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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넘게 중고교에서 국어를 가르쳤지만, 나는 요즘도 문서편집기 '아래아 한글 2018'의 '맞춤법'(F8) 검사·교정 기능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이전까지는 낱말이나 구절에 빨간 금이 그어져도 그냥 지나쳐 버리곤 했던 맞춤법 해설을 들여다보면서 적잖은 공부를 한 것이다. 

무심코 지나가기 쉽지만, 나는 해설을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글쓰기의 잘못된 습관을 교정할 수 있었다. 그간 내가 참고한 맞춤법은 다음과 같다. 
 
'한글 2018'의 맞춤법 해설을 가려 뽑았다.
 "한글 2018"의 맞춤법 해설을 가려 뽑았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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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접미사 '-하다'를 붙이면 동사가 되는 명사에 조사 '-을/를/이/가'를 붙여서 쓰면 어김없이 빨간 금이 그어졌다. 맞춤법 길잡이를 찾으면 간단히 "굳이 조사 '을/를/이/가'를 쓰지 않아도 된다면 쓰지 않습니다"라고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따로 제시하고 있지 않아서 궁금했다. 그러다 얼마 전, 퇴직 전에 수업에 참고한 국어 관련 자료를 살펴보다가 한글학회 성기지 책임연구원이 쓴 자료에서 그 이유를 찾아냈다. 
 
조사 "-가"와 "-를"의 남발 
격조사 "-가/이"와 "-를/을"을 마구 써서 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경향이 심합니다. 이는 우리말을 쓸데없이 난잡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데, 주로 용언의 어근과 접미사('-되다, -하다' 따위)와의 사이에 이들 조사를 끼워 넣어 두 언어 형식을 분리하는 현상이 지적됩니다. 
(1) *곧 고갈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 곧 고갈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 *무효화가 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무효화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3) *온갖 거짓말로
변명을 했다. → 온갖 거짓말로 변명했다
     - 성기지, <맞춤법 사슬을 풀어주는 27개의 열쇠> 중에서
 
조사의 남발은 글의 긴장을 느슨하게 한다.
 조사의 남발은 글의 긴장을 느슨하게 한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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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주격 조사(-가/-이)와 목적격 조사(-를/-을)를 남발하여 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은 "우리말을 쓸데없이 난잡하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어근과 접사는 어울려 파생어를 만드는데 이들 사이에 조사를 끼워 넣으면 두 언어 형식을 분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용언의 어근과 접미사 사이에 조사를 끼워 넣는 게 모두 다 '말을 난잡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 중간에 조사를 넣음으로써 그 어근의 뜻을 강조하고자 할 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라면 굳이 두 형식을 분리함으로써 말을 늘어뜨리는 것은 삼가는 게 맞다. 
 
(4) 어휘의 선택 하나에도 대단히 조심을 하게 된다.(조심하게)
(5) 예산이 그렇게
반영이 될 수 없다는 건 아마 의원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반영될)
(6) 감염으로 면역을 획득한 인구의 비율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고요.(예상되고)
(7) 오늘 복지 급여가
입금이 되는 날인데…….(입금되는)

위 예문은 실제 글과 언론 기사에 쓰인 문장을 고른 것이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이들이 드물지 않은데, 이는 일종의 버릇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조사를 넣어서 글의 길이를 늘어뜨리는 것은 삼가는 게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태그:#조사의 남발, #글 늘어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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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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