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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장마와 우려하던 태풍이 지나간 요즘,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 몸을 감싸는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완연한 가을이 다가옴을 알려주고, 2022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때도 머지않았음을 함께 상기시킨다.

시간의 흐름이 야속한 것은 당연지사지만, 이번엔 약간 불안하기까지 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서울에서 현재 내가 머무는 전셋집의 계약이 내년 1월에 만료되기 때문. 연장할 수야 있겠지만,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대에 집주인께서 전세금 인상 얘기를 꺼내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 하나, 이 가격에 이만한 조건의 집은 이제 찾기도 어려울 텐데... 전세자금 대출은 같은 조건으로 계속 지원받을 수 있을까, 월세를 알아봐야 하나...' 와 같은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다.

얼마 전, 현 정권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종합부동산세 기준 완화가 발표된 것을 보고 조금 들여다보았다. 자세한 내용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 '종부세 내는 사람들 부럽다'였다. 적어도 그들은 당장 살 집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하는 사람들은 아닐 텐데, 그 와중에 세제 개편으로 인해 부를 더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니 그저 부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순간, 이러한 나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 예전 농촌에 살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적어도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하는 세제개편이다!'와 같은 비판적인 사고로 현 사안을 바라봤을 텐데, 이제는 그런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현재 나의 초라한 처지와 대비되는 듯한 그들의 삶을 부러워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나를 무력하게 만든 걸 보고는 당장의 삶을 살아나가는 데 급급해질 뿐이었다. 이대로 사고하고 사유하는 능력이 마비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까지 생각하게 됐다.

일전에도 밝힌 적 있지만 지금 서울에서 내가 사는 집은 반지하이다. 8월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침수피해로 인명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정부는 주거목적용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적 있다. 그때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서울에서의 다음 거처는 어디로, 어떻게 구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서울에 집이 없는 지방 출신 대학 동기들도 저마다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양질의 일자리 대부분이 서울에 있다 보니 어떻게든 서울에 머물려고 하지만 나날이 치솟는 임대료에 다들 근심이 가득했다. 방 한 칸, 햇빛 한 줌에 임대료가 껑충 뛰어오르니 삶의 질은 잠시 뒤로 미루고 나처럼 반지하나, 매우 비좁은 원룸에서 사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75명으로 인구절벽 가속화가 점차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 마지막 희망은 1990년대생들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막상 이러한 이야기를 접하는 90년대생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건국 이래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와 같은 세대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둘 셋씩 낳으며 가정을 꾸리는 상상을 감히 할 수나 있을까? 라는 생각인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도 이러한 기사를 두고 '둥지 없는 새들이 어디에 알을 낳을 수 있느냐'와 같은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괴산에 있는 나의 본가에는 엄마 아빠께서 어딘가에 구해오신 새집들이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처음 새집을 둘 때만 하더라도 과연 새들이 올까 생각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제비, 곤줄박이 등과 같은 새들이 찾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낳아 기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현재의 청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마련해준다면 그 이후엔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는 것까지의 과정이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홍세화님은 인권연대 회원이십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월세살이, #청년생활, #상경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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