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테일러 호킨스 추모 콘서트. 테일러 호킨스를 상징하는 '매' 모양의 로고가 상단에 새겨져 있다.

지난 9월 3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테일러 호킨스 추모 콘서트. 테일러 호킨스를 상징하는 '매' 모양의 로고가 상단에 새겨져 있다. ⓒ 유튜브 중계 캡쳐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가 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푸 파이터스의 연주에 맞춰 'Live Forever'를 부르는 오프닝 공연. 록 팬들에게는 꿈에서나 일어날법한 풍경이다. 놀랍게도 현실로 펼쳐졌다. 그뿐 아니라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AC/DC의 브라이언 존슨, 레드 제플린의 존 폴 존스,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 러시의 게디 리와 알렉스 라이프슨 등 록의 전설이 한 곳에 총출동했다. 오직 한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9월 3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를 추모하는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은 리더 데이브 그롤을 비롯한 푸 파이터스의 멤버들, 그리고 호킨스의 가족들에 의해 주최되었다. 파라마운트 플러스, 그리고 M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황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앨라니스 모리셋의 드러머로 활동하던 테일러 호킨스는 1997년, 데이브 그롤이 결성한 록밴드 푸 파이터스의 멤버로 합류했다. 2022년 3월 25일 남미 투어 도중 향년 5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25년 동안 밴드의 멤버로 활약해왔다. 탁월한 드럼 솜씨는 물론, 노래 실력과 호쾌한 무대매너를 갖춘 그는 데이브 그롤과 함께 밴드의 정체성을 형성한 간판 멤버였다.

1992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레디 머큐리의 추모 공연은 '라이브 에이드' 만큼이나 거대한 블록버스터 록 공연이 되었다. 당시 공연에는 퀸의 생존 멤버들은 물론,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부터 건즈앤로지스의 슬래시와 액슬 로즈, 엘튼 존 등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던 바 있다. 같은 장소에서 열린 테일러 호킨스의 추모 공연은 머큐리의 추모 공연 못지 않게 막강한 출연진을 과시했다. 약 9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공연장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폴 매카트니부터 퀸까지, 록의 전설 집결한 이유

단순히 전설적인 뮤지션을 백화점식으로 모아놓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가 생전의 호킨스와 긴밀하게 교류한 음악계 동료들이었거나, 호킨스가 흠모했던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접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일러 호킨스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밴드로 퀸을 뽑았고, 무대 위에서 'Under Pressure'나 'Somebody To Love' 등 퀸의 명곡을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잡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퀸의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그를 추모하는 무대에 선 것은 의미가 컸다. 브라이언 메이는 그에게 'Love Of My Life'를 바치며 존중을 표했다.

호킨스와 그롤이 나란히 열광했던 프리텐더스의 크리시 하인드도 무대에 섰다. 테일러 호킨스가 좋아했던 브릿팝 밴드 슈퍼그래스의 가즈 쿰스는 호킨스의 우상 중 하나인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불렀다. 이 라인업은 전적으로 고인의 음악적 취향과 선호를 고려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마크 론슨과 케샤, 나일 로저스, 샘 라이더 등 특정 장르와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 뮤지션들이 등장해 콜라보 무대를 펼쳤다. 테일러 호킨스가 몸담았던 셰비 메탈, 테일러 호킨스 앤드 더 코테일 라이더스의 멤버들도 빠지지 않았다.

공연 말미에는 폴 매카트니가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지난 6월 펼쳐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도 데이브 그롤과 함께 노래했던 바 있다. 그는 크리시 하인드와 함께 < Abbey Road > 앨범의 수록곡인 'Oh Darling'의 첫 라이브를 선보이는가 하면, 최초의 메탈로 불리는 비틀즈의 명곡 'Helter Skelter'를 부르기도 했다.

거대한 사람을 위한 거대한 밤
 
 푸 파이터스의 데이브 그롤(왼쪽), 전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의 아들인 셰인 호킨스(오른쪽)

푸 파이터스의 데이브 그롤(왼쪽), 전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의 아들인 셰인 호킨스(오른쪽) ⓒ Foo Fighters

 

6시간 동안 이어진 블록버스터 공연의 피날레는 물론 푸 파이터스의 몫이었다. 공연에 앞서, 푸 파이터스 멤버들과 함께 등장한 데이브 그롤은 생각보다 밝은 모습이었다. 껌을 질겅질겅 씹고, 욕을 섞어가며 말하는 호쾌함도 변함없었다. "그 누구도 테일러 호킨스가 했던 것처럼, "거대한 사람을 위한 거대한 밤이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웃고 울고 소리지르고 소리를 지르며 그가 지금 우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자"고도 외쳤다.

유쾌한 그조차도 공연 후반 'Times Like These'를 부를 때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올해 3월 이십년지기 밴드 동료를 잃은 것뿐 아니라, 8월에는 어머니를 잃었다. 그가 억눌러 온 상실감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롤은 울먹임을 삼키고, 머리를 흔들며 일렉 기타를 연주했다.
 

▲ Foo Fighters ft. Shane Hawkins Perform "My Hero" | MTV ⓒ 이현파

 

호킨스의 드러머 자리는 폴리스의 스튜어트 코플랜드, 로저 테일러의 아들인 루퍼스 테일러, 트래비스 바커 등에 의해 대체되었다. 호킨스의 영웅이었던 코플랜드를 비롯, 모두 쟁쟁한 드러머들이었다. 그러나 'My Hero'를 연주하기 위해 무대에 나선 테일러 호킨스의 2006년생 아들 셰인 호킨스 만한 전율은 없었다.

아버지의 친구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이를 악문 채 드럼을 내려치는 셰인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기타를 치던 데이브 그롤은 드럼 쪽을 돌아보면서 대견하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My Hero'가 커트 코베인 추모곡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의미심장하다. 모든 팬들을 울게 만든 장면이다.

데이브 그롤이 홀로 부르는 'Everlong'과 함께 6시간의 성대한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테일러 호킨스의 추모 공연은 노래와 춤, 웃음과 눈물로 가득 채워진 '록 치유식'이었다. 록커들은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슬픔에 머물지 않았다. 떠난 친구가 남긴 레거시를 소중히 간직하며,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사랑하고, 우는 것을 선택했다. 공연장 위쪽에는 테일러 호킨스를 상징하는 '매' 모양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하늘로 떠난 드러머가 웃으며 친구들을 굽어보고 있는 듯했다.

"It's times like these you learn to live again"
(이럴 때 사는 법을 다시 배우게 돼)

- 'Times Like These'(Foo Fighters) 중

 
 지난 9월 3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테일러 호킨스 추모 공연의 아티스트들이 관객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지난 9월 3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테일러 호킨스 추모 공연의 아티스트들이 관객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Foo Fighters

 
푸 파이터스 테일러 호킨스 데이브 그롤 리암 갤러거 폴 매카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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