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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하게 익어가던 맷돌호박. 크기 비교해보려고 오이와 인증샷
 듬직하게 익어가던 맷돌호박. 크기 비교해보려고 오이와 인증샷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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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주렁주렁 달렸다. 올해 호박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정말 씩씩하게 잘 자라서 온 뒷마당을 다 헤매고 다닌다. 고맙게도 맷돌호박이 듬직하게 다섯 개나 달려서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매일 그것을 보면서 나는 마냥 흐뭇했다. 처음에 작았던 녀석들이 점점 커져가다가 슬슬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누렇게 완전히 익어서 수확할 날을 꿈꾸며 기쁨에 들떴더랬다. 캐나다 마당에서 맷돌호박이라니!   그러다가 걱정이 되었다. 지금 추세로 봐서, 딱 우리가 한국에 가 있을 때 수확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누가 이 호박을 따주지? 서리를 맞으면 망가질 텐데, 그렇다고 다 익지도 않았는데 따기도 그렇고.

이웃집 여인이 물도 주고, 우리 집을 관리해줄 거니까 그녀에게 부탁할까 싶기도 했지만, 아이들 챙기고 바쁜 그녀에게 이것까지 부탁하기는 좀 그랬다. 게다가 이것은 전형적 한국 호박이니, 수확 시기에 대한 감도 전혀 없을 테고.

남편과 아들도 종종 와서 뭘 한다고 했는데, 그 역시 호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거기에 부탁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다가 고맙게도 그런 내 고민을 들어주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분인데, 선뜻 와서 따주겠다고 했다. 그분도 텃밭을 가꾸시고, 농사를 잘 아시는 분이라서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다 싶었다.

오늘 아침, 손님이 찾아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오전 내내 비가 오길래 느지막이 발을 내디뎠는데, 뒷산 기슭에 곰이 앉아 있었다. 흔한 일이니 그리 놀라지는 않았지만, 뭔가 열심히 먹고 있는 게 이상해 보였다. 거기엔 먹을 것이 없는데. 그러고 다시 보니, 우리 호박을 따다가 거기 올라앉아 열심히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호박을 먹고 있는 곰
 우리 호박을 먹고 있는 곰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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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먹는 곰! 우리가 경적을 울려대니 귀찮은 듯 일어나서는, 반쯤 먹던 호박을 입에 물고 어슬렁어슬렁 사라졌다.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내려가 보니, 아, 이런! 이미 우리 마당에서 이미 하나 싹싹 긁어먹고, 두 번째 것을 챙겨간 것이었다. 단맛이 입에 아주 잘 맞았나보다.
 
곰이 먹고 껍데기만 버리고 간 흔적
 곰이 먹고 껍데기만 버리고 간 흔적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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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비씨주 광역 밴쿠버에 있는 우리 집은 산골에 있는 집이 아니다. 밴쿠버를 서울로 친다면 우리 집은 일산쯤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단독주택이 있는 동네지만, 차로 5분 거리에 고층 아파트도 있다. 뒷마당 바깥쪽은 그리 크지 않은 그린벨트 지역이고 그 너머에는 또 큰 찻길도 있건만, 곰은 이렇게 우리 동네 주택들을 자기 집 드나들 듯이 한다.

우리는 곰의 산책로 중간에 있는 듯하다. 물을 주다가 마주칠 때도 있다. 바로 5미터 앞에까지 마주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동네 이웃의 한 여인은 데크에 앉아서 아기 젖을 먹이고 있었는데, 등받이 뒤쪽이 이상해서 쳐다봤다가 곰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고도 했다. 정말 얼굴이 눈앞에 있었는데, 곰도 놀라고, 자기도 놀라고! 아기 엄마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실내로 들어왔고, 곰은 제 갈길을 갔다 하니 정말 더불어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즐리 베어와 달리, 흉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 흑곰은 일반적으로 온순한 편이어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드물다. 물론 아기곰을 데리고 있는 엄마곰은 예외지만 말이다. 어쨌든 엄청나게 힘이 세고, 영리하기 때문에, 순하다고 믿고 다가가서 함께 셀카를 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 지역은 큰길에까지 곰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곰이 나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다.

팔을 크게 벌려서 몸집이 큰 것처럼 하고, 서서히 뒷걸음질 치면서 멀어져야 한다. 등을 돌리고 달려서 도망가면 먹이라고 생각하고 쫓아오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 그리고 흔히 알려진 것처럼 죽은 척을 해도 안 된다. 곰은 죽은 동물을 먹기 때문이다. 

흑곰과 함께 살기 

결국 호박 다섯 개 중에 두 개를 빼앗기고, 나머지 세 개는 오늘 다 땄다. 이미 맛을 본 곰이 분명히 또 올 것이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반드시 다시 온다.
 
오늘의 수확은 맷돌호박 3개와 조선호박 3개.
 오늘의 수확은 맷돌호박 3개와 조선호박 3개.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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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처럼 완전히 누렇게 될 때까지 익히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하다. 그리고 애지중지 하던 호박을 두 개나 잃었으니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을 누리고 싶다면 결국은 함께 살아야 하는 삶이기에, 이웃과 나눠 먹듯이 곰과도 나눠 먹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산을 깎아 집을 지은 이 밴쿠버 지역에서는 곰과 결국 더불어 사는 수밖에. 오늘은 이 호박을 잡아서 일부 말리고, 또 일부는 얼리고, 친구들도 오라고 해서 한 덩이씩 줘야겠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비슷한 글이 실립니다(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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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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