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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항산 자락 윈터우디춘(雲頭低村) 마을의 출입문 위에 쓰인 한글로 "왜놈의 上官(상관)놈들을 쏴죽이고 총을 메고 조선의용군을 찾아오시오"라고 씌어 있다.(위) 밀양시에 조성된 항일 테마거리에 재현되어 있는 구호(아래)
 타이항산 자락 윈터우디춘(雲頭低村) 마을의 출입문 위에 쓰인 한글로 "왜놈의 上官(상관)놈들을 쏴죽이고 총을 메고 조선의용군을 찾아오시오"라고 씌어 있다.(위) 밀양시에 조성된 항일 테마거리에 재현되어 있는 구호(아래)
ⓒ 김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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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운동 단체(기관) 중에서 해방 후 가장 억울(!)한 기관(단체)은 조선의용대(군)가 아닐까 싶다. 조선의용대는 1938년 10월 의열단 및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중국 한구(漢口)에서 조직되었다. 김원봉을 비롯하여 100여 명의 대원들은 처음에 조선의용군의 이름을 사용했으나 중국 측이 '군(軍)'이란 용어를 기피하고, 명분은 규모가 별로 크지 않으니 '군'보다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조선의용대'로 불렸다. 

조선의용대는 중국측의 분리공작으로 김원봉 등은 충칭 임시정부 쪽으로, 김두봉 측은 1942년 8월 타이항산에서 화북 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에 나섰다. 

조선의용대는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활동을 할 때 <조선의용대 아리랑>을 비롯하여 <민족해방가> <낙화암> <자유의 빛> 등을 불렀다. 대원들의 사기진작과 일본군에 있는 한인병사들을 귀순시키고자 하는 전략이었다. 

조선의용대 아리랑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는 원한의 고개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에 깃발이 펄펄 (주석 9)

'조선의용군'의 정명을 회복한 화북조선독립동맹은 북상하여 타이항산에서 중국 팔로군과 함께 일본군의 섬멸에 나섰다. 산제비도 날기 어렵다는 험준한 타이항산에서 조선의용군은 조선인 음악가 정률성이 작곡한 <의용군의 행진곡>을 비롯 <항전돌격운동가> 등을 부르며 일본군과 싸웠다.

의용군의 행진곡
 -조국에의 진군 준비 -  

  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 조선의 젊은이 행진하네
  발을 맞춰 나가자 다 앞으로
  지리한 어둔 밤이 지나가고 빛나는 새 아침이 달려오네
  우렁찬 혁명의 함성 속에 의용군 깃발이 휘날린다
  나가자 피끓는 동포야 뚫어라 원수의 철조망
  양자와 황하를 뛰어넘고 피묻은 만주벌 결전에
  원수를 동해로 내어 몰자 전진 전진 광명한 저 앞길로. (주석 10)

앞에서 조선의용대(군)를 '가장 억울한 독립운동단체'라고 했는데, 그 시기 가장 치열하게 일제와 싸우고 손일봉ㆍ최철호ㆍ왕현순ㆍ박철동 대원이 전투 중 전사했으며 김세광ㆍ김학철 대원이 부상당하는 등 큰 희생을 치렀다. 그럼에도 해방 후 남쪽에서는 좌익계열로 서훈이 되지 못하고, 북쪽에서는 연안파로 몰려 숙청당하였다. 

1942년 타이항산 인근은 극심한 가뭄으로 조선의용군은 직접 산을 개간하여 작물을 심어 자급자족해야 했다. 하지만 깊은 산중이라 소금을 구할 수 없어 여성대원들의 지혜로 염분성이 있는 돌을 갈아 산채에 비벼 먹었다. 

그 당시 산에서 가장 많이 채취했던 산채는 돌미나리였다. 이화림 대원은 거의 매일 산에 가 돌미나리를 캘 때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조선의 민요 <도라지타령>이 생각나 부르곤 했는데 <도라지타령>의 가사를 바꿔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미나리, 미나리, 돌미나리
 타이항산골짜기의 돌미나리
 한두 뿌리만 캐어도
 광주리에 가득차누나.
 에해요. 에해요. 에-해요.
 우리의 근거지 너무도 사랑스러워.
 우리의 타이항산 너무도 아름다워. (주석 11) 
        

주석
9> 이중연, 앞의 책, 203쪽.
10> 이정식ㆍ한흥구 엮음, <항전별곡>, 320쪽, 거름, 1986.
11> 한중항일역사탐방단 지음, <중국대륙에서 부르는 타이항산 아리랑>, 94쪽, 차이나하우스, 2014.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겨레의노래, #겨레의노래_아리랑,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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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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