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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아이였던 60년대, 한 스웨덴 중년 여성은 청소 노동자였다. 그는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일기를 썼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사건에 자신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썼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세계사적인 사건들과 연동하는 역학에 눈이 번쩍 뜨였다. 평화학자 정희진씨 평처럼, "이런 일기는 처음이다."

스웨덴 청소노동자 마이아 에켈뢰브의 일기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던 1953년의 한반도를 걱정하며 시작된다. 당시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작은 나라 한국의 전쟁을 근심하다니.

집 안팎으로 이어지는 '빡센' 노동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마이아 에켈뢰브, 2022, 교유서가)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마이아 에켈뢰브, 2022, 교유서가)
ⓒ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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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닥칠 겨울에 가난한 자기 아이들이 입을 겨울옷을 걱정하다 그는, "마음은 한반도에 가 있다. 한 철이 지나면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재킷이 필요할까?" 놀라웠다. 이런 마음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자기 아이들을 생각하다 남의 자식을 생각하는 역지사지는 정의로운 모성만이 도달할 수 있다.

한반도에 그치지 않았다. 1953년에서 시작해 1969년에 이른 일기는 이 기간 중 있었던 세계사를 포괄하고 있다. 베트남 전, 중국 문화혁명, 비아프라의 굶주림과 대학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벌어지는 흑인 인권 탄압 등, 각각의 사건들에 자신의 생각(분노, 안타까움, 절망, 슬픔 등)을 개입시켰다.

라디오나 신문에 예민하게 촉수를 들이대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벌어지는 일과 그 사건들이 자신의 삶에 비집고 들어오는 틈을 관찰하고 썼다. 그는 세계와 내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각성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마이아의 세대와는 현격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때맞춰 라디오나 티브이의 공중파 뉴스를 듣지 않아도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순식간에 알 수 있는 인터넷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우리는 마이아보다 지적인 사고를 하고 명철한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처음 발발했을 때를 상기해 보자. 우리는 너도나도 호들갑스럽게 걱정과 관심을 표했지만, 지금 누가 그 전쟁을 얘기하는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미얀마 시리아 등 세계 곳곳은 지금도 무도한 살육이 벌어지는 분쟁 중에 있고 참혹한 인권 탄압이 자행되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은 철 지난 유행가를 대하듯 심드렁하다.

외국은 고사하고 얼마 전 입은 수해로 가족을 잃고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비에 젖은 세간을 말리고 있을 이웃조차 우리는 잊는다. 어떤 불평등이 나의 불행이 되어 들이닥치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불행으로 겪지 않는다. 공동체적 슬픔과 윤리적 공감을 망실한 우리에게 마이아의 일기는 '등짝 스매싱' 같다.

그는 가난했다. 난방을 마음껏 할 수 없는 추운 집, 오래전 고장 났어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변기와 샤워 줄, 아이들에게 싱싱한 야채나 과일을 먹일 수 없는 얇은 지갑, 낡아 반질반질해진 청소복, 무엇 하나 변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빈곤과 맞서 싸울 방도가 없다. 백전백패일 뿐이다. 싸우는 대신 버틴다. 무던함으로 매일을 살아나간다. 오늘 자신에게 할당된 결코 누가 대신해 주지 않을 청소 일과 가사노동을 앙다물고 해낸다. 청소 같은 필수 노동이나 엄마의 돌봄 노동에 기대지 않고 존립할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경시된다.

마이아는 홀로 다섯 아이를 키웠다. 20대 초에 이혼한 이후 줄곧 혼자 청소 노동으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켰다. 스웨덴은 복지국가의 상징이지만 때는 1950~1960년대다. 복지가 있지만 헐겁고 사각지대가 많다.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애쓰지만 "모든 서류 양식에 너무나도 질렸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인공처럼 서류를 작성하다 죽는다.

다섯 아이의 엄마로 사는 일은 그때도 지금도 숭고한 일이 아니라 "넌더리가 나는" 일이다. 청년 실업이 만성이던 60년대 스웨덴에서 자식을 오래 돌봐야 하는 가난한 부모의 고충은 크나크다.
 
"아이들의 엄마로 사는 것은 참으로 문제다. 엄마도 사람으로 존재할 테지만 보이거나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진짜 참된 관계는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이 관계는 양쪽 모두에게 일종의 의존 상태가 된다. 엄마는 책임을 느낀다. 아이는 엄마에게 일종의 기대감을 느낀다. 벗어나고 싶다."
 
새벽 세시부터 청소 일을 하고 돌아온 마이아는 녹초인 몸을 누일 새도 없이 다시 가사노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들을 돌보고 먹을 것을 만들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 하찮아 보이는 '빡센' 노동으로 자식의 삶을 돌본다.

그는 조기퇴직연금을 받았을까

고된 그를 보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친하게 지내던 50대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그는 언제나 쾌활하고 씩씩했다. 도대체 어떻게 삼복더위에도 저 명랑함을 유지하는 걸까 탄복하던 하루, 비지땀이 얼마나 나고 마르기를 반복했는지 흰 소금꽃이 핀 티셔츠 등을 보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얼음 둥둥 띄운 매실청을 나눠 주다 친해졌다.

그는 3시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절대 앉지 않는다고 했다. 앉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 앉지 않은 채 바로 집안일을 꾸역꾸역 마친단다. 그래야 집이 돌아간다고. 그 집에 아주머니만 살았던 건 아닐 텐데, 독박 가사를 하고 있었다. 마이아의 '벗어나고 싶음'은 모든 주부의 동병상련이다.
 
"도대체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일까-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읽고 있는 책이 있는 한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다음은..."

그를 노동의 고통에서 버티게 한 건 책이었다. 그리고 글쓰기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고 동료와 책 얘기를 나눈다. 청소하다 책 이야기를 하다니, 나는 그들의 지성이 경이로웠다. 우리는 아무도 책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게다가 끊이지 않는 노동 잠깐을 틈타 글을 쓰다니.

짓누르는 허리 통증을 이 악물고 마친 노동 후, 그는 무슨 연료를 때 글쓰기의 에너지를 마련했을까. 그의 뛰어난 일기는 그가 흘린 피땀의 응축이었다. 노동의 틈틈이 조각보처럼 이어붙인 글을 여러 잡지에 투고한다. 운 좋게 글이 실리고 원고료가 송달되면 기쁘다. 그 돈으로 밀린 세금을 내고 망가진 샤워 줄을 고치고 빵과 쿠키를 구울 밀가루를 산다. 정직한 노동과 겸손한 소비.

"나이가 들수록 펜을 잡기가 더 힘들어짐을 인지한다." 어느 날은 손이 너무 부어 쥐고 있는 펜이 성냥개비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썼다. 야간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잇고 사회 동아리에 참여하며 시민 됨을 행사한다. 더 이상의 무고한 죽음을 멈추고 미국은 베트남에서 떠나라는 전단지를 인쇄하고 배포한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해냈다. 위대하다.

마이아는 "예순일곱 살이 될 때까지 일할 힘이 없다." 노쇠로 점점 쇠약해지는 몸을 중노동으로 감당할 수 없자 조기퇴직연금을 신청하려 한다. 남편이 죽어 혼자된 여자는 조기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혼하고 다섯 아이를 키우는 여자에겐 조기퇴직 연금을 주지 않다니. 그는 정부의 불공정에 분노하며, 복잡한 신청서를 극한의 인내심으로 작성한다. 그는 조기퇴직연금을 받게 되었을까. 신의 가호가 있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은이), 이유진 (옮긴이), 교유서가(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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