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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인이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은 없다. 단지 그들은 '선택'을 내릴 뿐이다. 건강상(혹은 알레르기)의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겠지만 어떤 이들은 신념에 의해 소비를 그만둔다. 본인은 후자로 20년이 넘게 육식을 했었지만 2011년 7월부터 소와 돼지 섭취를 그만두는 것을 시작해 점진적으로 동물성 제품을 먹거나 입거나 쓰지 않게 되었다.

반가운 호기심과 무례함

채식을 하던 초기 많은 이들은 나만큼이나 혼란스러워했다. 아마 어딘가에서 본 채식 단계 도표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이 사람이 섭취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하고자 했을 테다.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선 꼭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이건 먹어도 돼?"

내 성격에 누가 먹으면 안 된다고 시켜서 시작한 게 아니었기에 애초 그런 건 없었다. 식단 조절을 하는 것도 아닌데 오늘 실수로 우유(소젖)가 들어간 감자칩을 먹었다고 해서, 순두부찌개 위에 얹힌 다진 돼지고기를 걷어내고 먹었다 해서 채식 D+365일이 0으로 시작하는 것일까? 처음엔 너무 아는 것 없이 무턱대고 시작한 감이 있었기에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쉽게 압도되어 그런 줄로만 알았다.

초기 몇 년은 혼자 밖에서 식사할 때면 서브웨이 베지(야채) 샌드위치나 주구장창 순두부찌개로 때우곤 했는데 그것도 타협해서 해산물 순두부찌개였고, 당시엔 그 어떤 해산물도 넣지 말고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용기와 재량이 없었다. '까다로운 사람' 되기가 두려웠고 몇 주, 몇 달만 하다가 지쳐나가 떨어질까 봐서였다.

단지 내 삶에서의 육류 소비 총량을 줄이고 그것이 지나친 육류 과소비에서 오는 폭력적인 가축 시스템들에 아주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균열을 내길 바랐을 뿐이었다. 나의 세계 안에서 이것은 혁명이었고 사회를 향한 작은 발악이었다.

지금은 생명 살리겠다고 하는 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닌데 하면서 비건이라는 정체성을 좀 더 당당하게 내세우고자 하지만 사실 너무 대중적이지 못하다, 유별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은 여전하다.

내가 어디까지, 무엇을 먹어도 되는지의 질문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맥락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이들은 채식하는 이가 나 말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마치 내가 채식하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는 이인 양 질문들을 던지기도 한다.
 
독일 베를린 마트에서는 포장재 없는 채소와 과일 그리고 비건 가공식품을 쉽게 살 수 있다.
 독일 베를린 마트에서는 포장재 없는 채소와 과일 그리고 비건 가공식품을 쉽게 살 수 있다.
ⓒ 최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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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호기심이 때때로 반갑고 고맙다. 그러나 일면식 없는 이들이 대뜸 '채소도 고통받지 않냐'는 식의 어디서부터 대화의 접점을 맞춰 나가야 할지 모르는 무례함을 취하면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고 매번 지친다.

이 질문은 대체로 다른 생명체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라기보다 '채식'을 한다는 상대의 도덕성이란 게 아니꼽다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이야 이전에 비해 채식산업이 많이 활발해지며 그에 대한 인식도 대중화되어 가고 있다. 눈에 띄게 변하는 매년 날씨로 인해 기후위기를 예민하게 실감하는 이들은 더욱 채식을 자주 실천하고자 한다.

도시의 대형마트 한켠에 비건 코너가 따로 생기는가 하면 편의점에서도 '동물'성 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콩으로 만든 술안주나 아이스크림이 들어와 접근성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현재 거주하는 베를린은 워낙 비건 친화적인 도시기에 오히려 비건 옵션이 없는 식당이라고 하면 게으르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한번은 단체로 식사를 하는 자리에 갔는데 닭칼국수 전문집이었다. 나 말고도 미래의 채식을 할지 모르는 다른 이를 위해 '배려의 가능성'을 열어두었으면 했지만 나 스스로를 '배려해달라'는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하는 때였다. 일행중에 누군가가 '그러고 보니 미연이가 먹을게 마땅치 않네' 하면서 닭칼국수 안에 들어있던 삶아진 감자와 사리들을 내 그릇에 덜어주었다.

챙겨주는 마음이니 그때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사회성을 발휘하고 오는 날이면 마음이 처참해지거나 며칠 악몽을 꾸기도 했다. 상대가 그렇게까지 배려해준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 스스로의 선택이 보장받는 사회나 여건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채식인으로 자유럽게 살기 위해

"고기 들어간 국물도 안 먹어?"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상대의 배려 유무를 떠나 나에게 느끼게 될 거리감이 두려워 '있으면 먹는다'는 말로 대응하곤 했다. 실제로 육류를 안 먹으면서도 최근 몇 년 전까지 평양냉면을 즐겨 먹곤 하던 내 얘기를 듣고 '그럼 너는 진짜 채식을 하는 게 아니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압도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선 내에서의 선택적 채식이 누군가에게는 가짜 채식이 되었다.

스스로 안에서의 윤리들이 충돌하면서도 어떤 부분에는 스위치를 꺼놓아야지만 사회적 여건이 허락하는 내에서 채식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나의 이 유연한 태도가 어느 정도 지인들을 삶에서 붙드는 데 유리하리란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 타협과 실패의 경험이 내 안에 누적되는 것이 결코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고 그래서 나는 이곳 독일로 이사 왔다.

꼭 비건이 되어야만 비건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식사가 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제안'하면 될 일이다. 한 끼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 '채식'도 식용이니까.

주변에 채식하는 이가 있다면 혹은 없더라도 어딘가에 묻고 찾아보고 이 무궁무진한 비건의 세계를 누리자! 이 재미 나만 누릴 수 없기에 여러분은 '그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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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오빠가 허락하는 페미니즘’처럼 누군가로부터 검열 받아야 하는 삶이 아닌 온전히 비건으로서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누리기 위해 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으로 그리고 올해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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