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필자는 지난 6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러시아에 체류했습니다. 이 기사는 당시 보고 느낀 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편집자말]
 모스크바 크렘린(크레믈)
  모스크바 크렘린(크레믈)
ⓒ 이승연

관련사진보기

 
소련의 과거에서 기억해야만 하는 유산이 있다면 추상적인 '민족의 영광'이나 지도자 한 명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억압적인 체제가 아닌, 광범위한 압제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보통의 러시아인과 소련인들의 열망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러시아에서 그러한 열망에 대한 기억은 교묘하게 우회되고 관리된다. 전제정을 타도하고 민족의 장벽을 뛰어넘어 평등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과거의 열망마저 버려야 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린 지금, 현 정권은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 생긴 가치와 방향성의 공백을 비집고 과거의 영광을 빌려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새겨 넣는다. 

과거 한국의 유일한 문제가 독재가 아니었듯이, 군국주의적 독재 정권이 러시아의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또한 전쟁은 한 국가의 국민이나 지도자만의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국제적 역학의 산물이기 때문에, 러시아만을 비판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항상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에서 러시아의 현 정권에서 전쟁이 정당화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는다면 전쟁의 진정한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전쟁은 더 많은 폭력, 더 많은 무기가 아닌 국민들의 저항에 의해서만 진실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소련 시절부터 살아온 이들은 대개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소련이 붕괴했을 때처럼만 안 되면 된다는 식이었다. 젊은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만난 청년들은 정치적 상황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취업난이나 인플레로 인한 생활고 등 눈앞에 닥친 일을 견뎌내기 바빠 보였다. 전쟁 시대에 방문한 러시아는 나라가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말하던 서방 언론들의 호들갑이 무색하리만치 일상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흐름을 감안해도 다소 빠른 물가상승률이 시사하듯 그 이면에서는 천천히 고통과 불안이 가중되고 있었다. 

'영광스러운 시절', 그 허황된 꿈 

기차에서 만난 한 청년은 솔직히 말해서 러시아 청년들 대부분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서, 먹고 살기가 바빠 그런 것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한때 해외 대학에 다니며 여성학을 공부하곤 했던, 러시아의 기준으로는 놀랍도록 깨어 있던 지인에게 러시아 페미니스트들의 반전 저항 상황을 물어봤을 때 나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러시아의 정치'를 논할 만한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러시아인이라고 느끼지도 않고, 러시아에 관심도 없고, 그저 러시아를 떠나기만 바란다고. 

그는 이미 그가 공부한 것과는 전혀 관련 없는 직업을 얻은 지 오래였다. 사회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나의 친구는 전쟁이 발발한 이후로 계속 언젠가 자신이 군대나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 잡혀가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친서방 자유주의자들이지만, 다음엔 다른 사람이 되란 법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징병이 없을 것이라는 지속적인 발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는 언젠가 징병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도 암암리에 계속 돌고 있었다(최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할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예비역에 대한 부분 동원령을 발표했다. - 편집자 주). 그러나 가중되는 경제적 고통, 투옥과 징병의 공포를 마주해 많은 사람은 그저 견디거나 떠나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잔인한 농노제와 폭정, 혁명 이후 주변국의 침략, 제2차 세계 대전, 억압적인 구소련 체제, 소련 붕괴 이후의 극심한 빈곤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인들은 오랜 고난의 역사를 거치며 부당하고 괴로운 일을 견뎌내는 것에 특화되었고, 현 정권은 러시아인들이 지금 또한 익숙하게 견뎌내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푸틴의 러시아는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 '영광스러운 시절'을 경험했던 러시아인의 역사를 재현해주겠다고 약속하며, 대러시아주의의 부활을 통해 군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 한다. 그래서 오늘날 러시아는 스탈린뿐만 아니라 로마노프 왕조와 표트르 대제를 비롯한 '위대한' 차르들을 기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차르들이 농노제를 아무리 강화하고 민주적이고 해방적인 가치를 아무리 거부했어도, 어쨌든 차르들의 시대는 러시아 제국의 '영광스러운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푸틴은 '영광스러운 시절'에 대한 소망을 불어넣으면 자연스럽게 그 영광을 다시 실현해 줄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애착도 다시 높아지리라고 믿는 것 같다. 러시아인들이 스탈린을, 레닌을, 차르를 사랑했듯이. 푸틴이 새 시대의 '차르'가 아니냐는 비아냥은 어쩌면 그가 의도한 동일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또한 차리즘은 그 정점에서 스스로 몰락했다는 것을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 혁명 이전의 러시아에서는 아무도 이렇게 낙후한 국가에서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1905년 '피의 일요일'에도, 군중은 차르를 믿고 '아버지여, 인민을 돌보아 주시옵소서'라고 간청했을 뿐이다. 그러나 차르가 총과 칼로 그들의 믿음을 배신하고, 이후 1차대전으로 인한 고통이 정점에 이르자 세계 여성의 날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비로소 혁명은 시작되었다. 

전쟁이 일으킨 동요는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인들의 삶과 생각에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전쟁은 이미 러시아 사회에 균열을 불러오고 있고, 아무리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말을 쓴들 이미 갈라지기 시작할 틈을 봉합할 방법은 없다. 설사 그 균열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과거를 불러내면서 사람들이 과거의 일부분만을 기억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변화를 원한다'는 노래를 부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처럼. 전쟁은 사회주의 반전 이론을 편 러시아 혁명가들을 단지 러시아의 상징적인 인물이 아니라 정말로 현 시국에 필요한 지식인들로 탈바꿈했다. 

전쟁 이전 러시아 좌파나 러시아 페미니즘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전쟁은 비로소 러시아의 진보 정치가 다시 주목받을 기회를 열기도 했다. 개전 직후 러시아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의 전쟁 반대 선언은 러시아에도 진보 정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탄압 속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활동은 아직 미약하지만, 전쟁이 장기전이 된다면 그들 또한 장기전을 펴지 말란 법 없다.   

차리즘에서 소련 시절의 평등한 사회에 대한 약속까지, 러시아인들은 많은 거짓말을 견뎌내 왔지만 변화의 순간에는 항상 그것을 이겨내는 힘을 발휘하곤 했다. 낡은 것의 상실은 또한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이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푸틴의 러시아는 소련의 붕괴로 생긴 가치와 방향성의 공백은 독재자만이 아닌 민중 자신에 의해 채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거짓말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을.

"네가 누구이건, 네가 무엇을 하건, 하늘과 땅 사이에는 전쟁이 있다"던 그 노래, 
키노의 '전쟁' 가사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 그러나 어떤 이는 문이 되어야만 하고,
또 어떤 이는 자물쇠가,
그리고 다른 이는 그 자물쇠의 열쇠가 되어야 할 것이다."

태그:#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 #소련 , #빅토르 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성의 이름으로 읽고 씁니다. 남성적 추상화가 아닌 여성의 뼈와 살에서 나온 지식을 추구합니다. 사회학, 심리학 전공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