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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이 꺼지자 돈은 마르고

시중에 넘쳐난다고 하던 '유동자금'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돈 조달이 힘들어지고 있다. 얼마전까지 엄청난 규모로 팽창해오던 벤처 투자가 뚝 끊기면서 이른바 '투자 혹한기'가 찾아 왔다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돈이 넘쳐나던 스타트업 투자 시장도 갑자기 반전되어서 유명 유니콘 기업들조차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 은행대출 시장을 기웃거린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으로 큰 폭의 금리인상을 연속적으로 단행하자 시중금리도 뛰면서 대출시장도 빡빡해지고 있다. 시중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금리가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올라 6% 벽을 넘어가고 있는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경기침체 우려로 인해 이제 추가대출은 고사하고 있는 대출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는 추가 운전자금이 필요한 신생기업들이나 삶을 이어가야 할 서민들에게 지금이야말로 돈이 아쉬운 때라는 점이다. 그런데 늘 그래왔듯이 은행, 카드사, 캐피탈, 투자회사 등 각종 금융회사들은 이렇게 돈이 가장 절실한 타이밍에 '비올 때 우산을 빼앗아 가는 것처럼' 자금줄을 조여버린다. 

과거에도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금융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기업'이라기 보다는, 실물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자금중개'를 뒷받침하는 '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정부도 일정한 금융규제를 통해 이런 환경을 조성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금융은 그 어떤 산업보다 수익성이 높은 영역으로 변모했다. 때문에 최근 금융은 주요 경제주체인 가계나 기업의 '자금수요'에 반응하기 보다는 은행이나 증권사의 '수익'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커졌던 것이다.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금융회사들의 행동이 바뀌자, 이제 서민들은 수익이 나지 않는 고객이 되어버렸다. 대신 담보자산이나 정기수입이 확실하고 큰 규모의 대출과 상환을 무리없이 반복할 수 있는 유족하고 신용평가점수가 높은 고객들 즉, 이미 돈을 가진 이들, 자산이 있는 이들, 소득이 충분한 이들에게 기존 금융은 '돈이 돈을 벌게 해주는' 더 없이 중요한 서비스가 된 것이다.

하지만 '외면받는 수요'에 천착한 '잘 눈에 안띄는 금융'도 사실 엄연히 우리사회에 존재한다. 사회의 위쪽에 흐르는 주류금융과 달리, 눈여겨 봐야 겨우 보이는 아래쪽 서민들이나 사회적경제에 흐르는 금융, '사회적 금융'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 붙은 돈의 흐름이 그것이다. 위쪽의 주류금융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로 떠 넘길 때, 이들은 사회적 이익을 속에서 사적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금융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사회를 돕는 금융은 많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아래쪽의 돈의 흐름에 주목하고 사회적 금융을 이론으로 실천으로 천착해온 저자 문진수의 <우리가 몰랐던 진짜 금융이야기>는 그래서 매우 소중한 책이다.

이미 2009년에 가계부채 해결을 다룬 <행복한 가족경제학>을 펴냈고 이후 <금융, 따뜻한 혁명을 꿈꾸다>와 지역화폐를 다룬 <돈의 반란> 등 대안 금융에 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저자가 거의 한국사회적 금융의 완결판으로 낸 책이 <우리가 몰랐던 진짜 금융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책 소개 표지
▲ <우리가 몰랐던 진짜 금융 이야기> 책 표지 책 소개 표지
ⓒ 김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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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마디로 주류금융의 다른 편에서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성장해온 한국의 사회적 금융을 거의 전부 망라하여 꼼꼼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그래서 부제를 '한국의 사회적 금융 현장리포트'라고 붙였겠지만, 사회적 금융에 대한 저자의 뚜렷한 관점과 식견으로 잘 선별한 생생한 사례들이 체계적으로 압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현장 취재일기처럼 생각하면 큰 오해다.

내용을 보면 사회적 금융을 크게 4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해서 담아내고 있는데, 첫째는 비영리 기반의 공익적 가치를 지향하는 '포용금융', 둘째로 신협이나 공제조합처럼 금융을 통해 공동체를 지켜내려고 하는 '호혜금융', 그리고 비교적 최신 트렌드이면서 주류금융과도 상당히 겹치는 '임팩트 금융', 그리고 어쩌면 지방소멸을 막아줄 중요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지역금융'이 그것이다. 여기에 그는 서민금융진흥원 같은 공공금융을 덧붙이고 있다. 

사회적 금융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

사회적 금융은 정부나 공공기관 어디에서도 명확한 책임을 지는 곳이 없어 정부 통계도 제대로 없다. 사적인 기관이나 연구조직들에서 낸 통계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사실상 2022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금융 전부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그것도 딱딱한 수치들만 조합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주요 사회적 금융조직들 책임자들과 접촉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들에게서 돌아온 답변들을 잘 요약해서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금융이 비교적 낯설지 않은 나의 경우 조차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대한민국에 이런 회사가 있었나?" 하고 놀랐던 경험도 몇 번 있었다. 또 "아! 이 분이 지금 이곳에서 사업을 잘 하고 계시구나!" 해서 사회적 소명을 갖고 활동하던 지인을 발견하며 반가움이 차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은 사회적 금융을 망라하면서도 숫자와 이야기, 그걸 만든 사람들, 그들의 활동 철학들을 잘 엮어서 담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협이나 공제조합등을 다룬 호혜금융과 우리나라에 특히 부족하지만 중요한 지역금융에 관심이 많이 갔다. 저자는 이 두 분야에서 드물지만 보석같은 사례들을 찾아내서 잘 설명해주고 있을뿐 아니라 저자가 직접 방문해서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지역금융 사례들까지 언급해주고 있다.
 
주요 사회적 금융의 위치와 영역을 표시한 그림
▲ 사회적 금융의 위치와 영역 주요 사회적 금융의 위치와 영역을 표시한 그림
ⓒ 북돋움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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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자가 특별히 신경을 쓴 이 책의 압권은 아마도 '임팩트 금융'이 아닐까 싶다. 임팩트 금융은 비영리 조직에서부터 상당히 세련된 임팩트 투자회사들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알려진 '시민투자 플랫폼'과 사회주택 관련 투자 기금까지 실로 방대한 영역과 사례들을 깔끔하게 압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장 가슴이 답답했던 대목들은 저자가 사회적 금융의 사례를 이어가는 매듭매듭마다에서 사회적 금융이 어려움을 겪고 교착상태에 빠지는 원인으로 '제도의 부재'를 짚을 때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회적 금융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졌어야 할 제도들을 마련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 탓에 저자는 각종 우회로와 묘수를 동원해서 억지로 사회적 금융 기능을 만들어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현장 사례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가장 먼저 국회의원 300명이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고 마찬가지로 각 의원실의 정책보좌관들이 한번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시 온 부채의 시대

넘쳐나는 유동성을 자양분으로 부풀어온 거품의 시대가 가고 다시 돈 구하기 어려운 고금리 시대, 당장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부채시대가 올 모양이다. 특히 이미 GDP대비 100%를 훨씬 넘어섰고 순가처분소득 대비 200%가 넘어 2270원 규모로 커진 가계와 자영업 부채의 짐이 사회적 부담이 되는 시대가 왔다. 지금이야말로 서민들에게 막힌 돈을 흐르게 해줄 '진짜 금융'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에 대해 한 마디만 덧붙여 보자. 만연체가 되기 쉬운 금융이야기를 짧은 구어체로 이어가면서도 무려 4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아낸 저자의 글솜씨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비관적일 수도 있는 사회적 금융을 시종일관 낙관적 자세로 접근해서 독자들에게 어두운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한다. 저자는 마지막에도 이렇게 매듭짓는다.

"금융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금융이 흐름을 바꾸면 돈이 선하게 쓰이는 세상을 만들 수가 있다. 금융의 사회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진짜 금융 이야기 - 한국의 사회적금융 현장 리포트

문진수 (지은이), 북돋움coop(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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