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가 챔프전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스테판 이슬' 강이슬의 슛감이 더 올라와야 한다.

강이슬 ⓒ 한국여자농구연맹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 '정선민호'가 강이슬의 37점 맹활약을 앞세워 12년만의 농구월드컵 본선 승리라는 값진 성과를 이뤄냈다. 정선민 감독이 이끄는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은 9월 24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 슈퍼돔에서 열린 2022 국제농구연맹(FIBA) 호주 여자농구 월드컵 A조 예선 3차전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99-66으로 대파했다.
 
한국은 1964년 페루 대회부터 16회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출격했다. 총 12개국이 참여한 이번 대회에서 FIBA 랭킹 13위의 한국은, 미국(1위), 벨기에(5위), 중국(7위), 푸에르토리코(17위), 보스니아(26위)와 함께 A조에 편성됐다. 6개국씩 두 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거쳐 각 조 상위 4개국이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해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회를 앞두고 핵심 전력인 박지수(KB국민은행)를 비롯하여 배혜윤(삼성생명), 최이샘(우리은행) 등이 모두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이탈하며 정상적인 전력을 꾸리지 못했다. 특히 골밑이 역대 최약체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무게가 떨어졌다.
 
우려한 대로 정선민호는 22일 중국전(44-107), 23일 벨기에전(61-84)에 연달아 큰 점수차로 무릎을 꿇었다. 특히 중국에게는 무려 63점차로 역대 한중전 A매치 최다점수차 패배라는 굴욕을 당했다. 전력의 열세는 이미 예상된 것이지만, 너무나 무기력하고 일방적인 패배에 농구팬들은 큰 실망감을 드러냈고, 정선민 감독과 선수들의 마음고생도 컸다.

하지만 이대로 동네북처럼 월드컵을 마감할 수 없다는 절실함이 여랑이들의 독기와 승부욕을 일깨웠다. 벨기에전에서 한국은 패하기는 했지만 리바운드와 득점력 등에서 중국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정선민 감독은 큰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할 기회가 부족한 한국 여자농구의 현실을 거론하며 "매 경기가 우리 선수들에게는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다. 이렇게 큰 국제무대를 통하여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목표"라고 강조했다.
 
보스니아전은 푸에르토리코와 함께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잡아야할 상대로 꼽힌 '1승 타깃'이었다. 보스니아 역시 푸에르토리코-중국에 연패하며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다. 보스니아의 전력은 A조 참가국 중에서는 약체로 분류되지만 에이스 존쿠엘 존스가 있어서 얕볼 수 없는 상대였다. 존스는 2016~2017시즌 우리은행에서 외국인 선수로 활약하며 당시 외국인선수상, 수비선수상, 베스트5를 휩쓰는 빼어난 활약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보스니아전에서 한국은 에이스 강이슬이 마침내 대폭발했다. 강이슬은 3점슛 7개를 포함하여 등 37점 8리바운드 5어시스트 3스틸의 맹활약을 선보였다. 박지수의 공백으로 갑작스럽게 팀내 에이스 자리를 물려받게 된 부담감 때문인지 첫 경기인 중국전에서 단 3점에 묶이며 부진했던 강이슬은 벨기에와의 2차전에서 11점을 기록하며 첫 두자릿수 득점으로 슛감각을 가다듬었고, 보스니아전에서 그간의 한풀이를 하듯 자신의 국가대표 커리어 인생경기를 펼쳤다.
 
앞선 2경기에서는 3점슛 14개를 시도하여 단 3개를 적중시키는 데 그쳤던 강이슬이지만, 보스니아전에서는 14개를 시도하여 7개를 성공시키며 50%의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 심지어 전체 야투 성공률은 무려 61.9%(13/21)에 이르렀다.
 
FIBA도 강이슬의 놀라운 활약에 주목했다. FIBA는 홈페이지에 올린 리뷰에서 "강이슬이 커리어에 남을 하루를 보냈다"고 평가하며 "강이슬이 보스니아전에서 기록한 선수 공헌도 효율지수(Efficiency)는 44점으로 2018년 호주의 센터 리즈 캠베이지(2018년 대회 4강 스페인전, 33득점 15리바운드 4블록슛)가 기록했던 효율지수 41점을 뛰어넘은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빅맨보다 확률이 떨어질 수밖에는. 슈터로서 강이슬이 사실상 한 경기를 홀로 지배하는 활약을 펼쳤음을 보여준다. 높이 열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은 보스니아전에서도 리바운드 싸움에서는 35-41로 밀렸지만 강이슬의 폭발적인 외곽슛과 조직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다.
 
강이슬은 이날 3점슛에만 의존한게 아니라 과감한 돌파와 리바운드 가담, 앞선 압박 등으로 넓은 활동량을 보여줬다. 또한 강이슬이 수비를 끌고 다니면서 만들어준 공간을 활용하여 동료 선수들도 슛감각을 되찾았다. 박혜진이 16점 7리바운드, 박지현이 13점 6어시스트 5리바운드, 김단비가 10점 8어시스트 6리바운드로 고른 활약을 선보이며 지원사격했다.
 
강이슬의 활약은 역대 국가대표 레전드 슈터들의 인생 경기까지 소환하고 있다. 허재는 1990년 아르헨티나 남자농구월드컵(당시 세계선수권대회) 이집트전에서 무려 62점을 올리며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대회 최다득점 기록을 세웠다. 이충희는 1986년 대회 브라질 전에서 45점을 올렸는데 이중 전반에만 한국이 기록한 팀득점 38점중 자유투 2점을 제외하고 36점을 혼자 몰아넣는 진기록을 세운 바 있다.
 
또한 방성윤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대회 조별리그 카타르전에서 3점슛 12개 포함 42점을 몰아넣은 바 있으며, 문태종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필리핀전에서 38점을 쏟아부으며 17점차 열세를 뒤집는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이들 모두 팀이 전력상 열세이거나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사실상 '원맨쇼'로 팀을 하드캐리하여 승부의 흐름을 바꿨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한국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30점 이상을 넣는 모습을 거의 보기가 힘든 여자농구에서는 강이슬의 활약상이 더 값지게 다가오는 이유다.

특히 강이슬의 인생경기가 역대 레전드들과 비교해도 그 가치에서 뒤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한국 여자농구의 월드컵 11연패를 끊는 역사적 승리를 이끌었다는 데 있다. 한국이 종전 농구월드컵 본선무대에서 승리했던 것은 2010년 체코 대회 한일전 승리 이후 무려 12년만이다. 당시 정성민 감독이 선수로서 활약했던 대한민국은 8강진출에 성공하며 3승 6패로 8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4년 터키 대회와 2018년 스페인 대회는 각각 3연패에 그치며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강이슬은 박정은-변연하-강아정 등 역대 대한민국 여자농구 간판 슈터 계보를 잇는 선수로 꼽힌다. 다만 WKBL에서의 활약에 비하여 국제대회에서의 확실한 임팩트는 아쉬움을 남겼고, 큰 경기에 강한 에이스 본능도 부족한 편이었다. 보스니아전은 강이슬의 국가대표 커리어에 대한 평가를 바꿀수 있는 최고의 경기로 남을 전망이다.
 
더구나 한국은 이번 승리로 8강진출의 희망까지 되찾을 수 있게 됐다. 다음 상대가 세계최강 미국이지만, 최종전에서 만날 푸에르토리코는 한국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보스니아를 잡으면서 1승과 골득실에 대한 부담을 던 만큼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한결 편안한 환경에서 푸에르토리코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가장 최악의 상황을 딛고 다시 희망을 이끌어낸 여랑이들의 투혼과 도전에 팬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강이슬 보스니아농구 여자농구월드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