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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이 몽실몽실 뭉쳐 다니며 푸른 하늘을 마음껏 떠다닌다. 바람은 선선하고 솔향기 그윽하니 일하기 딱 좋은 날씨다. 아침 기온 15.2도이다. 아침 8시면 봉화군 춘양면 양묘사업소는 활기가 넘친다. 춘양면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의양리, 소로리, 학산리, 서동리 등에서 할매들이 나비처럼 모여든다. '안전운행'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유모차를 씽씽 몰고서 말이다.

오전 8시... 할매들 출근합니다
 
'안전운행'이라고 써진 유모차에 도시락과 호미를 실고 오늘도 출근합니다
▲ 할머니의 유모차 "안전운행"이라고 써진 유모차에 도시락과 호미를 실고 오늘도 출근합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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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게는 50여 명에서 작게는 10여 명까지 모여드는 할매들은 큰 나무 아래 벤치와 널따란 바위에 둘러앉아 달달한 믹스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며 생기 넘치는 아침을 시작한다. 쉼터에는 단아한 정자도 하나 있고, 정갈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다. 100원짜리 커피믹스라도 고급 호텔에서 마시는 커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할매들은 나무 그늘아래 앉아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양묘장에서 모닝커피 할매들은 나무 그늘아래 앉아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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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를 한바탕 풀어내고 할매들은 줄지어 솔밭으로 가신다. 할매들은 고랑에 줄지어 일렬로 앉으신 후에 어린 소나무 사이에 있는 풀을 매신다. 양묘장에서는 소나무를 키워 국유림에 식재를 한다. 각종 소나무, 참나무 등을 양묘장에서는 키우는데 벌써 100여 년 가까이 존재했으니 할매들의 젊은 청춘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춘양면양묘사업소에서 할매들은 줄지어 앉아 풀을 맵니다. 우산같이 생긴 모자를 둘러쓰고 뜨거운 볕을 피합니다
▲ 양묘장에서 풀매는 할매들 춘양면양묘사업소에서 할매들은 줄지어 앉아 풀을 맵니다. 우산같이 생긴 모자를 둘러쓰고 뜨거운 볕을 피합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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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면 나의 서식지에는 서너 평가량의 텃밭이 있다. 할매들이 심어놓은 분꽃, 고추, 가지, 오이, 호박. 거처하기 전부터 있었던 붓꽃, 작약 그리고 내가 심은 케일과 대파들이 더부살이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풀에게 관대하다. 어느 날인가 땡볕에 풀 뽑다 지친 나를 발견하신 정이네 할매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내 곁에 앉으시며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딸! 그렇게 힘을 팍 주고 하면 안 돼! 그런 호미 쓰면 안 돼. 머리가 멍청하니 손발이 고생하지! 딸은 전공이 뭐지?"
 
삼각형처럼 생긴 넙덕한 호미입니다. 정이네 할매는 하도 많이 써서 한귀퉁이가 닳았습니다. 할매는 할매의 호미를 선물로 주셨지만 쓰지 않으니 금새 녹이 슬었습니다
▲ 정이네 할매의 넙덕한 호미 삼각형처럼 생긴 넙덕한 호미입니다. 정이네 할매는 하도 많이 써서 한귀퉁이가 닳았습니다. 할매는 할매의 호미를 선물로 주셨지만 쓰지 않으니 금새 녹이 슬었습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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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는 유모차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신다. 매우 넙덕한 삼각형 비스무레한 모양의 호미다. 내가 보았던 일반적인 호미와 생김새가 달랐다. 

"자, 잘 봐. 내가 하는 것을…. 힘주면 큰일 나. 손목 나가. 멍청하게 있는 대로 힘을 주면 안 된다고! 나는 전공이 풀매기야."

할매는 호미로 풀을 파내는 것이 아니라 날을 땅에 대고 긁으셨다. 초록색 이태리타월에 때가 밀리듯 할매의 손에 풀들이 순순히 땅에서 밀려 나오고 비로소 풀 속에 감추인 케일이 드러난다. 역시 전공자는 달랐다.
풀인지 채소인지 구분이 어려웠던 텃밭에 할매의 손이 닿으니 비로소 케일의 형상이 드러납니다.
▲ 채소의 형상이 드러나는 텃밭 풀인지 채소인지 구분이 어려웠던 텃밭에 할매의 손이 닿으니 비로소 케일의 형상이 드러납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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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네 할매는 매일같이 양묘장에 출근하신다. 춘양양묘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근로계약은 일일 단위이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양묘장 사무실에 들어가서 등록을 하고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따라 몇 번 하고 바로 업무에 투입된다.

3일을 일하면 한 달 치 방값이 해결되고, 또 3일을 일하면 어지간한 생활비는 해결이 된다. 양묘장에는 할매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있지만 주된 선수는 할매들이다. 

양묘장 말고도 봉화에는 일자리가 넘쳐난다. 할매들은 돈이 길에 굴러다니는데 주워가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춘양에는 정말 일자리가 많다. 농가 일손도 필요하지만, 군청에서 하는 각종 사업과 단체에서 사람을 많이 뽑는다.

춘양에서의 한 달 살이는 일과 병행할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자유롭고 시간에 매이지도 않으니 나의 찐친들은 봉화 한달살이가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다. 

할매들은 농사도 지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니 한 달에 평균 보름 정도 일을 하신다. 일하다가 급한 일이 생기면 반나절만 일하다 가신다. 사전에 연차를 낼 필요도 없다.

양묘장에서는 오전 오후로 할매들의 근태 체크를 하고, 매월 임금 계산을 할 때 인주 듬뿍 묻힌 빨간 도장에 근무시간이 적힌 전표를 할매들에게 나누어준다. 할매들은 달력에 일한 날을 동그라미 쳐놓고 맞는지 확인하신다. 춘양에 최적화된 고용방식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선진화된 방식이 아닌가 한다. 
 
지난해 10월에 받은 임금전표랍니다. 도장이 많이 찍어질 수록 할매의 주머니가 두둑해집니다.
▲ 할매의 임금전표 지난해 10월에 받은 임금전표랍니다. 도장이 많이 찍어질 수록 할매의 주머니가 두둑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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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일 고용계약 형식으로 근로가 제공되어도 100여 년 이상 양묘장은 잘 돌아갔고, 80이 넘은 나이에도 언제든지 자유롭게 출근할 곳이 있다. 춘양양묘사업소는 1926년 산림청 춘양출장소 춘양묘포로 시작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묘장이다. 또한, 국내 최대의 금강소나무를 양묘하는 곳이기도 하다. 

양묘장과 함께한 어르신들의 인생
 
1926년에 문을 연 100여 년이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묘사업소입니다
▲ 산림청 춘양양묘사업소 1926년에 문을 연 100여 년이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묘사업소입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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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묘장이 있어 할매들은 젊은 날 생계를 가꾸며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워내 수 있었고, 세월의 저 너머에서는 인생의 쓴맛, 단맛을 함께했던 삶의 전우들과 인생의 마지막 장을 함께 써 내려갈 수 있다.

새참 때가 되면 집에서 들고 온 막걸리 한 잔에 걸쭉하게 노래를 불러주시는 일명 막걸리 할매, 비 오는 날이면 용궁반점 가서 간짜장 먹고 이쁜 옷 구경하자고 언제나 분위기를 띄우는 쪼깐이 할매, 조금 더 돈을 모으면 소 한 마리 산다고 기대에 차 있는 도심 할매…. 나란히 줄지어 앉아 박자를 맞추며 일을 해야 하니 서로의 성격도 집안도 모두 빠삭하게 들여다본다.

할매라고 쪼그려 앉아 풀매는 것이 처음부터 쉽기만 했겠는가. 하다 보니 인이 박여 지금은 금메달 선수가 된 것이리라. 몸이 힘들어도 양묘장에 나오면 즐겁다 하신다. 물론 용돈 버는 재미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같이 도시락 까먹고 커피도 한잔하면, 어느새 쌓인 피로가 싹 가신다. 지난날을 어떻게 살아왔나…. 생각하면 꿈만 같았던 어려웠던 시절들…. 솔향기 그윽한 밭에 앉아 있으면 살아온 날들이 아련해진다. 할매들이 매는 것은 풀이 아니라 고단했던 지난 삶, 먼저 떠나버린 가족들에 대한 되돌릴 수 없는 그리움, 그리고 어쩌면 깊은 고독과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팔십이 넘고 구십이 넘어가면 누구나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냈던 그 삶의 장을 마무리해야 한다. 어떤 이는 인생의 마지막 열매를 맺기 위해 신과 깊이 조우하며 글을 쓰고, 어떤 이는 평생 의료인으로 살아왔던 재능을 기부하여 무료상담을 해주고, 또 어떤 이들은 하루하루를 존재하기 위해 삶의 현장으로 나가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육신의 자유함이 없어 병마와 싸우며 마지막을 마주하기도 한다. 

작가는 글을 쓸 때, 미리 결말을 알고 잘 짜인 구성에 따라 내용을 채워나간다. 그러나 인생은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기도 하고, 몰라서 못 살기도 하며 또, 삶의 파도가 거세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기도 한다. 쪼그려 앉아 호미질하든, 근사한 실버타운에서 여유로이 생을 보내든 삶의 현장에서 생존과 겨뤄야 하든 인생은 누구나 마지막 장을 써 내려가야 한다.

'서라운드 할매'에 둘러싸인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이 어떻게 끝나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어떻게 사느냐가 참으로 중하다. 평생 밭에서 호미질로 글을 써오신 할매들의 책을 슬쩍 훔쳐본다. 오늘도 할매들의 책은 힘있게 한 줄씩 채워져 간다.

덧붙이는 글 | 우리는 누구나 각자 인생의 작가이자 배우입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장은 어떠할지 그리고 어떻게 쓰여져야 할지 생각이 깊어집니다. 지금 이 순간들이 쌓여 마지막 장을 채워가겠지요? 조은나무 조은열매처럼 마지막 결실을 아름답게 맺기 위해 한줄 한줄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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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근무중 홍익대에서 도시디자인과 인간의 감성으로 박사 2018 평창동계올림픽 국제방송센터(IBC) 총괄팀장 2012여수세계박람회 BIE 실사 등 PM, 국내외마케팅PM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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