갱년기를 이길 자가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심한 사춘기라도 갱년기가 최고라고. 그래서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이가 있는 집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고도 했다.

우리는 서로 이들(사춘기와 갱년기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가 혹시 살짝 궁금해서 문을 열어 준다면 기꺼이 받아 들이고 즐기자고 했다. 제대로 잘 즐기는 것은 혼자만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때 도움을 구하고 함께 이겨나가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번 여행이 어땠느냐고 물어보니 '대만족'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나 역시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가을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많이 뜨거웠던 목포였지만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에 비하면 그리 뜨거운 날이 아니었던 것도 같다.

이렇게 둘 다에게 만족스런 여행이었으니 다음에도 둘이 하는 여행은 아이에게 허락 받는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여행 후, 주변 사람들에게 혹시라도 아이와 갈등이 있다면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적극 권했다. 집안 공기의 기운이 달라질 것이라고. 마침, 여행하기 딱 좋은 가을날 아닌가!

태그:#갱년기, #사춘기, #아들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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