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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심심한 사과'라는 말이 화제가 되었다. 한 웹툰 작가의 사인회와 관련해 차질이 생기면서 주최 측인 카페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는 공지문을 게재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하나도 안 심심한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면서 해당 카페를 성토했다. '깊고 간절한'을 뜻하는 심심을 '지루하고 재미없게'로 오해한 것이다.

기성세대는 어휘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를 한탄했지만 기성세대 역시 지금 시대의 다양한 어휘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단어의 개수는 불과 1000개 안팎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국어사전에 수록된 단어의 개수는 최대 50만 단어 내외에 이르는데도 말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1000개의 단어에 갇힌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언어를 디자인하라>는 언어를 레벨업해 사고를 넓혀보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언어를 디자인하라>는 언어를 레벨업해 사고를 넓혀보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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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언어를 레벨업해 사고를 넓혀보자

그런 점에서 <언어를 디자인하라>를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관점 디자이너 대표 박용후 대표와 언어의 연금술사 유영만 교수가 수년간 토론하고 논쟁하며 창조한 '언어 레벨업의 기술'이 담긴 책이다.

저자들은 언제나 세상은 내가 가진 개념적 넓이와 깊이만큼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언어의 한계가 생각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언어의 한계를 극복해 인식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기에 언어를 새롭게 디자인해보자고 제안한다. 또한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로 불러내기 위해서라도 그 아이디어를 새로운 언어로 바꿔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이 제안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7가지 개념사전을 써보는 일이다. 신념사전, 관점사전, 연상사전, 감성사전, 은유사전, 어원사전, 가치사전이 그것이다. 새로운 단어를 만나면 사전을 통해 정확한 뜻을 파악하고, 거기에 담긴 통념이나 선입견을 깨부수는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신념과 가치를 담아 세상에 없는 나만의 관점을 구축하고 은유와 연상으로 본질을 파고드는 연습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유영만 교수 역시 철판을 용접하며 회색빛 청춘을 보냈기에, '지식융합' 대신 '지식용접(knowledge welding)'이라는 개념을 창안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질적 지식을 용접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지식의 연금술'을 생각한 결과이다. 이처럼 기존의 개념에 머무르기보다 저자만의 열정과 철학을 가미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기 위해 모험생의 길을 걸었기에 총 90여 권의 저·역서를 출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처럼 두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언어와 삶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책이 던지는 여러 질문 중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건 각자의 '마지막 어휘'가 무엇인가란 질문이었다. 이는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에서부터 나온 말로 우리가 자신의 행동과 신념, 그리고 삶을 정당화시키는 데 필요한 단어다.

개인 혹은 집단이 딜레마에 빠졌을 때, 결단을 내릴 때, 의사결정할 때 최후까지 의지하는 단 하나의 '신념어'인 셈이다. 이처럼 저자들은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단어가 있는가란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 언어들을 나만의 언어로 재정의해서 모으면, 세상의 그 어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나만의 가치사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처음에 얘기했던 '심심한 사과'를 둘러싼 세대간 논쟁은 언어에 대한 표면적인 이야기라 생각한다. 내 생각을 열어주는 언어, 내 가치를 담는 언어, 나의 삶을 새롭게 정의하는 언어를 끊임없이 발굴해 가야 한다. 언어가 내가 되고, 내가 언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000개 단어를 넘어서 각자 다양한 자기만의 언어를 발굴하고 만들어가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유영만, 박용후 (지은이), 쌤앤파커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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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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