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대전지역의 한 은행에서 은행 직원 1명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현금을 탈취해 달아난 피의자 이승만과 이정학이 무려 21년만에 검거됐다. 이들이 사건 발생 7553일 만에 잡힌 건 현장에 남은 유류물에서 검출된 유전자와 구체적인 진술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경찰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발전한 과학수사에 힘입어 미제사건을 해결해낸 쾌거로 꼽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여죄에 대한 의혹, 과거 무리한 수사로 인하여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야했던 피해자들의 상처라는 숙제 또한 남겼다.
 
9월 17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추적자와 도망자, 대전 은행강도 살인사건' 편을 통하여 21년 만에 정체가 드러난 두 용의자 이승만-이정학의 검거 과정과, 경찰 수사의 빛과 그림자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 대전 둔산동의 한 은행 지하주차장에서 살인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복면을 쓰고 나타난 범인들은 차량으로 현금을 수송하던 은행 직원들을 총으로 위협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인 김 과장이 총격을 당하여 사망했고 범인들은 3억 원이 든 가방을 들고 달아났다.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 도심, 그것도 총기로 범죄를 벌여 인명피해까지 발생한 이 영화같은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범인들은 어떻게 총기를 확보했을까. 놀랍게도 범인들이 사용한 총기는 경찰이 쓰는 38구경 리볼버로 드러났다. 은행강도 사건이 벌어지기 약 2개월전, 대전 송촌동에서 순찰중이던 노모 경사를 의문의 차량이 습격하여 총기를 탈취해가는 사건이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경찰과 은행이 잇달아 범죄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당시 경찰은 대규모 수사팀까지 꾸렸지만 결국 범인의 흔적을 쫓는데 실패했고, 범행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렇게 영원히 잊혀지는 듯 했던 이 사건은 그로부터 16년뒤인 2017년 대전경찰청 미제사건팀에 의하여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신기술의 발전으로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과학수사가 가능해지면서 범인의 실마리를 찾을수 있게 된 것.
 
미제팀은 21년전 당시의 현장 유류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여 범인의 DNA를 추출해내는데 성공했다. 당시 은행강도 범인이 흘리고 간 마스크에서 검출해낸 DNA는, 놀랍게된 2015년 한 불법오락실에서 증거로 확보한 담배꽁초에서 발견된 DNA와도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제팀은 수사 서류에서 확보한 인적사항을 바탕으로 무려 1만5천명에 이르는 용의자들을 선정하여 약 5년 정도를 예상으로 잡고 장기간의 수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DNA는 지문과 달라서 곧바로 신원을 확인할수 있는게 아니었다. 공개적으로 대상자들의 DNA를 채취할 경우 범인이 눈치챌 수 있기에 대상자들의 DNA를 한명씩 일일이 몰래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경찰은 대상자가 피다버린 담배꽁초, 음식점에서 사용한 수저, 코를 풀던 휴지까지 주워오는 등, 그야말로 첩보영화를 연상시키는 작전을 펼쳤다. 한 명의 대상자를 확인하는데만 몇 주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미제팀은 몇십 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진실을 밝혀내자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포기하지 않았고, 정확히 재수사 시작 4년 8개월만에 그토록 간절히 잡고 싶었던 진범 이승만과 이정학을 추격하는데 성공했다.
 
2022년 8월 25일 오전 8시 30분, 대전의 한 주택가에서 이정학이 먼저 체포됐다. 그로부터 6시간 뒤인 오후 3시에는 강원도 정선군의 한 찜질방에서 이승만이 체포됐다. DNA의 주인인 이정학은 혐의를 시인하고 죄를 뉘우친 반면, 공범으로 알려진 이승만은 처음에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가 경찰의 심층조사와 오랜 설득 끝에 결국 범행을 시인했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대구의 한 고등학교 동창관계였고 나이는 이승만이 한 살위로 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대전 은행강도 사건 이후 금전 배분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으며 20년 가까이 연락을 안하고 살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강도 사건 당시 총기살인을 저질렀고 더많은 역할을 담당한 것은 이승만이었고, 그는 훔친 돈을 배분하면서 이정학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갔지만 주식 등으로 돈을 탕진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들이 검거되었다고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는 첫째로 두 사람의 범행 사실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지 여부, 두 번째는 이승만의 또다른 여죄를 둘러싼 의혹이다.
 
강도살인은 국내법상 살인이나 무기징역까지 이어질수 있는 중범죄인만큼,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유죄판결을 이끌어낼수 있다. 그런데 DNA가 검출된 이정학과 달리, 이승만의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진술 뿐이다.
 
우려되는 것은 국내 형사법상 경찰 조사 단계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하면 증거 능력이 상실된다는 것. 만에 하나 이승만이 법정에서 또다시 자백을 번복하기라도 한다면, 그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수 있는 것은 오직 이정학의 진술만 남는데, 이것만으로는 유죄를 증명하고 충분한 양형을 구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승만의 자백은 곳곳에서 의구심을 자아낸다. 총기 살인의 경우, 고의성이 없었다는 변명과 달리, 전문가들은 당시 이승만이 명중률이 떨어지는 리볼버를 가지고도 거리가 있었던 피해자에게 두 발에 걸쳐 정확히 조준사격을 했다고 지적하며, 명백히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살인이라고 반박했다.
 
이승만은 범행에 사용된 총기에 대하여 증거로 발견될까봐 두려워 망치로 잘게 부숴서 대전의 인근 야산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해당 지역은 현재 대학가와 주택가를 중심으로 곳곳이 개발되어있는 상태였다. 표창원 범죄심리분석 전문가는 이승만이 총기를 파손해서 버렸다는 진술을 신뢰할수 없다고 의심했다.
 
또한 이승만은 대전 은행강도사건 이외에 아직 밝혀지지않은 또다른 범행이 있었다는 사실도 고백했다. 대전은행강도 사건 이듬해 벌어진 4억 7천만원의 현금수송 차량 탈취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
 
굳이 공소시효시간도 만료되며 드러나지않은 여죄 사실까지 뜬금없이 고백한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표창원은 "이승만은 진실을 토로했다고 볼 수 없다. 총기 행방과 여죄에 대한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은 자기 보호 혹은 다른 사람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더 크고 중요한 다른 범죄가 있고 그것에 대해서 추궁받고 싶지않은 심리"라고 분석했다.
 
대규모 강도 사건은 성공 가능성이 낮은 위험한 범죄이기에, 범인들은 대단히 치밀하고 조직적이어야한다. 이런 사건에는 '마스터마인드'라고 하는 주도자-설계자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과연 이런 중대하고 치밀한 범행을 이승만 단독으로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한편으로 21년만의 대전은행강도사건의 진범이 잡히면서, 다시 조명받은 것은 사건 당시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고초를 겪어야했던 피해자들이다. 2002년 당시 용의자로 몰렸던 윤민수(가명) 씨는 범인으로 지목되어 군대에서 쫓겨나고 친구들에게도 외면받았다. 이건호(가명) 씨는 형사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거짓 자백을 해야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형사는 체포 과정에서 뺨을 때린 사실은 인정했지만 고문과 가혹 행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강현국(가명) 씨는 20년간 용의선상에 올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받았음에도, 범인이 밝혀진 뒤 경찰은 '혐의없음'이라는 내용이 적힌 공문 한 장만 보내고 사과나 해명조차 없었다면 분통을 터뜨렸다. 강씨는 "운이 없었다면 인생을 망칠뻔했다. 그럼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했어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담당 형사는 "그 당시 모든 여건으로서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검사도 영장을 청구했던 것이다. 강압수사나 짜맞추기 수사는 없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진범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본인들이 범인이라고 인정하는) 그런 진술이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에 형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저도 꿈꾸는 것 같다. 도대체 뭔지 이해가 안간다"며 횡설수설을 늘어놓았다.

현 대전경찰청 수사팀은 누명 피해자들의 공식 사과 요구에 대하여 "지금 수사팀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진범을 검거한 경찰의 공로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2002년 당시 수사 경찰의 과오는 지금의 경찰이 인정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자백은 증거의 왕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증거라고도 한다. 가혹행위에 의한 자백이 얼마든지 있을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범인들만이 할 수 있는 진술을 이들이 자발적으로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바로 가혹행위의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과학수사의 발전이 아니었다면 진범들이 짊어졌어야할 죄의 무게를 지금도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들이 감당하고 있었을수도 있다. 언젠가 기술의 발전으로 증거들이 빛을 발할 날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유류품 하나 소홀히 다루지 않고 보관한 이들이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21년만의 진실이 밝혀질수 있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지문이 나오지 않는 손수건 한 장이라도, 현장에서 수집된 모든 증거물은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지금의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아도 나중에 중요하게 쓰일수 있다. 매뉴얼에 따라 증거 보존에 대한 절차를 갖고 있다면, 훗날 형사의 집념과 발전된 과학이 함께 나중에라도 사건을 해결하는데 역할을 할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표창원은 진범들의 체포만으로 모든 사건이 끝난게 아니라며 "혹시 진실의 끝 한자락이 아직 감춰져 있다면, 추가적인 위험이 존재하거나 깨어진 평화가 있다면, 수사는 계속되어야하는 것이다. 기소와 상관없이"라고 주장했다.
 
'더디더라도 올바르게 가라. 21년의 세월이 걸린 대전 은행강도 사건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교훈일 것이다. 몇십년이 걸리더라도 진범을 잡고야말겠다는 경찰의 책임감과 집념이 진실을 밝혀낼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고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한편에서는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어야했던 피해자들의 아픔도 존재했다. 진범 검거로 받은 박수와 찬사만큼이나,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의 자세도 있어야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경찰'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이알고싶다 대전은행강도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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