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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세종시 아이누리 어린이집을 찾아 아이들과 시장놀이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세종시 아이누리 어린이집을 찾아 아이들과 시장놀이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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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은 세종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방문했다. 다음 날인 28일 관련 영상이 공개되며 많은 국민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영상을 공개한 YTN의 유튜브 채널을 보니 10월 4일 오전 11시 50분 기준으로 약 6100건의 댓글이 달렸다(관련 영상). 반응은 주로 두 가지로 나뉘지만 목소리는 이렇게 모아진다.

'국민의 삶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윤 대통령이 어린이집을 방문한 날, 마침 어린이집에서는 '아나바다 시장놀이'가 열리고 있었다. 어린이집 같은 보육기관이나 학교에서 종종 시행되는 놀이 겸 행사다. 아나바다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의 줄임말로 IMF 국제금융위기 이듬해인 1998년, 전국 규모로 성공한 정부 주도 대국민 캠페인에서 비롯되어 지금도 쓰이는 용어다.

하지만 교사에게 그 뜻을 물은 걸 보면, 대통령은 '아나바다'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것 같다. 놀랍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이어지는 질의응답에서 대통령은 또 한 번 놀라움을 선사한다. "난 아주 어린 영유아들은 집에서만 있는 줄 알았다"라는 윤 대통령의 말에 교사가 "네, 6개월부터 (다닌다)"라고 하자, 윤 대통령은 "그래도 걸어는 다니니까, 걔네들은 여기서 뭐해요?"라고 다시 물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이는 적어도 돌 무렵(출생 후 1년)이 되어야 걸을 수 있다. 육아 경험이 없다 보니 모를 수 있을 거라고 이해하고 싶지만, '그렇다면 대통령은 바쁜 격무 중에 도대체 어린이집에 왜 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은연중에 드러내고 만 무관심과 무지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세종시 아이누리 어린이집을 찾아 학부모, 보육 교직원, 관련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세종시 아이누리 어린이집을 찾아 학부모, 보육 교직원, 관련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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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포퓰리즘을 지양하고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저출산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국가가 보육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 의지를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현장을 방문했다면 적어도 어린이집에서 어떤 아이들이 생활하고, 보육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정도는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갔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저출산 고령화 정책을 바로 잡겠다는 정치 행보로 어린이집을 방문하면서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대한 상식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차 숙지하지 않은 대통령의 불성실함과 무지함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 아이의 부모로서 이 정부의 출산 및 인구정책과 교육 정책에 실효성이 있을지 강한 의구심이 일었다.

은연중에 드러내고 만 무관심과 무지. 강한 유감을 느끼면서 점점 궁금해졌다. 막연히 아주 어린 영유아들은 집에 있을 것이라 여긴 윤 대통령은 과연 그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그렇다면 돌보는 사람은 당연히 아이들의 엄마 또는 조부모 정도라고 예상했을까? 조부모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집에서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없는 경우에 대한 상상은 한 번이라도 해 봤을까?

어린이집 방문 이후 진행한 다자녀 공무원과의 오찬에선 남성용 앞치마를 선물하며 "남자도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여전히 가사분담의 무게중심이 여성쪽으로 기울어 있는 현실, 그리고 저출산 문제 해결에 대해선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이미 출생자보다 사망자 수가 앞서 유래 없는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지금, 은연중에 드러나 버린 대통령의 인식과 관심도를 미루어 봤을 때 착잡한 심정이 들면서 크게 기대를 갖지 않게 된다.

여전히 엄마에게 쏠려 있는 출산과 양육의 무게

난 출산과 육아를 귀하게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늘 의문을 가지고 아이를 키워왔다. 나는 올해 9세인 남자 아이를 하나 키우는 직장맘이다. 법정 출산휴가 3개월 후, 직장으로 복귀했다. 육아휴직 제도가 있었지만 당시 업무적인 상황과 회사 내 분위기에서는 신청할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출산휴가 중 대체 인력을 구하는데 애를 먹어, 3개월 내내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아이를 봐 줄 수 있는 나는 그나마 형편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어렵게 출산휴가를 가고, 어머니의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둘째 출산은 선뜻 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조부모 등 가족의 지원과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가까운 지인 한 명은 어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돌봄 서비스 등을 이용했는데 자주 바뀌는 선생님에 적응하느라 힘겨워 하는 아이를 보며 늘 퇴사를 고민했다.

간혹 드물게 남성이 용기 있게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눈치를 보며 사용하지 못한다. 아직 우리 사회는 주로 여성에게 출산부터 육아, 교육까지의 의무와 책임을 부가한다. 엄마표 영어, 학습는 있지만 아빠표 영어, 학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지인은 열심히 버티다 코로나19로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재택 근무를 하던 끝에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금도 태풍이 불어 유치원이나 학교가 휴교령을 내리면 매번 애를 먹는 직장 동료들을 본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족 단위 중심, 특히 엄마에게 그 역할이 쏠려있는 출산과 양육의 책임은 무겁다. 아직 사회 전반적으로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게 가장 좋다'는 인식이 크며, 나를 비롯한 엄마들 본인도 이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들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다자녀 공무원과 오찬간담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에게 선물할 앞치마와 요리책을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다자녀 공무원과 오찬간담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에게 선물할 앞치마와 요리책을 보고 있다.
ⓒ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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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남편과 아이, 셋이서 경주로 짧은 휴가를 갔다. 경주 시내의 유명 관광지에서 식사를 하려는데 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노 키즈 존(No Kids Zone)이었다. 여러 군데 전화를 돌려 확인을 해 보니 '아이는 입장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다 다행히 노 키즈 존이 아닌 식당을 찾아 겨우 식사를 했다.

어린이 양육이 가족 중심 특히 엄마나 여성 조부모에게 책임이 쏠리고, 어린이 발달단계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이해가 부족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는 점차 고립된다. 어느새 아이들은 성가시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로 각인돼고 이런 인식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힘들게 하는 악순환 구조가 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본인의 선거 공약이었고, 앞서 국무회의에서 강조했듯 '출산율을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췄던 기존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시작으로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건, 실제 민생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한 그의 모습 때문이다. 

국가가 보육을 더 많이 담당한다고 해도, 아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문제 파악과 인식이 없다면 결국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무시한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 같은 결과 중심의 정책만이 되풀이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그 사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저출산 정책을 해결할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가 <그림자의 섬>이라는 인상적인 그림책을 발견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다비드 칼리 글에 클라우디아 팔마루치가 그림을 그렸다. 악몽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왈라비 박사에게 찾아온 한 늑대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구상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멸종 위기에 놓였거나 이미 사라져 버린 128 종류의 동물들이 전하는 무겁고도 기묘한 꿈의 잔상이 떠나지 않는 작품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살짝 두려워졌다.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의 어린이도 이렇게 사라져서 악몽의 공포를 호소하며 그림자의 섬의 왈라비 박사를 찾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아주 짧은 시간, 눈부시게 경제적인 성장을 일궈냈지만 그만큼 빠른 속도로 인구가 소멸되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는 보여주기를 넘어선 진정한 관심과 고민으로 이 문제를 돌파해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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