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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동네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혼자 쓰는 글은 제자리만 맴돌아 답답했고 계속 써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강제로라도 마감이 필요했다.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회차가 지속될수록 그 마음은 바뀌었다. 

글 친구들은 빤할 것 같아 피했던 소재로 신선한 글을 써냈다. 누구나 아는 경험이지만 거기서 길어 올린 생각은 저마다 달랐으니까. 흔한 일에서 반짝이는 기쁨과 의미를 발견해내는 글동무들의 시선에 감탄했다. 다루어지는 소재가 작으면 작을수록,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이야기는 더 특별해졌다. 어떤 의미에서 친구들은 이미 작가였다. 
 
작가는 개별적인 것들의 거대한 연대를 중개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목소리와 사연을 모아서 더 높은 의미 단위로 가공하는 일이다. 수집과 나열은 결국 연대의 마음이다. 167쪽, <작고 기특한 불행> (오지윤, RHK)
 
책 <작고 기특한 불행>
 책 <작고 기특한 불행>
ⓒ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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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기특한 불행>(RHK)을 쓴 오지윤은 '작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녀는 자신이 내린 정의처럼 고유한 이야기를 모아 더 높은 의미 단위로 가공하는데 탁월하다. 수집과 나열이 연대의 마음이라면, 연대의 마음속에는 사랑과 믿음이 있다는 걸 그녀의 글은 알려준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통해서다. 브런치는 매년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선정된 작가들에게 출판의 기회를 제공한다. <작고 기특한 불행>은 작년에 진행되었던 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수상작 중 하나로 지난 7월에 출간되었다.

불행에 지지 않겠다는 다짐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자신의 삶, 언니의 암투병, 아빠의 은퇴와 파킨슨씨 병, 할머니의 치매와 죽음, 코로나 시대의 불안을 껴안고 있는 청춘의 삶. 작가를 둘러싼 삶의 배경색은 결코 밝지 않았다. 수시로 어둠이 드리우는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랬기에 불행도 기특하다고 불러줄 수 있는 내공을 얻게 된 게 아닐까.
 
"지윤아, 나도 거지 같아."
참 이상한 일이다. 서로 불행하다며 아웅다웅하는데 왜 우리는 웃음이 나는 걸까. 나만 힘든 게 아니고 그도 힘들다는 사실이 왜 우리를 웃게 만드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도 내 불행을 L에게 한껏 떠먹여 줬으니 자책하진 않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을 나눠 먹으며 위로받고 서로를 더 껴안아 주게 되니 오히려 좋다.    24쪽

오지윤은 타인의 불행이 나를 위로해준다고 말한다. 그 위안을 단순히 섭취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타인의 불행에 기대는 것이 '천박한 안전장치'임을 안다. 고통받는 나를 통해 타인도 고통받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고 연민하는 '인류애'를 발휘할 줄도 안다. 불행을 나누는 데서 '연대감'이 생기고 그 '불행의 대잔치가 행복의 시작'임을 '기어이' 발견해낸다.

자신의 불행과 부족을 부정하지 않고 곡해하지도 않는 작가의 시선이 건강해서 좋다. 거기서 체념하는 대신 발상을 바꾸어 기쁨의 씨앗을 찾아낼 줄 아는 것도. 그건 행복해지겠다는 다짐이라기보단 불행에 지지 않겠다는 다짐 같다. "행복은 순간이고 여운도 짧다. 불행은 자주 오고 여운도 쓸데없이 긴데."(223쪽)

저자는 부질없는 행복에 투자하는 대신 '다양성'과 '고유함', '무용' 한 것들을 눈여겨 바라보며 자기만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는다. 불행과 친구가 되는 법을 터득하고 삶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귀여움'을 모으며 산다. 자신의 불행에 섬세한 시선을 건네고 타인의 불행에 공감할 줄 알기에, 그녀의 삶과 글쓰기는 믿음직스럽다.

그녀만의 정의가 붙으면 울림은 커진다 

그녀의 글은 점처럼 작은 이야기를 모아 어떻게 별자리를 만드는지 보여준다. 별개로 흩어져 있던 별을 오지윤이라는 실로 연결하는 방식은 참신하다. 가령, '바다 수영이 좋은 이유'라는 글에는 바다 수영과 타투,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추억 같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들은 제각각의 모양으로 저자에게 삶의 안정감을 주는 대상이다. 

글의 말미에는 바다에서 수영하는 한 할아버지와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긴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깊이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여서 안정적인 아이의 환한 미소. 그녀는 바다와 타투, 할아버지와 어린아이 같은 '흔하면서 아름다운 것'을 연결해 자신에게 필요했던 평형감을 되찾는다. 이 글에는 아련한 여운이 길게 맺힌다.  

오지윤만의 에세이 작법의 또 다른 장점을 꼽아본다면,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내면서도 정확한 단어로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에는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이 수두룩하다. 수시로 '싱숭생숭'해지는데 "마음이 움직여 어수선해지는 것이다."(168쪽) 파킨슨 씨 병을 앓는 아빠를 바라보며 쓴 부분이 특히 그렇다.
 
무뚝뚝한 그를 닮아 무뚝뚝한 나는 효녀가 되겠다는 '다짐' 대신 '그리움'부터 키운다. 나는 그가 벌써 그립다. 그리워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그에게 전화 한 통 하는 것은 부끄러워, 벌써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그리워하기만 한다. 36쪽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으로 훈련된 면모 일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흔한 단어에 대해 자기만의 정의를 내리는 데 빼어나다. 평이한 단어일지라도 그녀만의 정의가 붙으면 울림이 커진다. "밥벌이로 책임지는 게 내 '생명'이라면 집안일로 완성되는 건 내 '삶'이다."(139쪽) "열거는 사랑의 기술이다. 사랑해야 오랜 시간 찾고 모으고 기다릴 수 있다."(168쪽)

그녀는 사소한 단어로 시작해 특유한 의미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물레 위에 올려놓은 흙덩이가 노련한 도공의 손을 거쳐 수려한 그릇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자기만의 사상과 심상을 담아내는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생각하면 구성력과 문장력이 빼어난 그녀의 글은 좋은 에세이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무용한 글쓰기의 효용

도서관 글쓰기 수업이 마지막 회차를 남기고 있다. 수업에 가서 이 책을 추천해야겠다. 좋은 에세이는 이런 글 같다고. 불행을 거부하는 대신 불행을 씨앗 삼아 글을 쓰자고, 그게 삶과 글쓰기에서 나만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비밀임을 전파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무용하고 쓸모없을 지라도 글쓰기만은 계속하고 싶어질 거라고. 
 
나의 인생은 '기어이'가 많아질수록 풍성해질 거라 믿는다. 기어이 무언가를 저질러도, 인생은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크게 잘못되기에는 우리가 너무 작은 존재다.  221쪽

제10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의 마감일은 10월 23일이다. 오지윤 작가 덕분에 '기어이' 응모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세상의 모든 브런치 작가들에게도 응원의 말을 전한다. '기어이' 계속 쓰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작고 기특한 불행 - 카피라이터 오지윤 산문집

오지윤 (지은이), 알에이치코리아(RHK)(2022)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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